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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어머니는 칼을 자주 갈았다. 알을 가득 밴 4월 꽃게를 빠개거나 개고기 뒷다리를 자를 때면 일주일에 두세 번도 더 숫돌을 꺼냈다. 타일 하나 바르지 않은 시멘트 바닥에선 하수도 비린내가 났다. 부엌에 쪼그려 앉아 칼 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모든 짐승들의 어미가 그렇듯 크고 둥글었다. 허리 군살에 말려 올라간 티셔츠, 팬티 위로 함부로 보이던 허연 엉덩이 골, 나는 어머니의 뒤태에서 곧 사라져갈 부족의 그림자를 봤다. 어쩌면 어머니의 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사람들 중 더 작은 나라 사람들이 쓰는 그 말 때문인지도 몰랐다. 벵골 호랑이에게는 벵골 호랑이의 말이, 시베리아 호랑이에게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말이 필요하듯. 나이 들어 문득 쳐다보게 되는 어머니의 말. 아름다운 관광지처럼, 나는 그것이 곧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대개 어미는 새끼보다 먼저 죽고, 어미가 쓰는 말은 새끼보다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칼을 갈 때면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끊임없이 먹어야 했던 것처럼 어머니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다. 딱히 할 일이 없어도 부엌에서 어머니가 이런저런 것을 재우고, 절이고,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새끼답게 마구 게으르고 건방져지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바쁘다는 걸 빤히 알면서도, 방바닥에 자빠져 티브이를 보거나 문지방에 기대 잔소리를 했다. 해가 지면 밥 짓는 냄새가 서서히 풍겼다. 도마질 소리는 맥박처럼 집 안을 메웠다. 그것은 새벽녘 어렴풋이 들리는 쌀 씻는 소리처럼 당연하고 아늑한 소리였다. 나는 어머니가 쓰는 칼을 쥐어보곤 했다. 위험한 물건을 쥐고 있단 이유만으로 나는 그것을 통제하고 있다 믿었다. 나무로 된 칼자루는 노란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긴 세월, 자루는 몇 번 바뀌었으나 칼날은 그대로였다. 날은 하도 갈려 반짝임을 잃었지만 그것은 닳고 닳아 종내에는 내부로 딱딱해진 빛 같았다. 어머니의 칼에서 사랑이나 희생을 보려 한 건 아니었다. 나는 거기서 그냥 '어미'를 봤다. 그리고 그때 나는 자식이 아니라 새끼가 됐다.

- 김애란, <칼자국> 중에서 

'아빠' 두 글자가 휴대폰 화면 위에 떴다. '집' 혹은 '엄마' 아니면 동생들말고 보름달마냥 이따금씩 선명하게 보이는 이름이다. 여느 50대 남성들과 다를 바 없는 아빠다. 전화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무슨 일이 있거나 아님 정말 생각이 났거나 할 때다. 어제는 전자에 가까웠다. 

"내일이 엄마 생일인데, 안 까먹었나 해서"
"아빤 참, 내가 설마 그런 걸 잊어버렸을까봐"

짧은 통화 후 엄마에게 전화했다.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평일이라 집에 못 가고, 고물가에 쥐꼬리보다 조금 긴 월급은 작은 선물이라도 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아 마음만 무거운 통화였다. 매년 엄마 생일이면 미역국이라도 직접 끓여주고 싶은데 늘 생각으로 끝난다. 내일도 엄마는 직접 커다란 솥에 탱탱 불린 미역을 넣고, 핏기를 뺀 소고기를 넣고 한가득 국을 끓이겠구나. 눈물이 났다. 직전에 마신 맥주와 소주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끝을 상상하기'라는 오랜 버릇은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를 담담하게 만드는 힘이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모시겠습니다'라는 뻔한 거절의 말에도, 숫자와 숫자 사이에서 정작 나를 찾지 못할 때에도 아픔과 어지러움을 쉬이 벗어날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상상하는 '끝'은 우울하다. 그건 늙음이고, 세월의 무상함이고, 잊어야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일이다. 주름이 깊어지고 흰 머리가 많아지는 부모님의 모습도 그 중 하나다. 아빠가 목장갑을 끼고 잘 익은 조개를 골라줄 때. 엄마가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수북히 담아줄 때. 온가족이 도란도란 앉아 과일을 먹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실 때. 그런 행복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는 슬픈 상상이다. 꾸고 싶지 않은 꿈이다.

아, 그런 상상은 이제 그만.

주말에는 모처럼 팔을 걷고 부엌에 서야겠다. 닭볶음탕이든 김치찜이든 재주부릴 요리 하나쯤 있으니까, 호사롭진 않아도 정성이 담긴 밥상 한 번은 차려야겠다. 서걱서걱 김치를 썰고, 양파와 파를 다듬고 칼자루로 콩콩 찧은 마늘로, 내 칼자국들이 가족들의 온 혈관에 새겨질 수 있도록. 미안해 하기보다는, 웃으며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