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사진을 발견했다.
출처는 이곳 https://tumblbug.com/guro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의 한 가게다. 동네 주민들과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한 마을에서 살아가기'를 다시 복원하고자 진행하는 프로젝트, '마을가게 셔터에 벽화 그리기(셔터 벽화 마을)'다. 오래된 집 담벼락이나 동네 계단층층에 벽화를 그렸던 이화동·아현동 공공미술 프로젝트와는 다른 형태다.
담벼락, 계단에 젊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이화동의 모습. 사진 두 장 모두 출처는 http://www.cyworld.com/rodofdark/4136142
'셔터 벽화 마을' 프로젝트는 단순히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 아니라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게 목표라고 한다. 주민들의 삶과 표정,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가게 셔터를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팀은 6월 한 달 동안 매주 워크숍을 열었고, 사람과 돈을 모으는 중이다. 곧 주민 인터뷰와 도안 받기를 본격 시작하고, 7월말부터 셔터 그리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셔터 벽화 마을' 프로젝트팀이 수집한 다른 지역 사례
얼마 전에 편집부 교육을 받을 땐 '지역화폐' 관련 아이템을 시민기자분께 청탁했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지역용 화폐'로, 특정 지역 주민들끼리 물건이나 서비스 등을 거래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생활협동조합이나 공동체가 발달한 외국에선 많이 쓰이고 있단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이다. 2007년 독일에서는 약 52개 지역화폐가 생겨나 쓰이기 시작, 이듬해 60개로 늘어났다. 2002년 1개로 시작한 것이 6년 만에 60배가 된 것. 2003년부터 뮌헨 인근 지역에서 쓰이고 있는 킴가우어(Chiemgauer)란 지역화폐는 매년 꾸준히 가입 회원이 늘고 있고, 지역업체 매출의 20%가량을 차지했다. 오래된 자료이긴하지만, 2004년 분석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킴가우어를 도입한 지방정부들은 매년 8만 4천 유로가량 순이익을 거두고, 약 1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다(출처 : <오마이뉴스>, 지방경제 살리는 독일의 지역화폐 운동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02300).
이런 딱딱한 얘기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중요한 건, 지역화폐란 '돈'에는 '사람냄새'가 난다는 것. 서울시 성미산 마을에 살고 있는 시민기자분께서 작성한 글에 보면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을 원피스가 우리 아이의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때' 지역화폐가 쓰인다. 동네 극장에서 공연을 보거나 작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길 때도 성미산 마을에선 돈말고도 '두루'라는 지역화폐를 낼 수 있다. 이 시민기자는 "두루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힘'을 가진다"고 했다.
서울시 성미산 마을의 지역화폐 두루 ⓒ한진숙(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46475)
내가 충분히 다시 쓸만한 것들만 챙겨 '되살림'에 가져가는 것처럼 동네 아줌마들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부터 만들어내고 나를 떠난 물건이 누군가에게 요긴한 것이 된다는 뿌듯함을 선물한다. 이것은 나눔의 모습이고, '두루'를 같이 사용하는 동네 사람들을 끈끈하게 연결하는 튼튼한 다리가 된다. 자원을 재활용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경제적 의미만큼이나 실감 나는 것이 '두루'의 힘이다.
대부분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골을 깊게 하고, 사랑과 명예는 종이조각처럼 구겨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싸움붙인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가. 그런데, 그런 돈이 '공동체'를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끈끈하게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니. 꼭 기부하고, 모금하는 돈이 아니어도 세상 어딘가에는 따뜻한 돈이 있다. 그게 지역화폐다.
지역화폐든, 마을벽화 프로젝트든 결국 '마을'이다. 언젠가 "마을에 바보 하나 쯤은 있었는데, 다 사라져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이문열의 <아가>도 한 마을에서 함께 돌보며 살아가던 바보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 마을에 바보가 있었다'가 아니었을까. 이제는 바보도 없고, 마을도 없다.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그저 콘크리트벽에 갇혀 살아가는 '나'와 '너'만 있는 세상이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이를 키우는 삶을 상상하는 나이가 됐다. 네모난 옥탑방이 나만의 것이었던 시절은 이제 멀어져간다. 그래서 더 마을이 그리워진다. 사람과 사람이 살을 맞대고,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정겹게 살아가는 마을을 꿈꾼다. 제 한 몸 건사 못하는 '바보'가 있다면 함께 돌보고, 누군가 슬픔 혹은 불행에 허덕일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일상을 바란다.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는 간디의 말은 곧 "마을이 우리를 구한다"에서 시작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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