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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괴물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묻다

철학의 시대10점

한 아이가 죽었다. A4용지 4장 가득 채운 마지막 편지는 한참 아프고 괴로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시시각각 문자를 보내 다그치거나 협박하고, 목에 전선을 감아 끌고다닌데다 물고문, 불고문까지 한 친구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아이의 죽음이 알려진 진후 '그냥 인정하지 뭐 ㅋㅋ'하며 문자를 주고받은 모습에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그 괴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에 관심갖는 사람은 드물었다.

˝우리는 상처받을 가능성을 줄여주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받을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철학의 시대> 저자 강신주씨가 책 머리말에 남긴 질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괴물이었다, 괴물이 한 짓이다'라고 말하면 조금 편하다. 서로 상처주고, 이기심과 혼란을 폭력으로 누르며 타인의 고통따윈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우리, 괴물이 된 세상에서 괴물로 살아가는 모습을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말이다. 그러나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았을 뿐, 우리는 알고 있다. 오류와 폭력, 고통이 한없이 되풀이되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을 택하는 갈림길 위에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 말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발걸음을 되돌리고 싶다면, 그 방법으로 <철학의 시대>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 길로 가야 우리의 고통과 상처를 뿌리부터 낫게할지 앞서 고민했던 선조들의 길을 살펴본다면 조금 나으리라. 열 사람, 백 사람이 먼저 지나간 곳에 늘 길이 남았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제자백가를 읽어 온 저자가 ˝제자백가의 사상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시도한 경과˝라며 책읽기를 유혹하는 이유 또한 같다. 하늘의 뜻을 절대시했던 상나라와 신과 인간의 거리를 좁히고자 '예'라는 방법을 택했던 주나라를 지나 새롭게 열린 춘추전국시대는 무엇보다 '인간정치'의 시대였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상가들은 혼란을 다스릴 새로운 규칙과 논리를 찾으려 애썼다. 근본으로 되돌아가 '예'를 지켜야 한다는 이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이가 칼날을 부딪쳤다. 억지로 맞추고 끼워넣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람, 모든 다툼의 바탕에 깔린 이기심과 분노를 버려야 한다는 이와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강력한 힘만이 해법이라 부르짖은 이 또한 있었다.

영화 <공자-춘추전국시대>의 한 장면

목소리의 결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소리가 향하는 곳은 같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 혼란과 폭력과 피비린내와 고통에서 구원할 것인가 하는 물음, 그 답이 제자백가 모두의 질문이었다. 조각조각 나뉘었던 천하가 하나로 모였으니, 그 답은 나온 것일까? 수천년 동안 대륙을 지배한 '유가'사상이 그 답이었던 것일까? 부정할 수는 없지만 완벽한 긍정도 어렵게 느껴진다.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의 학파 구분은 한 제국의 역사 관료들이 사후적으로 만든 범주일 뿐이다. 승자의 법칙에 따라 분류한 결과, 살아남은 죽간들이 남긴 답에 불과하다.

물론 '승리' 그 자체만으로 유학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승자의 빛나는 얼굴 뒤에 감춰진 사상의 뒤섞임, 시대를 거치며 나타난 크고작은 변화들은 유학 사상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지만, 계절의 변화에 제 모습을 맞춘다. 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단 한 가지 해법을 고집할 수 없다. 괴물이 되어가는 우리가 또 다른 괴물의 처벌만을 주장하거나 온정적인 해법만 강조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자살한 대구 중학생과 가해학생들이 주고받은 문자들ⓒ연합뉴스

수천년 전,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다스려질 때 진흙 속에 연꽃이 피어날지 고민했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치열하게 사유해야 한다. 괴물을 손가락질하고, 그를 죽이려하는 방법으로는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막을 수 없다. 오늘의 상처를 치유하며 내일의 고통을 예방하는 일이 시급한 지금, '철학의 시대'를 고민해야 할 이유다
http://sost.tistory.com2011-12-30T11:28:110.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