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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영길이는 어디에...

2006년 3월 다른 블로그를 운영할 때 썼던 글. 상규 선배 블로그에서 '그 많던 을수는 다 어디 갔을까'를 읽고, 먼지 가득 쌓인 이 글을 꺼내본다. 을수도, 영길이도, 모두 어디 갔을까...


(그나저나 글이 참 어리다. 민망하게시리...;;;)


초등학교 6학년때 새롭게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O영길, 그 친구는 약간 모자라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아주 많이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사칙연산은 수월히 해냈고, 만들기를 참 잘했던 친구였다.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께서 자원해서 자신이 짝으로 앉고 싶은 사람을 말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두번째로 영길이 짝이 됐었다. 그 전에 영길이랑 앉았던 내 친구는 워낙 착한지라 영길이 밥도 챙겨주고, 수업할 때 교과서나 학습도구도 꼼꼼히 챙겨줬다. 그때 영길이가 책상 절반을 금을 긋고, 넘어가지 말자고 했었는데 다 웃으며 들어줬다. 착해보이고 싶었던 건지, 아님 그때 내가 아주 쪼금은 착해서 그랬던 건지.. 어쨌든 내 기억에 의하면 담번 짝꿍을 정할 때, 이번엔 내가 영길이랑 앉겠다고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가끔 말 걸면 무시하고;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것 말고는 그닥 나쁘지 않았던 짝꿍이었다. 어려서부터 약간 엄마처럼 잔소리 잘하는 기질이 있었다는 간간히 영길이에게 잔소리를 해댔지만 어쨌거나 우린 괜찮은 짝꿍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이 교실에서 놀다가 영길이 바지를 확 내려버리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때 나는 무슨 연유로 교실에 없었는데 , 돌아와서 그 얘기를 듣고 정말 어이없고 화가 났었다.

 

영길이는 집에 돌아가고 없었다.

 

바지가 벗겨졌을 때 울었다는 말을 듣고 영길이가 너무 안쓰럽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과 미안함때문에 종일 신경이 쓰여 좋아하던 미술학원에 가서도 그림을 그리는 둥 마는 둥 하다 집으로 돌아갔었다.

 

이것이 영길이에 대한 나의 가장 뚜렷한 기억이다.

 

어제 우연히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지수가 간다."라는 꼭지를 보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 씩씩한 부산 가시나 지수는 장애인이다. 다섯달이 지나도록 목을 가누지 못했고 두돌이 지나서야 걸음마를 뗏다고 한다. 그러나 지수는 여느 장애아들과는 다른 아이다. 스스로 운동을 하겠다고 나섰고, 나약한 다리 힘을 기르고자 집에서 2~30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혼자서 걸어다닌다.  몸을 건강히 하려는 의지만큼이나, 마음 또한 건강함을 지닌 아이가 지수였다. 작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준비해서 출마했던 부봉사위원장(전교 어린이 부회장) 선거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당선됐다. 올해 봉사위원장 선거에서는 안타깝게 위원장이 되진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유세도 하고, 연설도 하고, 비록 꼴지로 득표를 했음에도 웃을 줄 아는 그런 멋진 아이다.

 

지수의 얼굴을 보다 아주 오랜만에 영길이가 떠올랐다.

 

영길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 13일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는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현행 특수교육법에 의하면 영유아,고등학생,성인은 '장애학생'에 포함되지 않는다. 당연히 평생교육이 제대로 이뤄지 않을뿐더러, 현실에 맞는 직업교육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우 중 교육 수혜자를 정의하는 기준이 교육부와 장애인 교육연대간에 차이가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전체 장애학생 중 최소 40%에서  최대 75%에 이르는 학생들이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반면에 2002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5-14세 인구대비 취학율은 93% 이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장애우들의 교육권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교육제도 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짓기는 굉장히 철저하다. '통합'이라는 구호 아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고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는 선진국들에 비해 , 일선 학교에서 특수학급 학생과 일반학급 학생은 그 수업을 구분지을 뿐만 아니라 교실 내에서도 서로를 '친구'로 인정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끊임없이 교육시장의 개방을 주장하며 학생의 선택권에 대해 얘기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조차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현실 속에 수두룩하다.

 

어쩌면, 길 잃고 헤매는 , 세상에 방치된 그들 가운데 영길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