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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지금 여기,


# 가로등 빛에 반짝이는 보도블록들이 마치 비에 젖은 것처럼 보인다.
귀에는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흐르고, 유리창 너머로 이름모를 나뭇가지가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얼음이 녹아 살짝 밍밍해진 아이스아메리카 잔 겉에 송글송글 맺힌 물방울, 손가락 가는 대로 노래하는 키보드,
할 일은 많지만 문득 참 편안해진다.

# 토이의 무슨 노래였더라.. '낯설지만 편지가 나을 것 같네요, 말은 자꾸 날아가는 느낌이 들어서요'란 구절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오랜 시간 머릿속에 박혀있었나보다. 심각한 상황에서든 아닌 상황에서든 글을 쓸 때면 툭툭 튀어나온다. 그래서일까? 물론 예전에도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척했다지만, 갈수록 글이 무거워진다. 올 초 스터디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밀도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읽는 사람이 마음이 무거워져서 버겁울 뿐 아니라 공감 역시 어렵다는 이야기다. 좋은 말이 아니다.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눈길을 끈다기보다는, 너무 진지해서 무겁게 느껴지는 자소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사에 심각하고 가볍지 못하는, 그래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 때문은 아닐까 싶다. 공기처럼 가볍거나 공작의 깃털처럼 화려하기만 한 것보다 나을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간간이 의식한다. 문제로 느끼고 있다는 점과 고쳐야 겠다는 필요성,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게 별개이긴 하지만.

아직까진 운좋게 '전달'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다. 여튼 좀 가벼워질 필요는 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사람처럼 모든 말과 글을 힘들게 풀어나갈 필요는 없으니까. 마냥 가벼워도 문제겠지만, 무게들 덜어내야 함은 역시 '전달' 때문이다. 혼자 만족하려고 쓰는, 쓸 글은 아니니..(물론 블로그는 또 다르지만)

다만 여전히 '굳은 습관'이기에, 나름 잘 써먹으면 괜찮은 구석도 있기에 박민규의 말로 위안(혹은 자기합리화?;;)하련다.



스트레이트를 잘 치는 선수인데 계속 당신은 훅이 부족하다, 이두박근이 너무 약하다는 얘기를 들으면 결국엔 혼자 거울을 보면서 이두박근을 키우게 된다. 근데 그러면 실질적 펀치력은 약해지는 거다. 그리고 처음엔 특징이 달랐던 두 선수가 거의 비슷한 몸을 갖게 된다. 그런 것이 한국 교육의 특성인 것 같다. 계속 부족한 걸 지적해서 결국 평준화한다. 그래서 나는 애당초 그건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로 여긴다. 그래, 나 부족한 거 많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도 있다는 거다. 그걸로 더 충격을 주고 경기력을 높이는 방식을 찾겠다는 거다.


- 김혜리,『그녀에게 말하다』소설가 박민규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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