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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용산에 다녀오다

남일당 건물은 찾기 쉬웠다. 최첨단 건설공법으로 지어졌을 LS용산타워와 달리, 땟국이 흐르는 꾀죄죄한 아이의 얼굴 같은 재개발 구역 빌딩들이 확연히 구분됐던 탓이다. 다만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헤맸을 뿐. 다행히 CBS 차량을 발견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성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는 길, 반파된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그 뒤로 보이는 남일당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1년이란 시간이 건물에 남았던 그을음과 얼룩은 지워버렸나보다.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기자들은 참 바빠보였다. 하지만 난 취재하러 온 게 아니니까. 우산을 쓰는 대신 점퍼에 달린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건물 앞 뒤를 왔다갔다 했다. 옥상에 올라가 보고 싶었다. 깨진 유리창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군데 군데 남아 있는 화재의 흔적만으로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건물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드문드문 주변에 널려 있는 농성의 흔적들, 지난 장례식 때 다섯 넋을 위로했을 색색깔의 만장들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에 몸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다.

유가족 중 한 분이 대표로 '내가 살던 용산'과 '파란집' 출판을 축하하며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취재진에 둘러 쌓여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 작은 키가 이럴 땐 정말 싫다. 다른 이야기는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냥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만 귓가에서 윙윙댄다.

1년 전, 집에서 빈둥대고 있다가 화재 소식을 들었다. 짤막한 속보에 담긴 내용으로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나 둘 관련 기사가 늘어갈 때마다 화가 났다. 그리고 하루 이틀 농성 날짜가 늘어갈 때마다 답답했다. 진실도 중요하고 책임을 묻는 일 역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거기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보상문제'로 생각했고, '불법 폭력 시위'라 비난했고 용산을 잊었다.

나는?

이런저런 소식을 들으며 그저 무기력했고 부끄러웠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를 말해도,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공부"라며 마음을 다잡아도 어딘가 모를 답답함과 울분은,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마냥 가슴을 무겁게 했다. 부끄럽지만 그래서 용산에 다녀왔다. 1년이란 시간이 흐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못난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잊지 말아주세요"

1년 전 '거기' 있던 '사람'들이 차가운 냉동고에서 잠들어 있을 때도, 보상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문정현 신부님과 유가족들이 한 말은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뿌연 안개 속에서 다시 LS타워와 남일당을 바라본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잊지 않기'뿐인 것 같다.

* 덧. 문정현 신부님 인터뷰 - “결국 이럴 걸 왜 외면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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