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때 못다한 일을, 떠날 때 말로써 갚을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떠날 때는 말없이' 가 제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도 소수의견이라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수 의견에 따라 마지못해, 그래서 짧게, 그러나 제 마음을 담아 퇴임인사를 드립니다.
법관은 누구나 판결로 기억됩니다. 저도 그러기를 소망합니다. 몇몇 판결에서의 독수리 5형제로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수많은 판결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34년간 잘한 것 못한 것 모두 제 책임입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평가와 비판은 제 몫이지만 상처받은 분께는 용서를 구합니다. 역부족, 중과부적(衆寡不敵·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뜻)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최근의 어느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직접 살인 형을 집행할 명분은 없다는 것과 아버지가 그 아들이 그 아들의 형과 동생과 다시 그 아들이 자신의 믿는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 1년 6월의 형을 사는 사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등 이러한 견해들이 다수의견이 되는 대법원을 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으면서 떠납니다.
재판은 판결문에 서명한 법관들끼리 한 것이 아닙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여러 모습으로 고생하신 직원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함께 참여하고 조력한 재판으로 더불어 남을 것입니다. 경비관리대의 실무관과 청원경찰, 새벽어스름에 사무실과 잔디밭을 살펴주던 파견근로자 여러분, 이른 아침 여러분과의 만남은 제 힘과 용기의 원천이었습니다. 재판연구관 여러분의 열정과 헌신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인연을 맺고 함께 한 시간이 헛되거나 그냥 사라질 리 없습니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자존감과 자긍심으로 기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여성법관들에게 당부합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전체 법관의 다수가 되고 남성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전체 법관의 비율과 상관없이 양성평등하게 성비의 균형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대법원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징이자 심장이기 때문입니다. 헌법기관은 그 구성만으로도 벌써 헌법적 가치와 원칙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법원을 떠나 자유인으로 돌아갑니다. 훈련소 면회 한번 못 가준 아들들에게는 때늦은 것이지만 아직 기다려주는 남편이 있어 그리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하고 가르치는 일도 뜻 깊겠으나, 제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깨치고 싶은 꿈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던 작가 박경리의 심경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먼길'로 시작한 저의 대법관으로서의 임기를 이제 그의 시 '내가 한 일'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만 싶습니다. 강물을 안으로 집어넣고 바람을 견디며 그저 두 발로 앞을 향해 걸어간 일 내가 한 일 중에 그것을 좀 쳐준다면 모를까마는"
여러분과 그 가정이 늘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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