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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안철수 밀어서 '정치개혁' 잠금해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8점

‘타는 목마름으로’ 새는 물을 찾고 있었다. 그때 물이 든 병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병 주둥이가 좁고 물의 양이 적어 아무리 목을 길게 빼도 뿌리가 닿지 않았다. 고민 끝에 찾은 해결책은 병 안에 돌멩이를 넣어 부피가 늘어나게 하는 것. 지혜를 발휘한 새는 마침내 목을 축일 수 있었다는 이 이야기는 2011년 대한민국에 쉽게 대입된다. 사람들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SNS에서 사회문제들을 토론하며 좁은 병에 담긴 ‘변화와 희망’의 물을 마실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타는 목마름에 지쳐갈 때쯤, ‘안철수’라는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희망에 찬 사람들은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만 듣고도 그에게 50%의 지지율을 보냈고, 출마 포기 선언과 동시에 그를 내년 대선주자로 띄웠다. ‘안철수’란 돌멩이가 우리 입에 ‘변화와 희망’의 물을 적셔줄 것이란 믿음은 순식간에 번져갔다.

"안철수는, 우리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돌이 ‘현실’이란 병 주둥이 크기에 꼭 맞아 떨어지는 걸까? 아니, 그 돌멩이가 맞는 물병은 우리가 원하는 물이 아닌 다른 게 담겨있진 않을까?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는 ‘이제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환호하는 새에게 잠깐 생각해보자며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안철수는 어떻게 한국정치의 태풍의 핵이 됐는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어떤 ‘정치인 안철수’를 발견할 수 있는가? 또 한국 언론과 정치의 역학관계에서 안철수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정당구도에서 ‘정치인 안철수’가 ‘대통령 안철수’로 거듭나는 길은 어떤 모습일까? 저자 한윤형, 이재훈, 김완, 김민하가 각자의 글에서 던지는 물음이다. 질문들은 결국 하나로 정리된다. “안철수는, 우리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머리말 중)” 답은 “모른다”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안철수를 밀어서 잠금해제한 다음 이렇게 하면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가 아니다. “안철수에게 보내는 대중의 환호는 현 정당정치의 한계, 엄친아 판타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욕망 등의 집합임을 이해하고, ‘가능한 변화’들을 만들어야 한다”에 가깝다. 제1장 ‘안철수, 한국 정치에 접속하다’를 쓴 한윤형이 안철수 현상을 ‘정치 불신’ ‘신자유주의의 승리’ ‘IT‧SNS세대의 승리’로 보는 주장들 나름대로 현실의 일면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유다. 따라서 그의 글에서 주목할 점은 ‘안철수’란 카드를 활용한 ‘정당정치 개혁’의 방법론들이다.

4장의 저자 김민하가 쓴 ‘안철수 in ○○당’이라는 가상시나리오들 또한 ‘안철수의 입당은 정당 안팎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란 최소공배수를 갖는다. 왜? 김민하는 “선거와 집권은 조건이 중요하다”며 “안철수는 천지인의 세 가지 호조건을 모두 눈앞에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유권자들이 낡은 정당정치에 염증이 난 상황에서 선거가 1년 남았고(天),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사실상 지역정당인데다(地) 안철수가 깃발만 든다면 달려갈 인재들이 풍부하기 때문(人)이다. 결국 ‘안철수’란 카드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 사회, 특히 정치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누구나 수긍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의 제2차 정례여론조사결과에서 안철수 교수는 △대선후보 지지도(다자) △대선후보 적합도(진영) 그리고 △대선 가상대결(1대1)에서 모두 박근혜 전 대표를 앞섰다. ⓒ리서치뷰

하지만 ‘인간 안철수’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정치인 안철수’가 불러올 변화를 막연히 ‘상식이 통하는 사회, 사람 사는 세상’정도로 상상하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이재훈은 제2장 ‘안철수를 무엇을 말하고 있나’에서 이 부분을 지적한다. ‘안철수는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사실 안철수 교수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정치‧경제‧교육관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 안철수’를 원하는 지금, 우리는 정직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자연인 안철수 말고 ‘리더’로서 그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주려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재훈은 안철수의 말과 글에서 나타나는 ‘반듯하고 도덕적인 철수씨’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안철수의 성공은 ‘자기계발’ 신화와 ‘엄친아’ 판타지를 강화하는데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교육 계급’문제를 좀 더 보기 좋게 정당화하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비판한다. 그의 장점인 ‘수평적 리더십’ 역시 결국 “스스로를 절제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하라”는 내용으로,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과 결이 같다는 것이다.

또 이재훈은 서울대 의대-카이스트‧서울대 교수라는 대학 서열 최우위에 서 있는 안철수가 ‘학벌 사회’를 해체할 수 있는 현실적 투쟁을 벌일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실패한 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야한다’는 안철수의 경제론 역시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자유시장경제의 핵심가치에 머무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익을 만들어 낼 구조는 말하지만, 이익의 사회적 분배를 말하는 내용은 찾기 힘들고, 대다수가 노동자임에도 노동계급의 정당한 권리를 부정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정치, 아니 우리의 '새로운 정치'를 고민해봐야

“‘안철수가 새로운 정치를 한다’는 시각에 매몰되지 말고, ‘새로운 정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재훈은 지난 16일 신촌에서 있었던 ‘저자와의 대화’에서도 이같이 말했다. ‘중간계급은 자신의 속물성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은폐해줄 대리인으로 안철수를 택했다’는 그의 분석에 동의하느냐를 떠나 곱씹어볼 이야기다. 안철수 현상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들은 사실 ‘낡은 정치 대 새로운 정치’라는 틀 안에서만 다퉜다. 김완이 ‘제3장 안철수, 그리고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에서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안철수의 관계를 ‘조중동(낡은 매체)와 SNS(도래할 매체)의 대리전’으로 빗댄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 구도는 허상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 새로운가’라고 물었을 때, 그 답은 ‘일단 너네랑 달라’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의 주식 절반(15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다음날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안철수 교수 ⓒ오마이뉴스


‘반듯하고 도덕적이며 말과 행동이 똑같은 철수씨’는 멋진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 아니다.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은 언제나 쉽게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 경험은 과거로도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안철수 현상’을 말하든, 안철수에게 열광하든 ‘안철수의 정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의 정치가 우리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더 악화시키지 않지만 ‘현상 유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필렬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는 24일 <경향신문>에 쓴 칼럼 ‘손정의와 안철수의 기부’에서 똑같이 1500억을 기부했지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의 돈은 ‘자연에너지 확대와 원자력발전의 폐기’라는 미래에,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에 쓰일 안철수 교수의 돈은 우리사회의 교육과잉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도 아이들의 생존에 도움을 주리라는 기대가 있다는 점에서 ‘보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교육과잉이 아이들의 희망찬 미래를 보장해주는 진정한 ‘보험’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미래’는, ‘새로운 정치’는 ‘반듯하고 도덕적이며 신뢰가는 철수씨’ 개인이 만들 수 없다. 사실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쉽게 잊을 뿐.
http://sost.tistory.com2011-11-24T14:58:07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