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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가재미-문태준

극빈2 

 칠성여인숙에 들어섰을 때 문득, 돌아돌아 獨房으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칼 방에 앚아 피로처럼 피로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천장과 바닥만 있는 그만한 독방에 벽처럼 앉아 무엇인가 한 뼘 한 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흘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창 공용버스터미널로 미진양복점으로 저울집으로 대농농기계수리점으로 어둑발은 내리는데 산서성의 나귀처럼 걸어온 나여,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는 오늘은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가재미2

꽃잎, 꽃상여
그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벌의 옷을 장만했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옷, 꽃상여
그녀의 몸은 얼었지만 꽃잎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두꺼운 땅거죽을 열고 독 같은 고요 속으로 천천히
그녀가 걸어 들어가 유서처럼 눕는다
울지 마라, 나의 아이야, 울지 마라
꽃상여는 하늘로 불타오른다
그녀의 몸에서 더 이상 그림자가 나오지 않는다

붉은 흙 물고기
상두꾼들이 그녀의 무덤을 등 둥근 물고기로 만들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무덤은 붉은 흙 물고기이니
물 없는 하늘을 헤엄쳐 그녀는 어디로든 갈 것이다

개를 데려오다
석양 아래 묶인 한 마리 개가 늦가을 억새 같다
털갈이를 하느라 작은 몸이 더 파리하다
석양 아래 빛이 바뀌고 있다
그녀가 정붙이고 살던 개를 데리고 골목을 지나 내 집으로 돌아오다


젖 물리는 개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강아지들 몸이 제법 굵다 젖이 마를 때이다 그러나
서서 젖을물리고 있다 마른 젖을 물리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