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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창작자는 신념과 지지를 주저해야 한다"


영화를 만들 때 우리는 언제나 고민한다. 피해자, 혹은 누군가의 상처나 불우한 과거를 알게 될 때마다 동정심, 마음이 흔들림을 넘어서 ‘우리 편’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함정에 빠진 순간 영화는 거짓이 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우리 편과 너희 편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부당한 것 안에는 수많은 옳은 것이 철근처럼 부당함을 감싸고 있고, 정의롭다고 보이는 것에는 아집과 게으름, 무성찰의 야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위대한 소설 <우주만화>가 주는 교훈처럼, 계속해서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 가운데에서 나 역시 변화하면서 말이다.


창작자는 그 형식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신념과 지지를 주저해야 한다. 지지와 동조는 관객의 몫일 뿐이다. 그리고 창작자가 깃발을 들고 함께하자고 해선, 그 작품을 보지 않아도 왔을 사람만 모일 뿐이다. 세상일이 그렇듯 영화를 만든다는 것 또한 두려운 일이다. 내 심장과 정 반대편에 있는 사람조차 그 파장과 상관없이 조금은 흔들어보려 애쓰는 태도의 대중예술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물음표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선 우연히 상영장을 찾은 그와 대화할 수 없다.


- 변영주 감독, <아이즈> 기고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