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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머뭇거림보다는

‘관광 중단 4년’ 금강산도, 남북관계도 안 보여

[현장] 피해만 쌓여가는 강원 고성 주민들 “정부는 있으나 마나”


▲ 6일 오후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해금강 지역은 짙은 해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채 텅빈 육로관광 도로와 동해선 철길만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 권우성


북위 38.35도. 대한민국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도 금강산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6일, 종일 물기를 머금고 있던 하늘은 산을 꼭꼭 숨겨버렸다. 통일전망대에 오른 누구도 금강산을 볼 수 없었다.


2003년 2월 14일 금강산 육로관광 길이 열렸다. 이미 1998년부터 여객선을 타고 금강산에 오고갈 수 있었지만, 자동차를 이용해 더 편리하게 금강산에 갈 수 있게 되면서 관광객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경제활동이 농어업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어획량이 점점 줄어 어려움을 겪던 강원도 고성군에도 금강산 관광은 일자리 창출, 지역경기 활성화 등 긍정적 영향을 줬다.


30년 넘게 현내면 초도리에서 ‘갑호주유소’를 꾸려온 박응동씨(63,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도 그때는 정신없이 바빴다. 2004년 한해에만 약 27만 명이 육로를 거쳐 금강산을 찾았다. 관광객 집결지인 ‘화진포 아산 휴게소’ 옆에 위치한 그의 주유소에도 관광객을 태운 버스들이 계속 몰려왔다. 200리터짜리 석유를 하루에 10개씩 썼다. 


2008년 7월 11일 새벽, 몇 발의 총성이 모든 걸 바꿨다.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을 맞고 숨졌다. 다음날 현대아산은 곧바로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갑호주유소에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졌다. 요즘 하루 판매량은 드럼 1~2개 수준이다. 박씨는 종업원을 내보내고 아내와 단둘이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다. 차량 주입구에 넣었던 기계를 정리하며 움직일 때마다 그에게서 석유냄새가 번져왔다.


“사는 게 너무 어려워요. 빨리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될는지…. 주유소를 계속 운영할지 말지 생각 중입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 후... 손님 발길 뚝 끊긴 가게들 하나둘 문 닫아


모두가 비어 있었다. 대한민국 동북쪽 끝마을 명파리로 가는 길에는 영업 중인 식당이나 건어물점을 찾기 어려웠다. 한때는 있었다. 이종복씨(57,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는 그 시절 명파리를 찾은 사람 중 하나였다.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한 그는 빚을 갚고 남은 2억 원을 들고 명파리에 왔다. 금강산 육로 관광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중장년층이나 노인이 대부분인 관광객들에겐 4~5만 원대로 값이 저렴한 오징어, 명태가 주변에 선물하기 적당했다. 민통선 검문소 바로 앞에 위치한 이씨의 건어물점 ‘통일전망대 끝집’은 한창 때 1000만 원가량 매상을 올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끝집의 매상은 0원이다. 


정부는 말이 없었고, 손님은 줄기만 했다. 마냥 가게 문을 열어둘 수 없었다. 2년 전 영업을 중단한 그는 막노동 등으로 입에 풀칠하고 있다. 서른 살 된 큰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고2와 대학교 2학년인 두 딸이 걱정이다. 생활비 등으로 쓴 카드론, 은행 대출은 3천만 원짜리 빚으로 남았다. 5만 원짜리 휴대폰 요금도 부담스러워진 이씨는 얼마 전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을 신청했다. 당장 빛 독촉 전화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명파리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길의 첫 번째 건어물점 ‘99건어물 금강산 직매장’을 운영하는 이미라씨는 힘든 사정을 털어놓으려니 구차해지는 기분만 들어 언론사와 인터뷰를 꺼려왔다. 하지만 그도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6일 오후 자신의 가게 한 쪽에서 이종복씨와 기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씨는 조금씩 입을 열었다.


▲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에서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도로에 있는 첫 번째 건어물점 '99건어물 금강산 직매장'을 운영하는 이미라씨가 한산한 도로를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기약 없이, 정부 지원 없이 흐른 4년... 침묵만 가득한 ‘금강산 가는 길’


“임대료가 월 150만 원이었는데, 금강산 관광 중단되면서 건물 주인이 절반으로 내려줬어요. 3년째. 그것도 유지가 안 돼요. 빚내서 집세 주고 있는 거라니까. 가게 월 매출이요? 50만 원도 안 돼요. 넉 달이 아니고 4년째 묶여 있는데 오죽하겠어요? 말이 필요 없지.” 


이종복씨가 “건물 주인이 정부보다 낫죠, 이 정부는 있으나마나 한 정부”라며 대화에 끼어든다. “그렇다고 금강산 중단됐으니까 학비 면제, 세금 감면 이런 것도 없고. 아무 얘기 없잖아요”라며 이미라씨가 맞장구를 쳤다. 그동안 두 사람의 가게와 함께 영업하던 건어물점 2곳과 식당 3곳은 문을 닫았다. 고성군청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문을 닫거나 영업을 중단한 음식점만 159곳이다. 주민 484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박주환씨(60,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도 우럭, 광어, 오징어가 헤엄치던 수족관을 가게 뒤쪽에 내버려둔 지 3년이 넘었다. 8억 원 이상 들여 2007년 7월 ‘해금강 횟집’을 열었던 박씨는 관광 중단으로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수족관이 있던 자리에는 널찍한 평상이 놓였다. 금강산 골프 여행사가 나간 옆 건물에 민박이라도 놓으려고 들였다. 빚 독촉 전화는 계속 오는데, 장사는 시원찮다.  


‘곧, 곧’ 했던 관광 재개는 4년 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그사이 고성군을 찾던 관광객은 2007년 626만명에서 지난해 483만명으로 감소했다. 한때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꽉 차 있던 ‘해금강 횟집’ 주차장에는 이날 박씨의 승합차만 세워져 있었다.


통일부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 세워진 차량들도 대부분 직원 소유였다. 여기서 차로 20~30분만 가면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가 나온다. 4년째 갈 수 없을 뿐이다. 그 사이 이곳에서 일하던 통일부 직원은 12명에서 6명으로 줄었고, 세관과 법무부 등 다른 부처 직원도 최소 인원만 남았다. 까마귀 울음이라도 없다면, 텅 빈 남북출입사무소를 채우는 건 침묵뿐이다.


“위로라도 해줘야”... 안개 속에 쌓인 피해주민 지원대책, 남북관계


침묵은 정부와 고성군 사이에도 존재했다. 이명철 현내면 번영회 회장(55)은 고성지역 피해에 별다른 반응 없는 정부를 비판했다. 관광의 시작과 끝, 모두 정부가 내린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주민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어떤 위로도 듣지 못하고 4년을 버텨왔다. 


“지금껏 피해본 주민들에게 중앙부처 책임자들이 와서 위로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좀 살아갈 수 있는 방향이라도 찾아줘야죠.” 


이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달 13일, 4년 만에 처음 고성군을 방문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관광객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조치 등을 마련하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계속 해오던 이야기와 다른 내용은 없었다. 


“흐린 날도 해금강은 보이는데, 오늘은 안개가 짙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요.”


이날 <오마이뉴스> 취재진에게 통일전망대를 안내해준 군 관계자는 말했다. 끝내 금강산은 보이지 않았다. 금강산 관광 중단 4주년, 박완준·박응동·이종복·이미라·박주환씨의 희망도, 남북관계가 나아갈 길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 금강산 육로 관광객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붐볐던 '화진포 아산 휴게소' 넓은 주차장에는 금강산으로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던 미니버스 4대만 운행이 중단된 채 주차되어 있다. 버스에는 남측 관광객들을 태운 차량임을 알리는 깃발이 낡았지만 그대로 꽂혀 있다. ⓒ 권우성


2012. 7. 1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4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