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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진보는 형용사가 아닌 동사다.

"세상의 이익과 상충하는 개인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물불 안가리고 몰염치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은 보수가 아니다. 그건 사회유해요소, 범죄자집단일 뿐이고 기껏 우대해서 점잖게 불러준다해도 “수구”일 뿐이다. 그 그늘에 진정한 보수의 싹이 가려져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 수구에 반대한다고 해서 다 진보가 되는 건 아니다. 반수구세력과 진보세력이 동일시될 때, 사회 전반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뻔뻔한 수구”대 “멈춰선 진보”의 대결이라니…기괴하고도 엽기적인 구도이다. 진보와 개혁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정치권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집단조로증의 유사증세를 보이는 40대는 도처에 널려있다. 병든 진보, 나약한 진보, 사실은 더이상 진보가 아님에도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패권적인 사이비 진보, 그 환부를 아프지만, 깊고 넓게 도려내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우선, 진보는 늘 옳은가? 진보는, 역사적으로 늘 옳은 판단과 결정을 했는가. 진보의 생명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세상의 무게중심을 밀어 변화시키고자 하는 진취성에 있다.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변화한다는 건 늘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동반한다.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약간의 시행착오를 감수하고라도 실험을 해보자는 게 진보다.  그러나 모든 실험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내가 진정한 진보라면, 내가 주장한 실험적 시도가 만의 하나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서 무게중심을 지켜 줄 보수를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 보수는 싸워 이겨야 하는 적이 아니라 공존하며 보완해야 하는 파트너이다. 새는 양날개로 난다고 말하지만, 진보의 상대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있는 진보적 대안을 위해서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야 한다. “소통”이란 상대방에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주장할 때만 내세우는 말이 아니다.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때로는 내 주장을 접을 수도 있다고 마음을 열어놓지 않으면, 소통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워낙 상대가 막무가내 일방통행이다 보니, 쉬운 일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가 먼저 “소통할 자세”를 갖추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편이 옳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쪽이 강성해지고 풍부해진다."     

"어떤 상대를 대상으로 싸우고 경쟁한다는 것이 자기 발전을 위해 효율적일 때도 있다.  느슨해 지려는 자신을 다잡고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을 대상으로 싸우는 동안, 이기기 위해 우리는 그들을 의식하고 그들이 하는 꼴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대응한다.  그러면서 닮아간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독재정권의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에 대항하기 위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집행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의견이 광범하게 반영되는 민주적 토론은 불가피하게 축소되곤 했다. 다른 의견을 가지는 그룹과 공존을 모색하기 보다는, 선명한 경쟁으로 성패를 가르는 편을 택했다.   정치적인 시민행동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이 아니라, 구속이나 체포를 각오하고 비장한 마음의 다짐을 한 후에야 참가할 수 있는 엄숙한 결단식이었다.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비장한 엄숙주의, 위계적인 의사결정방식,  분파성은 여전히 괴물과 싸운 흔적으로 우리 내부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진보의 적은 그 자신이다. 어떤 괴물도 우리 내부에 그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도록 우리를 추스리고 정화하고 단련해야 한다."

"귀를 열어 배우고 새로 탐구하고 소통하고, 무너진 진보를 새로 쌓고 건전한 보수의 진출을 독려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시대적 과제이다. 우리에겐 아직 그럴 시간도 그럴 능력도 충분하다.  일신 우일신, 진보는 그렇게 앞을 향해 움직이는 가운데 재생된다. 진보는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다."


 

- 이진순, '당신의 진보는 몇년도 산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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