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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몇 가지/조금만 더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과연 이 모바일 시대에 1만 3천 단어의 긴 기사가 읽힐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잡지를 제외하고 말이죠. 저를 기분 좋게 만들었던 것은 많은 독자들이 웹에서도 기사를 읽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띄울 수 있는 것이 웹이든 휴대전화 스크린이든 간에 1만 3천 단어의 기사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이상적인 장치인가 하는 질문이 나옵니다. 물론 저는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다. 기사가 흥미롭다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도 읽을 것입니다. 어쩌면 출력할 수도 있구요. 이런 현상은 심층보도와 이야기식 저널리즘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또한 아이패드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요즘 관심거리인 아이패드는 긴 기사를 읽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입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이야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몇 천년 동안 지식을 공유하는 통로가 되어왔고,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이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도 이런 이야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재정마련입니다.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되는 자원을 얻느냐 하는 것이지요. 또한 기자들이 현장에 나가 몇 달동안 취재하고 보도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지원하는 것 말입니다. 둘째는 플랫폼입니다. 기사를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사를 읽거나 담을 수 있는 장치 말입니다. 화면이 아주 작거나해서 읽기에 지나치게 불편하면 안 되겟지요.

만약 이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 미래의 한 부분이 된 것이고 미래에도 이런 보도가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어려움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겠지요. 만약 사람들이 아주 짧은 글만 읽고 트위터를 쓰는 습관을 갖는다면, 또는 모든 것이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지금, 기사를 읽다 링크를 클릭했더니 정신 사납게 게속 어딘가로 연결된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집중할 수 있을까요? 아마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처럼, 우리의 두뇌는 이야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런 본성이 바뀔 수 있을까요?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는 세상에서 성장한 요즘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두뇌를 가지게 될까요? 앞으로는 길고 심층적인 기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까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심층보도에 대한 관심이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플랫폼에는 확실히 장점이 있습니다. 다시 제 기사로 돌아가 보지요. 오늘 이 포럼의 주제를 생각하다 보니, 메모리얼 병원에서 죽음을 앞당겼던 사건에 대한 첫 보도가 모바일 기술 덕분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 병원에서 한 의사가 그들 사이에 오가던 이야기를 들었고 우려할 만한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그의 휴대전화 신호가 약해 통화는 불가능했지만 친구와 가족에게 문자를 보낼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료진들이 환자의 안락사를 거론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는 언론에 연락해 달라고, 여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말대로 했지요.

환자들에게 주사가 이루어진 바로 그날, 조앤 실버너라는 NPR 뉴스 기자가 그 의사의 친구 한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어떻게 메모리얼 병원으로부터 문자를 받앗는지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리는 첫 보도였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 보면, 모바일 기술로 인해 뉴스가 기자와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큰 사건이나 재난에 대한 기사를 쓸 때 모바일 기술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바일은 신속하기 때문에 그 힘이 막강합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매우 빨리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만약 홍수가 나고 사람들이 고립된다 해도 모바일 기술은 유효합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앞의 경우에는 가능했습니다. 아주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또 다른 하나는 지리적 범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 만한 아주 흥미로운 모델은 Ushahidi.com이라는 웹사이트입니다. 이 웹사이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있는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문자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입니다. 2007년 케냐에서 선거 후의 폭력 사태 때 처음 등장했고 이후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은 멕시코만의 엄청난 기름 유출 사태 때도 쓰였습니다. 해변에 기름이 침식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써서 보낸 것이지요. 또한 지진이 발생한 아이티에서도 이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포르토프랭스의 여러 지역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렸지요. 거기는 지진 때문에 심한 피해를 본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자원과 보도를 연결하는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아주 뛰어난 방식입니다. 이런 것은 기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이를 이용 중인데, 지난 2년간 사용된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심층보도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마지막 어려움은 좀 특별합니다. 저는 어젯밤에 <워싱턴포스트>의 디지털 국장이자 부회장인 V.J 라빈드린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이 여전히 잘 하지 못하는 한 가지는 '뜻밖의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이라고 하더군요. 아직은 웹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요.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현 시대에 속한 것이 아닌 어떤 콘텐츠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의미지요.

여러분이라면 몇 년 전에 있었던 재난에 대한 1만 3천 단어짜리 기사를 읽을까요? 굳이 찾아서 읽으려 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읽어보고 싶어 할 수는 있겟지요.
그러므로 질문은 새로운 플랫폼과 기술이 '뜻밖의 것'을 찾아내는 경험을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 셰리 핑크 미 <프로퍼블리카> 기자,
 2005년 카트리나 피해지역의 한 병원에 관한 심층보도로 2010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수상


출처 : <오마이뉴스> 모바일 시대의 긴 이야기 형식 기사와 탐사 저널리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