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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그녀에게 말하다' 중에서

북 디자이너 정병규

-생사를 가르고 신을 만들어 내던 책이 독점 분야를 디지털에 내주고 반성을 한 거죠. 사전 같은 정보는 이제 디지털에 줘야 하고 책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야 해요. 새로운 아날로그란 쉽게 말해 손의 부활이에요. 계속 정보와 손의 거리가 멀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문명사의 반전입니다. 다른 매체는 에너지만 연결시키면 절로 정보가 나오지만 책은 인간의 손으로 열지 않으면 안 돼요. 결코 신속하고 편리하지 않죠. 얼마나 오만한 매체인지 몰라요. 잠시라도 인간이 주의를 돌리면 삐쳐서 제자리로 돌아가버리죠. 중간을 빼먹어도 줄거리가 이해되는 TV연속극과 달라요. 새로운 책은, 책이 촉각의 매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달은 책이에요. 여태 나는 시각매체입네 주장해온 책이 절에 가서 반성하고 내려온 셈이죠.

-기자들 만나면 현재 신문이 매체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터인데 왜 그리 아직 오만하냐고 묻곤 해요. 뉴스를 가장 먼저 접한다고 정보가 제일 많고 해석력이 제일 뛰어난 건 아니잖아요? 예컨대 <씨네21> 기자가 먼저 영화 본다고 영화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되죠? 우리 신문은 뉴스를 독점하던 시대의 의식을 그대로 갖고 아직 남의 말을 안 듣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대단하다고 해도 모두에게 대단할 수는 없으니 모르는 부분을 인정해야 하는데 말로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토론도 해놓고 결국은 엉뚱한 결정을 내려요. 서양의학에 몸을 못 맡기던 옛 양반규수처럼 병들었는데도 의사를 못 믿고 약방에서 약이나 사다 먹는 식이죠.

건축가 황두진

-사회가 진보를 믿고 한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진취적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임태주택을 많이 지어야 해요. 그런데 현재 우리는 주택은 꼭 소유해야 한다고 보거나, 전세제도에 의존하며 월세 사는 사람을 마치 사회에 뿌리 못 박은 부평초로 취급하는 문화를 만들어왔거든요.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독립의 하드웨어를 얻기 위해서 부모의 경제권 속으로 더 깊숙이 편입되는 일을 여러 세대가 반복해온 셈입니다. 나라도 개인도 경제적인 독립이 없으면 사고의 독립은 힘들어요. 그러므로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임대주택을 값싸게 공급해야 해요. 또 건축가가 그런 공공임대주택 설계에 개입하면서 시민과 가까워질 수 있고요. 젊은 부부들이 승효상 선생님처럼 훌륭한 건축가나 하다못해 저 같은 사람이 설계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공공자본 운용만 잘 되면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 이 정도의 국가적 부로도 모두 훨씬, 폼나게 근사하게 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