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가씨"라고 하는 건지, 아님 아줌마 혹은 아저씨인지 구분할 수 없을만큼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었다. 지하철이 쏟아낸 사람들 무리 속에 뒤섞여 계단을 오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울듯 말듯한 얼굴의 그 할머니를 지나치며 개찰구를 나설 때, 참 뜬금없게도 '울어버린 빨간 도깨비'란 동화가 생각났다.
어린시절 엄마는 여느 집처럼 세계아동문학전집, 한국아동문학전집 등 전집시리즈를 장만해 책꽂이를 채워주셨다. 하지만 무겁고 재미없어 뵈는 전집보다 가벼운 단행본이 더 눈에 들어왔다. 4학년 쯤이었을까? 새로운 책을 사 읽는 것도 살짝 싫증났을 무렵, 책꽂이 한 켠에 우두커니 놓여 있던 그 전집 중 하나를 빼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주인공이 뭐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유독 삽화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책이 바로 '울어버린 빨간 도깨비'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흉측한 괴물의 대명사인 도깨비가 사람을 좋아한다. 친구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도깨비만 보면 열이면 열 36계 줄행랑이다. 끙끙 고민을 앓고 있던 빨간 도깨비에게 친구 파란 도깨비가 제안을 한다. 마을로 내려가 행패를 부릴 테니 그때 자기를 제압하라고, 그럼 너는 인간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계획은 성공했고, 빨간 도깨비는 인간들과 친구가 된다. 함께 차를 마시고, 아이들과 들판을 뛰놀고… 빨간 도깨비는 그렇게 파란 도깨비를 잊는다. 어느 날 '파란 도깨비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빨간 도깨비는 텅 빈 파란 도깨비의 집에서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행복을 빈다는 친구의 말에, 그는 울어버린다.
나무로 지은 일본 전통 가옥 안에서, 화려한 무늬의 가운을 입은 빨간 도깨비가, 황소보다 큰 몸집에 온 몸에는 털이 무성한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저 앉아 있었다. 의외의 슬픔은, 더 큰 애처로움을 준다. 그 누가 상상조차 했을까, 도깨비가 울어버릴 거라고.
하지만 요즘은 '의외의 슬픔'조차 찾아보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다. 슬픔을 말하는 것조차 사치인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곁에 있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서 눈물을 흘리는 일 또한, 무언가 갖고 있던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손님 하나 없이 텅 빈 가게에서 우두커니 티비만 보고 있는 식당 주인, 길바닥에서 차갑게 식은 밥 한 덩이를 후루룩 삼킨 힘으로 크게 소리치는 노점상, 초점 없는 눈빛으로 잡동사니를 끌어 안은 채 굳어버린 걸인들, 찾아주는 사람 없이 하루를 버티는 노인들, 최저임금도 못 되는 월급을 받으며 버티는 젊은이들… 삶이 주는 슬픔을 느낄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빨간 도깨비가 보여준 '눈물의 의외성'은 엠비에게만 가능한 일일지도. 그것이 주는 슬픔의 무게는 다소 가볍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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