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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께, 추천합니다!

박원순 효과…재건축·뉴타운 ㅠㅠ 무상급식 관련주 ^^(동아 10/28)
1주일 만에 5000만원 뚝…박원순에 떠는 재건축 시장(중앙 11/1)
"박 시장 취임 이후 사업추진 불투명" 재건축 아파트 하락세(조선 11/7)

10·26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후 보수 언론은 연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을 맞은 서울 재개발 ·재건축 시장에 찬바람이 거세다(중앙)"고 보도했다. 11일에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평균 아파트값이 2년 4개월 만에 10억 밑으로 떨어졌다며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졌다(조선)"고 표현하기도 했다.

▲ 박원순 시장 당선으로 재건축 아파트값이 급락했다는 11월 1일자 <중앙일보> 기사 ⓒ 중앙일보


결국 '아파트'가 문제였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게 진 곳은 용산구와 강남·서초구뿐이었다. 전문가들은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재건축·재개발이 줄어들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표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에게 아파트가 얼마나 중요한 재산으로 여겨지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아파트 값이 시장을 결정할 만큼 중요해진 것일까? 많은 사람이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나라이여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주거문제의 해결수단이며 좁은 땅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것.  

땅은 좁고 사람은 많은 나라에 아파트는 필수? "아니다"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후마니타스

하지만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저서 <아파트 공화국(2007, 후마니타스)>에서 "한국처럼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대규모 주택단지를 보기 힘들다"며 "좁은 땅에 과도한 인구라는 논리가 한국의 아파트단지 현상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주택정책을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면밀히 분석한 후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에 따른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라고 결론 내린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단순히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성장의 상징'이 필요했던 정부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정부가 지은 아파트는 서민을 대상으로 한 작은 평수의 주택'이라 여겨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여기에 1970년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4명이 죽고 40명이 다치면서 아파트의 부정적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다. 

정부는 1972년 새로운 도시계획을 수립, ''경제 개발'의 양을 늘리고 속도를 높이고자 대규모 주택정책을 펼친다. 직접 반포, 잠실에 수천세대의 주공아파트를 짓는 한편 규제 완화 등으로 현대, 한신 등 민간 건설사의 아파트 건설을 장려한다. 또 부유층들이 아파트를 구입하도록 대기업을 강남으로 이전시키는 등 여러 조처를 취했다.

그 핵심은 학교 이전이었다. 중구, 종로구, 성북구 등에 있던 명문학교들은 조세 감면, 낮은 지가 등의 혜택을 받고 강남으로 옮겨가 '8학군'을 형성했다. '부유한 사람들과 명문고를 다니는 자녀들이 사는 곳'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생겨나면서 아파트는 한국인들의 꿈이 됐다. '서구적이고 현대적'이라는 인식에 '살기 편한 곳', '아파트를 가지면 부자'라는 생각들이 더해져 아파트 신화가  탄생했다.

과연 아파트는 서구적이고 살기 편한 곳일까? 줄레조는 고개를 저으며  "흔히 '한옥은 불편하고 아파트가 살기 좋다'고 말하지만 아파트는 한옥 구조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장독대를 놓고 물건을 보관하던 마당의 기능은 다용도실과 발코니로, 공간이 구분됐고 출입 때마다 신발을 신거나 벗어야 했던 한옥 구조는 화장실에서 슬리퍼를 신고 실내에서는 양말이나 실내화를 신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식탁에서 밥을 먹어도 작은 상을 펴 가족들이 함께 과일을 먹는 행동 또한 한옥생활의 변종이라고 게 그의 분석이다. 

'한강의 기적'을 자랑하고 싶은 정부, '중간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을 꿈꾸는 도시민들, '서구화, 현대화'를 지향하는 개발도상국의 현실, 이 모든 욕망들에 힘입어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도시 하층민을 위한 주택정책으로 출발했으나 폭력과 소요 문제로 말썽을 일으켰던 프랑스의 실패작 아파트단지는, 그렇게 대한민국 성공신화의 상징이 됐다.  
 
새로운 도시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

하지만 신화의 힘은 영원하지 않다.  이미 1970년대 지은 아파트들의 재개발·재건축이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탄생한 모든 아파트들에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졸레조는 "이 건물들의 관리와 보수, 재건축 등을 어떻게 해나갈지 등에 한국 도시관리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며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한국은 어떤 도시형태와 사회구조를, 어떤 주택정책과 주거공간을 만들어가길 바라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 10일 오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브리핑룸에서 2012년 서울시 예산을 설명하는 박원순 시장 ⓒ 유성호


10일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오세훈 전 시장의 계획보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늘리고, 저소득층을 위한 '전세보증금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주거 문제뿐 아니라 도시 계획과 정책을 연구하고 마을공동체를 복원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단순히 건물을 짓기만 하는 게 아니라 도시를 어떻게 관리하고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여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한 번 더 깊이, 냉정하게 심사숙고하길 바라며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아파트 공화국>을 추천한다. '책벌레 시장님'이 벌써 읽으셨어도 한 번 더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