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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몇 가지/조금만 더

기자의 칼은 먼저 스스로를 겨누어야 한다

기자의 칼은 먼저 스스로를 겨누어야 한다.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멀리도 가까이도 해서는 안 될 사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고 만나면 알고 있는 걸 주고 받아야 하는 직업이니 그렇다. 

미국 관료들과의 문제가 불거졌으니 미국 언론의 윤리 규정들에서 살펴보자. <미국 신문편집인회 원칙선언>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언론은 그 종사자들에게 근면과 지식뿐만 아니라 언론인의 독특한 의무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성실성을 추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뉴스와 의견을 수집.전파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국민에게 그 때 그 때의 쟁점들을 알려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함으로써 공공복리에 기여하는데 있다. 

= 그 때 그 때 국민에게 알리는 게 아니라 방송 전에 상대국 정보 담당자에게 알려 상대국의 외교 정책 수립에 기여하면 곤란하다. 

▶이기적인 동기나 가치 없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직업적 역할에 따른 힘을 남용하는 것은 공중의 신뢰를 저버리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 그저 흥겹고 돈독한 분위기 조성과 교제를 위해 종종 만나 정보를 주는 것은 곧 가치 없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직업적 힘을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

▶언론인은 언론을 이기적인 목적에 이용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 언론인은 이해가 상충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 또는 그렇게 비치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 미국 관리에게 자세한 정치적 정황을 설명하는 것이 본국에 보고되고 논란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이상 피하거나 대화 내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했어야 한다.

사기업인 신문에 근무하는 사람이 지키라고 제시하는 원칙이다. 공영방송 종사자는 훨씬 더 엄격한 테두리 안에 스스로를 가둬 두어야 한다. 이번 주 들어 기업인으로부터 수십억 원에 이르는 향응을 오랫동안 받아왔다고 폭로된 신재민 전 차관이나 저축은행 로비스트에게서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다고 검찰에 불려 가 밤샘 조사를 받은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 두 사람 모두 청와대 비서관 이전에 기자들이었다.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래서 ‘회색은 검어질 뿐 결코 다시 희어지지 않는다’고 경고하는 것이고 ‘나의 칼은 나를 겨누어야 한다’며 항상 깨어 자신을 반성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언론과 기자 사회의 자성과 거듭남을 간절히 바란다.

- 변상욱 <CBS> 대기자, 기자수첩 중에서(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924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