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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기록해야 기억한다

"지치죠... 그래도 행복해지려고 싸운다" 갈수록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이 '언행일치'다. 말을 내뱉기는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결국 비겁해진다. 침묵을 택한다.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이지만, 드문드문 우리는 다른 사람도 본다. 권영국 변호사는 그 '다른 이' 중 하나다. 몇 년 전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당직 취재를 갔다. 정말이지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기사를 쓰려면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펴기도 힘들었다. 그때 참가자들 맨 앞줄에서 권영국 변호사를 봤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그는, 1시간여짜리 행진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의 집회가 남다른 것은 아니었다. 권 변호사는 온갖 집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경찰에 항의하다가 멱살 잡혀 끌려가고, 몇 번이.. 더보기
"대한민국 법원은 여러분들의 싸움을 잊지 않았다" "언론인들이 회사원에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언론인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던 기자들의 순수한 열정을 법원이 평가해줬다." 문장 구석구석이 마음을 찌른 한 마디. 노트북으로 받아치는데 괜시리 울컥해지더라. 나는 기자가 꼭 회사원이 아니라고, 언론사는 일반기업과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우리는 공공성을 지향하지만 먹고는 살아야한다. 그 끊임없는 줄타기를 하면서 괴로워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너는 그냥 월급쟁이냐'라는 말에 파르르한다. 우리의 삶이 그닥 화려하거나 매일매일 지쳐쓰러질 정도로 고단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약간의 헐벗음과 약간의 반짝임 모두 조금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선택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 아닐까. http://www.ohmynews... 더보기
세월호 그후... 얼마나 안전해졌나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는 시간을 이길 수 없다. 서러워도 그럴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벌써 353일째다. 실종자들은 대부분 숨진 채로 귀환했지만, 아직 9명은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머리에 심고, 온몸으로 울었던 엄마아빠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언젠가 만날 아이들이 '엄마아빠, 지금은 안전한가요?'라고 물었을 때 한 마디라도 답하기 위해서, 뻔뻔하고 처참한 국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인간답게 만들고 싶어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지독하고, 우리는 아직 반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부정확한 기록이지만, 언론 기사를 토대로 세월호 이후 주요하게 다뤄진 안전사고 소식을 구글 퓨전테이블로 표시해봤다.곳곳에 찍힌 붉은 점들을 우리는 얼마나 지워나갈 수 있을.. 더보기
조현아는 끝까지 승무원 탓을 했다 지난 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에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결심 공판을 방청했다. 사실 나는 이 사건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여론이나 언론보도가 좀 과잉이라고 생각해왔다. 현장 취재를 직접 안 한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조 전 부사장의 최후진술까지 지켜보느라 이날 저녁도 못 먹었는데(ㅠㅠ)...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개인차가 있다. 이걸 받아들이는 정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1년 넘게 재판을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느낌을 받은 경우는 딱 한 번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인물은 세월호 선원 재판 때 매번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수시로 얼굴이 벌개져서 눈물을 흘리던 박한결 3등 항해사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은 '그냥 고.. 더보기
통합진보당 최후의 31분 언젠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까? "있잖아. 엄마가 그때 거기 있었어. 재판장 말이 너무 빨라서, 속기라면 자신 있었는데 그날은 놓친 부분도 많았지 뭐니. 다행히 녹음을 해둬서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어. 판결문이 공개되긴 하지만, 법정에서 직접 재판관 입으로 듣는 것은 약간 다르거든. 아무튼 그땐 그랬단다. 이젠 그냥 옛날 일이지만." '할머니가' 라고 말할 정도 늦진 않길... ============================ 9시 59분 헌재판관 전원 착석 이정희. 담담한 표성. 다소 야윈 듯. 김선수 변호사는 살짝 긴장한 것처럼 보임. 정점식 부장도 살짝 긴장한 듯. 황교안은 안 보임. 박한철 소장, 판결문 정리 중. 부스럭 부스럭. 10시 5분 "지금부터 2014헌다1호 .. 더보기
"세월호는 가장 위험했던 배... 모두의 책임이다"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질했고,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게 모두가 등돌린 사람들을, 말 그대로 '변호인'이라는 이유로 대변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정치적 견해가 첨예한 사안이면 달랐을 텐데, 인간의 도리를 따져묻기도 한 법정에서 그들을 봐서 더 신기했다. 좀더 자주 보고,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시간과 거리 탓을 해본다. 사실 이해가지 않는 대목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전하고 싶었다. 나 역시 손가락질과 비난, 저주를 두려워했기에 그닥 적극적이거나 충실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나름 고집을 부려봤다. 물론 그 기사는 출고 시점이 늦어진 관계로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왕이면 피고인들의 최후진술과 변호인들의 최후.. 더보기
'원세훈 1심 판결' 그날의 기록 그날부터 벌써 12일이 지났는데도, 이 사건은 여전히 뜨겁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얘기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에 앞서 기록 차원에서 9월 11일 선고 공판 당일 법정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들겼던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판결문 원문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오류도 없진 않겠지만 최대한 가감없이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이 사건을 그냥 묻어버린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후회를 하며 시간을 거꾸로 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 1시쯤 이미 줄이 엘리베이터 앞 쪽까지. 30석 규모의 법정이 꽉 차서 자리가 없음. 자리가 없어서 기자들은 통로 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키보드 치는 상황. 1시 46분 원세훈 살짝.. 더보기
유우성 그리고 변호인들... "내 돈 써가며 변호하는데 미안하더라" 대한민국 사법제도는 3심제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다투는 1·2심과 달리 법리 판단만 하는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소송당사자들에게 변론기회를 주지 않는다. 검찰이든 피고인이든 2심 결심이 그들에겐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4월 11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에게도, 변호인에게도, 피고인 유우성씨에게도 진짜 '최후변론'을 말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당사자도 그렇겠지만 지난해 1월부터 사건을 맡아온 변호인들의 감회가 남달라보였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 꽤 긴 변론이 이어졌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더라. 아깝기도 하고, 졸음을 참아가며 고생한 팔을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올린다. 법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묻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