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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바람이 불었다

대한민국은 지금껏 불통의 블랙홀, 왜곡의 블랙홀이 막강했다. ⓒ연합뉴스

한때 '구멍'이 생겼다. 자신의 대선캠프에서 일한 사람들을 방송사 임원으로 임명하고, 멘토를 대한민국 미디어 정책의 수장으로 앉힌 '가카'께서 언론계에 뚫은 거대한 구멍이었다. BBK 주가조각 사건, 4대강 사업 등 정권에 비판의 칼을 세운 뉴스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시장과 미국은 가까이, 분배와 북한은 멀리'라는 신조에 어긋나는 이야기들도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블랙홀처럼 막강한 흡입력을 자랑하며 구멍은 제 몸집을 불려갔다. 그때 네 남자가 나타났다. 작은 스튜디오에서 웃고 떠들며 권력을 비판하고, 그들의 압박에 "쫄지마"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투박하지만 쉽고 솔직한 그들의 화법에 열광했다. 인터넷 방송(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라는 바람은 그렇게 한국 사회의 구멍을 메우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 언론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하지만 시민으로서 알아야 했던 이야기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졌다. '유례 없는 일'이라며 정부가 장밋빛으로 꾸미던 자원외교가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우리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한미 FTA가 농민,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알게 됐다. 권력을 감시하기는커녕 해고·광고탄압 등이 두려워 몸을 사리던 신문과 방송에서 등을 돌렸다. 소수정당과 군소매체는 물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으나 그럴 길이 없던 사람들에게 '팟캐스트'라는 나꼼수의 형식은 새로운 입이 됐다. 숨어 있거나 사라져가던 다양한 말과 글이 '나꼼수 바람'을 타고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힘 있는 자들의 이야기만 남아 있던, 그들의 말과 생각만 접할 수 있던 불통(不通)사회에 다양한 의견들이 '소통'할 가능성이 생겨났다.

하지만 거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상처가 남는 법이다.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 수십만씩 모일 만큼 세차게 분 나꼼수 열풍은 팬덤으로 이어졌다. 팬덤은 옳고 그름보다는 내 편 네 편을 따진다. '반MB'라는 나꼼수 구호에 환호하고, 출연진 중 하나인 정봉주 의원의 수감에 분노한 사람들은 점점 더 '당신은 어느 편이냐'는 질문만 던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일었던 '비키니 시위 논란' 역시 같은 맥락이다. 논란의 핵심은 '비키니 시위'란 정치 행위를 '성(性)적 매력'의 관점에서 받아들인 나꼼수 출연진의 태도였다. 그러나 수많은 논쟁 속에 남은 것은 "불편하면 듣지마"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같은 편인데, 우리는 똑같이 현 정권을 반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분노였다. 나꼼수는 분명 우리 사회의 불통 구멍을 막고 소통의 구멍을 뚫었지만, 새로운 구멍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이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성찰 없는 열광과 비판 없는 지지는 사회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황우석 사태에서 그 폐해를 경험했다. 나꼼수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곳이 어떤 모습일까 우려하는 이유다.

적의 실체가 분명한 싸움은 전략을 세우기 쉽다. 적이 단 하나라면, 나머지는 모두 같은 편이라면 더욱 좋다. 그러나 2012년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들이 싸워야 할 적은 MB, 이명박 대통령만이 아니다. 세계경제 시스템은 물론 '99%'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신자유주의,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주의,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한반도 평화문제 등 수많은 적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나꼼수 바람만으로 막을 수 없는, 또 여러 이야기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는 구멍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많은 구멍들은 외면한 채 '가카'라는 구멍을 메우는 데만 급급하면, 나꼼수 바람은 잠시 스쳐간 돌풍으로 끝나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내일의 진보'까지 가져다 줄 바람이 불어야 할 때다. 

'오늘의 변화' 이상의 '진보'가 필요한 때, '미래 점령'이 필요한 때 아닐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