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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그는 왜 독실해졌을까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판사의 정치적 중립성, 판결의 정확성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는 그의 판결문 안에 담겼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후보자의 과거 판결이 어떠했는가'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요일, 목요일 이틀 동안 고영한·김신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봤다. 검찰 출신 김병화 후보자와 달리 "역시  판사 출신이라 신변 관리를 잘하셨네요"라는 청문위원의 한 마디가 나올 정도로 부동산이나 위장전입 등 '인사 청문회 단골메뉴'가 딱히 없었다. 고영한 후보자의 경우 수십년 전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위장전입, 농지세 탈루 의혹 등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집안 소유였던 곳이고, 아버지가 절차를 진행했기에 후보자가 이를 사과하는 선에서 정리됐다. 김신 후보자도 최근 3년 새 재산이 좀 늘었다는 질문이 있었는데, 갖고 있는 부동산 시가와 펀드 주가가 오른 덕분이여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목을 겨눈 칼날은 '당신의 판결이 당신을 보여줍니다'였다. 고 후보자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재판에서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을 56억원으로 제한하는 판결을 내려 '친재벌 성향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 김신 대법관 후보자가 1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종교 편향 등의 문제에 관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2007년 홍콩 유조선인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이 충돌하며 원유 1만 900톤이 푸른 바다를 덮어 버린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정부는 피해 규모를 약 2조 6000억원으로 계산했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가 사정한 금액 1665억 9100만원은 이보다 작지만,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고 후보자가 결정한 56억원은, 피해주민 1인당 보상금이 약 5만원씩 돌아가는 액수다. 야당쪽 청문위원들이 고 후보자를 질타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고 후보자는 '삼성 봐주기'가 아니라 '현행 법상 어쩔 수 없는 결론'이었다고 해명했다.


김신 후보자의 경우 재판정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을 여과없이 드러낸 점과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 관련 판결에 대해 집중 추궁당했다. 김 후보자는 김 지도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조선소 내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지난해 1월 6일, 사측이 신청한 퇴거 및 사업장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루 만에 받아들였다.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하루에 100만원씩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는 결정도 내렸다. 12일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 지도위원은 '증인이 돈 때문에 겁내는 분도 아니고'란 새누리당 의원의 말에 "저도 겁난다. 100만원이 애 이름도 아니고…. 하루 하루 계산했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쟁점은 교회 내 분열 문제를 둘러싼 소송에서 김 후보자가 당사자들의 화해를 주선하며 '함께 기도하자' 하고, '부산 성시화(聖市化)운동'을 지지하는 뜻을 밝히는 등 '저는 기독교 신자인 재판관입니다'란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헌법 제20조 2항,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제103조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 개인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는 이런 성향을 갖고 있으니, 이런 결정을 하겠지'란 타인의 선입견을 낳는다면 그에게 주어진 공적 지위는 '사악한 힘'이 될 수 있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 어떤 성향에 따라 정책이나 판결 등이 정해진다면 그 폐해는 엄청나다. 이미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은 더 밑으로, 어두운 곳으로 밀려날 테고, 힘 있는 자들은 오로지 제 몫을 위해서만 살아갈 것이다. '사회' 아니 '공동체' '우리'란 말은 국어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말로 남을 확률이 높다. '친재벌' '유전무죄, 무전유죄' '특정 종교 편향' 등이 비판, 아니 비난받는 까닭이다.


다만 청문회 내내 굳어 있는 김 후보자를 보며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지팡이 없인 걷기 불편한 지체3급 장애인이다. '장애인은 현장검증을 하는 데 불편하다' 등으로 사법연수원 동기들보다 5개월 늦게 법관으로 임용되기도 했다.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제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는데, 그것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낸 것 같다고 말했다.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고, 부산 지역에서만 판사로 생활한 그다. 물론 결과적으로 울산지법원장을 거쳐 법관으로선 최고 위치인 대법관 자리에 오르는 걸 눈 앞에 두고 있다. 서울대를 졸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트 의식 가득한 비장애인 남성들로 잔뜩 있는 법관 사회에서 변방으로 내몰리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으리라.


자신도 소수자이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충분히 배려 못한 판결, 대법관 후보라면 충분히 비판받아야 한다. 언젠가 한 선배가 그랬다. "법이 가장 늦다"고. 그럼에도 법은 힘이 세다. 판결문의 한 줄이 때론 큰 위안이 되는 사람이 있고, 그 한 줄 때문에 삶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신앙인 김신'의 모습을 법정에서 드러내는 것 또한 누군가에겐 불안을 안겨줄 수 있다.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던 재판들이 교회와 관련된 것들이었고, 대법원 판례와 다르게 종교인의 손을 들어준 일도 있었다는 점 역시 변명을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청문회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찝찝했다. 왜 그가 그토록 독실한 신자가 됐을까 하는 의문이 남았다. 안팎으로 힘든 시기를 기도로 버티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