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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지금 이 순간의 역사


- 저는 과거사가 결코 죽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언어로,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대중에게 접근하느냐 하는 부분까지 고려해서 우리가 내줄 수밖에 없는 부분은 내주고 다시 시작해야 할 부분들을 정확하게 다시 시작하자, 그런 마음입니다.
우리는 피해를 입은 개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개인들을 치고 들어갈 때, 가령 촛불 연행자들과 유모차 엄마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으로 기소된 분들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격을 지켜내야 했습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선생님들이 잘렸죠. 그 선생님들을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지켜줬습니까? 시민사회가 공동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였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어, 어, 어, 하면서 계속 깨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곁에서 손을 자아주는 것이 바로 연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317쪽)

-우리나라에서 민주개혁세력이나 진보진영은 새로운 젊은 층과 얼마만큼 호흡할 수 있었나요? 처음 촛불이 켜지고 아이들이 뛰쳐나올 때는 발랄함이 넘쳐났어요. 그랬다가 시민단체와 대책위에서 마이크를 잡으니까 어땠습니까? 다시 칙칙해졌어요. 재미없어졌습니다. 진보진영, 민주진영이 젊은 층의 발랄함과 대중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어떻게 공유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운동을 왜 합니까?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 아니에요? 그런데 그러한 개인의 욕구를 계속 억압만 해온 게 아닌가요? 우리가 이러한 욕구를 공동선으로 끌고 가기 위해 토론하고 모색하는 과정 없이 너무나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만 하니까 재미가 없죠. 저 역시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중에게 감동도 주지 못했고 이익도 주지 못한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재미든, 이익이든, 감동이든 줘야 하는데 이것도 못하고,저것도 못한 채 공자님 말씀만 반복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이죠. 설득력이 떨어지는 겁니다.(318-319쪽)

-진보도 문제가 많습니다. 뭐랄까, 따뜻함이 없는 것 같아요. 이념적 치열함만 남은 것 같습니다. 도대체 진보를 왜 하고 그 이념이 왜 피룡합니까? 적어도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진보, 이념보다는 인간을 추구하는 진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 생활인들의 욕망을 생각할 줄 아는 진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322쪽)

-도청에서 광주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죠. 그 사람들이 정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닙니다. 질 줄 알면서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졌기 때문에 바로 유산이 된 겁니다. 처절하게 잘 지는 것. 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323쪽)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1980년 광주에서 총을 내려놓느냐, 그래도 도청에 남을 것이냐 하는 한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바꾸고 우리에게 거룩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냥 몇백 명이 죽어버린 사건으로, 불미스러운 폭도의 폭력 사건으로 끝나버릴 수 있었던 갈림길이 바로 그 작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몇 명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농성 현장에 갔을 때 제가 정말 가슴 아팠던 것이 '동희오토' 노동자들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1천 일 동안 싸우고 있던 '기륭전자' 아줌마들이에요. 그럼 이 아줌마들은 얼마나 받느냐 3천 780원인가 받았어요. 최저 임금보다 20원 더 받는 '동희오토' 아저씨들의 농성장에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받는 '기륭전자' 아줌마들이 응원을 왔던 겁니다. 슬픈 연대죠.(325-326쪽)

-민주주의는 여의도에서 투표하는 절차를 따지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자원이 강부자, 고소영을 위해서 쓰여야 할지, 아니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대중을 위해 쓰여야 할지를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지금은 좀 더 치열하게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언제 해야 하나요? 바로 지금, 이 순간 해야죠.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우리 역사를 만들어갑니다.(327쪽)


-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2,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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