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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일기] 20150625 조금은 서글픈 여름밤 8차선 대로를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약 17초, 마음이 다급해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는 2시, 현재 시각은 1시 50분. 결국 배를 움켜잡고 뛰었다. 오늘로 11주 1일차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봤자 경보하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무사히 길 반대편에 도착했다. 지난 화요일, 무수히 쏟아지는 문자 속에 ‘전원합의체 선고사건이 추가됐음을 알려드립니다’란 내용을 휘리릭 넘겼다. 어쨌든 D-Day가 찾아왔으니 일정을 다시 확인해봤다. 아차 싶었다. 이주노조 설립신고서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하마터면 빼먹을 뻔한 것 아닌가; 꾸준히 관심 갖고 챙겨본 사건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성소수자인 ‘미셸’이라는 이주노동자를 통역한다는 JB오빠 얘기에 ‘아 그렇구나’했던 기억이 컸을 뿐이었다. 당시 이주노조 4.. 더보기
"콘텐츠가 아니라 프리젠테이션이 문제"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9550.html "과거 우리는 CBS의 댄 래더라는 기자 이름을 보고 뉴스를 봤지만, 이제 CBS나 댄 래더란 이름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친구들이 공유해준 링크의 뉴스를 더 신뢰한다. 전통 언론 내부의 나이 든 세대에게는 이 자체가 공포스럽고 두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 없는 바보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를 통해 북한이나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몇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즐긴다. 정치에 진짜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보여주는 방식을 싫어했던 것뿐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상과 뉴스를 갈구하고 있다." "언론이 직면한 또 다른 도전은 플랫폼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 더보기
전쟁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1968년 2월 12일 얼마 전 영화 을 우연히 봤다. 로빈 윌리엄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난해 여름, 많은 언론은 앞 다퉈 그의 대표작을 소개했다. 은 그 활자들 사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작품이었다. 별 관심은 가질 않았다. 그저 그런 옛날 영화 중 하나로만 다가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나는 ‘1968년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 영화는 마치 과 닿아있는 작은 단서 하나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제법 늦은 밤 시작한 121분짜리 영화였지만 끝까지 시청했다. 중간 중간 자리를 뜨거나 눈을 비비지 않기란 불가능했지만. 또 “굿바이 베트남”이란 말을 남긴 채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로빈 윌리엄스를 보며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멜로디 사이에 흐르는 베트남의 풍경들, "당신들은 먼 길을 와서 내 동료.. 더보기
"왜 기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그동안 한국 언론의 자유는 계속 침해당하고 있다. 한국에도 인상적이고 양심적인 기자들은 많이 있지만 권위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런 도전을 하지 못한다면 왜 기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현 정부의 핏줄을 관통하고 있는 ‘연성 권위주의(soft authoritarianism)’와 대기업의 비대칭적 권력구도, 언론사의 질서를 흩트리는 광고수입 문제들은 한국 언론사들을 갉아먹고 있으며 뉴스를 통해 진짜 이윤을 창출하는 유일한 회사는 네이버뿐이라는 한국인 기자 친구의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네이버는 뉴스를 쓰거나 제작하지 않는다. 뉴스의 플랫폼을 제공할 뿐이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내 생각에 한국은 표면적으로만 민주주의로 나아가.. 더보기
"'센 놈' 삼성과의 싸움... 내 모든 잠재력이 폭발했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②] 내부 고발자에서 변호사가 된 이은의씨 "나 진짜 간다, 잘 있어!" 2010년 10월 31일, 은의씨는 삼성을 떠났다. 오래 살던 집을 나오는 기분이었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현관을 나서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에 박혔다. 늘 밥 먹던 구내식당, 좋아했던 나무들… 버스를 타려고 뛰다가 넘어진 자신을 잡아준 사람에게 너무 창피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사무실까지 줄행랑쳤던 기억 등 지난 12년 9개월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싸움에 이미 종지부를 찍은 뒤였다. 은의씨는 회사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모두 이겼다. 삼성전기는 성희롱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인권위의 차별시정권고는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회사의 주장.. 더보기
회사의 치졸한 보복 "꽃무늬 청바지 입은 적 있죠?"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①]상사 성희롱에 왕따... 그럼에도 싸우다 12년 9개월 동안 '삼성을 살았다'. 마지막 5년은 '왕따'로 살았다. 상사의 성희롱을 두고 입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은의(42)씨는 숨지 않았다. 견뎠다. 삼성을 살며 싸웠다. 2010년 10월 31일, 그는 마침내 모든 싸움에서 이긴 다음 삼성을 나올 수 있었다. 는 그가 오롯이 지켜낸 삶을 인터뷰와 저서,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기록해봤다. 이은의씨의 이야기는 2005년 6월 17일부터 시작한다. 마침내 찾아온 디데이 '안 들으면… 나와서 그 다음에 생각하자.' 걱정보다는 '에이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은의씨는 영업인사부장 앞에 섰다. 인사부장은 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 출장은 잘 다녀왔느냐,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 더보기
24년만의 무죄...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만든 검찰, 법원, 언론, 국과수는 침묵 2014년 2월 13일, '유서대필' 사건 재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씨는 자신의 재판이 법원과 검찰에게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선고 직후 든 생각이) '재판부가 유감 표시를 안 하네?'였다. 이 재판은 제 재판이 아니다.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이고 검찰은 자기 잘못을 반성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더 의미가 있다.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말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저를 세워놓고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이렇게 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 세워진다. 또 "지금 현재 검사직에는 없지만,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은 아마 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더보기
반쪽짜리 동의 제로 투 원 읽는 내내 회사, 그리고 나와 언론 생각을 많이 했다. 직장생활 만 3년을 채우고 나니, 불만이 커져간다. 그만큼 가 어떤 기업인지, 기자는 어떤 직업이고 한국의 언론판은 어떤 곳인지 알게 됐기 때문일까? 피터 틸의 이야기에 비춰 몇 가지 얘기해보겠다. 가장 먼저 무릎을 쳤던 부분은 ‘독점이윤’ 대목이었다. 1에서 n이 아닌, 0에서 1이어야만 하는 독점이윤, 우리에게 그것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구호였다. 실제로 가 가장 주목받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창간 15주년을 맞은 우리에게는 독점이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주,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다. 기업의 위기는 안팎의 요소가 작용한다지만, 내부만 들여다봤을 때 회사가 반성해야 할 지점은 여기다. 우리는 “독점을 구축”하지 못했고 “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