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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밑줄을 긋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중에서


다니엘 튜더 ⓒ 이희훈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국가에서도 정부 비판 언론은 존재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판 언론은 정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비판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동시에 정부 비판 세력이 극단적인 그룹이나 비주류로 인식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략)... 사실 정부 비판 언론이 정부에 위협이 되는 때는 그들이 합리적 중도노선을 지향하는 시점이다. ...(중략)...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더욱 '합리적인' 진보 성향의 신문, 좀더 균형감각 있고 잘한 게 있을 때는 때때로 정부를 칭찬할 줄도 아는 신문이 더 많은 독자에게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략)... 한국이라는 환경에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진보 언론은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성향을 강화시킬 뿐이다. 이대로는 KBS 뉴스처럼 미묘하게 편향된 주류 언론에 영향을 받는 중도 유권자층을 설득할 수 없다. 정말 효과적인 정부 비판 언론이 되려면 진보적이되 합리적인 관점에서 때로는 정부를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건강, 생활, 음식 같은 주제처럼 비정치적인 '소프트'한 내용도 보강해야 한다. 지적이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미디어를 지향해야 한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은 MB, 박근혜, 박정희 비판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네거티브의 진수를 보여줬다. 정부에 대한 진지한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마치 1980년대로 회귀해서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략)... 한국 젊은이들은 보수화됐다기보다는 하얀 도화지 상태에 가깝다. 문제는 젊은이들에게 있지 않다. 합리적이면서 진보적인 의제를 내세운다면 누구라도 수긍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의제를 제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회 전반에 불평등과 불만족이 증대되면서 "정치인들은 그 나물에 그 밥" "정치인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나"라고 푸념하는 유권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선택도 없다고 느끼고 있다. 상황은 이렇다 해도 새정치연합에 불리할 뿐 새누리당은 건재하다. 한국에서 새누리당은 일단 기본으로 설정된 전제조건임을 인정해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수백만의 노년층은 무조건 새누리당을 찍는다. 반면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긍정적 유인이 필요하다.


음모론은 힘없는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일 수도 있으나, 힘없는 자들을 계속 힘없게 만들기도 한다. ...(중략)... 분노할 거라면 합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성공 지향적인 한국 사회에서 진보 진영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부자를 벌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보적이되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중략)... 네거티브 전략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표 얼굴만 바꾸거나 계층 간 투쟁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포지티브 전략을 구사해야 진보 진영이 이길 수 있다. 평균적인 유권자들에게 보수주의는 일종의 기본 세팅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변화를 싫어한다. '얻은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히 새누리당을 공격하거나 새누리당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 하는 태도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는 시대다. 새누리당은 기존 체제의 연속성을 대변하는 정당이므로, 현 상황에서는 지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아이디어를 주도하는 것은 야권의 몫이다.


<오마이뉴스> 2015년 2월 4일자 인터뷰


① "기민하고 이기는 법 아는 정당은 새누리당이 유일" http://omn.kr/blhp

② "김정은이 대통령이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을까" http://omn.kr/bl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