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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삶들이 포개어져간다

오늘 페북에 끄적거렸던 글. 요즘 문득문득 가만히 들여다본다. 예전처럼. 유체이탈한 기분으로 나를. 더 많이, 자주 들여다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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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진, '캄보디아 : 흙, 물, 바람 그리고 삶' 뒷표지


고등학교 때는 빨리 스무살이 되고 싶었다. 모두들 친절하고 다정다감했지만 강남 한복판, '사교육 1번지'라는 곳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싸워내는, 버텨내는 기분으로 보냈다. '고군분투'란 사자성어는 꼭 내 얘기 같았다. 끝없이 바람이 부는 마음을 잡으며 스무살을 꿈꿨다.

바람이 계속 불던 대학 초 상황 역시 다르지 않았다. 스무살은 덧없이 사라졌다. 무엇을 기대했고 어떤 것들을 이뤄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그때엔 '삼십 세'란 말이, '서른 즈음에'란 말이 참 부러워보였다. 지금이 아니라면 괜찮을 거라고, 여기가 아니라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연령을 '20대'로 표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즈음은 딱히 어떤 나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늘에 만족하며 나이듦에 기대지 않고 나이들어가는 일은 그 자체로도 어렵지만 눈부시다. 다만 이미 비슷비슷했던 삶들이 점점 더 닮은 꼴로 포개지는 모습들은... 글쎄... 잘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이 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결국 정형화한 길로,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우리는 살아가는구나란 생각에 기분이 묘하다. 주변의 기대, 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약속이나 한 듯 질문들은 비슷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던졌던 물음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평범함이 가장 어렵다는 말을 참 많이 되뇌였다. 그런 삶이길 바란다는 말도 참 많이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손톱만큼이라도 다르길 꿈꾼다. 여기까지 쓰고 '누구나 그렇다'란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걸 보면 결국 삶은 포개지나 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여고생은 스무살을, 어떤 스무살은 서른살을 동경하고 있을 테니.

된장찌개를 끓이려다 짜장면이나 시켜먹을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괜시리 센치해졌다. 누군가의 코골이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