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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머뭇거림보다는

또 죽을까봐… 오늘도 전화기를 듭니다

심리치유센터 ‘와락’, 쌍용차 23번째 죽음 막으려 전화 설문 실시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벨 소리에 칼국수를 먹던 사람들의 손가락이 멈췄다. 식탁 한 쪽에 앉아있던 김지영(가명, 경기도 평택시 합정동, 주부)씨가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달려갔다. 몇 분 전까지 동료 세 명과 전화를 돌리던 곳이다. 아까 연결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한 통화도 놓칠 수 없었다.


김씨는 경기도 평택시 통복동에 위치한 심리치유센터 ‘와락(대표 권지영)’에서 지난 12일부터 전화 설문조사 진행요원으로 자원봉사 중이다. 와락은 2009년 회사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3년 전 사측의 정리해고 방침에 쌍용차 노조는 강하게 반발하며 공장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77일간 옥쇄파업을 했다. 이후 노사 합의과정에서 해고자 159명, 희망퇴직자 2026명과 무급휴직자 461명 등 26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까지 해고의 충격과 생활고 등에 시달리던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17명이 세상을 등졌다. 


일자리 잃은 노동자와 가족 22명 숨져…남은 이들 실태조사 진행 중


와락은 ‘18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쌍용차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마련한 곳이다. 그러나 와락이 생긴 뒤에도 죽음은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22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12년 동안 지게차로 자재들을 나르던 김씨의 남편도 파업에 참여했고, 무급휴직자가 됐다. 1년간 공사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남편은 넉 달 전 평택의 한 중소업체에 일자리를 얻었다. ‘쌍용차 출신’임은 밝히지 않았다. 


한동안 김씨는 비행기나 헬기소리만 들어도 파업 때가 떠올랐다. 화가 났다. 이후 와락에서 다른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며 김씨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중학교 1학년인 그의 둘째 아들도 이곳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로 수학 지도를 받고 있다. 


와락은 김씨와 그 가족들처럼 쌍용차 사태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을 찾아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심리치료와 상담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기 위해 전화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대상은 노조에서 제공받은 명단에서 중복번호나 결번인 것을 제외한 약 800명뿐이다. 


희망퇴직자 2천여명, 회사의 명단 비공개로 연락 어려워


공장을 나온 뒤 아예 평택을 떠나거나 이사를 해서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있는데다 희망퇴직자 대부분의 연락처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시민단체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가 지난해 5~8월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고용노동부 산하 평택고용센터를 통해 회사에 희망퇴직자 명단과 연락처를 요청하긴 했다. 회사는 ‘개인정보 보호 동의 문제가 있다’며 자료를 주지 않았다. 


어렵사리 연결이 닿은 사람들이 답변을 거부하거나 도움이 필요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김씨도 10명 중 한두 명꼴로 겪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개 현재 힘든 이유로 재정 문제를 꼽았다. 자녀문제나 가족 간 갈등 역시 속상하게 만드는 원인이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했다. 특히 미혼인 사람들일수록 더 힘들어보였다. 몇몇 사람은 김씨와 통화하며 ‘속 터놓고 얘기할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와락에 오라’는 제안은 아직 부담스러운 모습이었다.


25일 현재까지 3분의 1가량 진행된 설문조사는 다음주까지 이어진다. 와락은 연락처가 없는 다른 쌍용차 노동자들와 접촉하기 위해 조사문항에 ‘동료를 추천해달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렇게 확보한 연락처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 나설 계획이다. 설문에 응답 안한 사람들에게는 곧 발행할 와락 소식지를 보내거나 직접 방문하려고 한다.


2012. 4. 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5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