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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2012년 11월 첫 날의 밥

점심엔 회사 건물 지하 1층의 백반집을 갔다. 주메뉴는 매일 바뀌고 돈까스는 늘 나오는 곳인데, 오늘은 라볶이와 미역국이 나왔다. 라면스프류의 조미료 맛이 강한, 국물이 묽은 라볶이 맛은 그럭저럭. 미역국은 제법 깔끔했다. 리필이 된다는 장점이 있는 이곳의 돈까스는 식감이 약간 떨어진다. 수익을 맞춰야 하니 아무래도 밀가루 반죽 비중이 좀 있는 듯하다. 그래도 갓 튀겨낸 따끈한 돈까스를 먹고 또 먹을 수 있는 게 어딘가.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오늘은 현진 선배에게 신세를 졌다. 


후식은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혜경 선배가 사무실에 기증한 라오스산 커피. 믹스 한 개 크기가 핫초코 미떼랑 비슷하기에 물을 넉넉히 부었다. 예상보다 싱거웠다. 한국 커피믹스보다 커피알갱이가 작아서 그런 걸까. 좀 진하게 먹으면 베트남식 커피와 비슷할 듯하다. 내일은 남은 커피 하나를 물을 적게 잡아 타먹어봐야겠다.


유독 머리가 띵하고 허기졌던 하루였다. 병원에 가려고 답십리역 4번 출구 계단을 오르는데 어찌나 삼겹살 생각이 절실하던지. 점심에 라볶이를 먹었는데도 다시 떡볶이가 당겼다. 두 음식은 언제, 어떻게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팔의 통증보다 배의 허기를 달래느라 힘들었다. 


하루 전 엄마와 갔던 김치찌개 집에 다시 갔다. 손두부와 함께 먹는, 빠알간 고추장 양념이 먹기 좋게 버무려진 돼지 두루치기를 보니 순간 흔들렸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생오겹살을. 노릇노릇하게 익은, 3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이 고기 한 점은 국내산이던데, 낮에 먹은 돈까스는 어디에서 온 돼지였을까. 


무생채를 한 젓가락 입에 삼킨 엄마가 "요즘은 무 하나에 2천원"이라고 하셨다.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산하(山河)는 우리에게 값비싼 식탁으로 다가온다. 불어난 물에 휩쓸려간 노인이 숨지고, 쓰러진 전신주 탓에 감전당한 아무개와 수확을 코앞에 두고 처참하게 낙하해버린 과수(果樹)를 보며 망연자실했을 이의 사연은 잊힌 지 오래다.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재해마저 무언가의 가격으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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