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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보다 망각이 힘세다 역사는 기억 대 기억의 싸움이다. 이긴 자와 산 자의 운명만큼 어떤 기억은 선명하게 살아남고, 어떤 기억은 깨끗이 지워진다. 후자가 되살아는 길은 또 다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뿐이다. 제주 4·3과 광주민주화운동이 그랬다. 남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일제강점기에서 해방하지 않았다면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는 현실 속 안옥윤의 말은 누군가의 귓가에만 남았을 테고. 역사를 권력투쟁의 대상에서 역사 그 자체로 만드는 방법이 있긴 하다. 다양한 관점의 제시다. 물론 여기에도 오류 가능성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다. 하나의 책이 제시하는 하나의 관점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러나 '한 놈만' 믿고 사는 누군가가 새로운 관점을 갖게될 가능성 역시 저버릴 수는 없기에..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51029 끈질긴 사람들 '기자'라고 불리면서 늘어난 것 중 하나는 능청이다. 대표 사례는 '잘 몰라도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기.' 2013년이었나, 회사에선지 어디선지 선배와 대화하는 최승호 PD에게서 "요즘엔 뭐 그거, '화교남매'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나는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표정으로 은근슬쩍 끄덕끄덕하고 넘겼다. 그 '화교남매'가 유우성·유가려씨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실 잘 몰랐다. 지난해 2월 14일 오후 5시, 법원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민변 쪽 공지문자를 받기 전까지도 별 관심 없었다. 그날은 매우 평화로운 발렌타인데이 겸 금요일로, 별 일 없이 칼퇴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자회견 문자는 4시 40분이었나... 아무튼 기자회견 예정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더보기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중에서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국가에서도 정부 비판 언론은 존재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판 언론은 정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비판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동시에 정부 비판 세력이 극단적인 그룹이나 비주류로 인식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략)... 사실 정부 비판 언론이 정부에 위협이 되는 때는 그들이 합리적 중도노선을 지향하는 시점이다. ...(중략)...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더욱 '합리적인' 진보 성향의 신문, 좀더 균형감각 있고 잘한 게 있을 때는 때때로 정부를 칭찬할 줄도 아는 신문이 더 많은 독자에게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략)... 한국이라는 환경에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진보 언론은 반감을 가진.. 더보기
<마션>을 보고 왔다 # 기억이 맞다면, 생애 첫 '우주영화'는 이다. 선체 이상으로 우주미아가 될 뻔한 비행사 3명이 무사히 지구로 돌아오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다룬 이 영화에는 어김없이 나사(NASA, 미 항공우주국)이 등장한다. 휴스턴 기지에서 거대한 전광판과 복잡한 기계들을 모든 직원이 동시에 바라보며 '단 한 순간'에 집중했다 마침내 그 순간에 일제히 환호하는 장면도. 나사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어김없이 나오는 일종의 클리셰다. 3년 뒤 개봉한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예상을 저버리지 않았다.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하나의 목표가 이뤄지는 그 순간, 카메라는 여느 우주 영화처럼 나사 내부를 비춘다. 많은 사람들은 오직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환호한다. 촌스럽게도, 나는 그만 이 광경을 보며 울컥했다. 을 보며, .. 더보기
'성향'이라는 허상 한국 사회는 '진영논리'가 지배한다. 언론이라고 다르지 않다. '불편부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보도는 모든 언론사가 본령으로 삼고 있는 원칙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다들 공개적으로 '우리는 이러네, 저러네' 말하지 않지만 모두들 알고 있다. A신문은 보수, B신문은 진보, C신문은 친정부·기업 등등... 매체비평글에서는 '보수지' 또는 '진보지'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눈으로, 저마다의 세상을 들여다본다. 언론이라고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왔듯 '100점짜리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아서다. 오히려 각자의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는 더 건강하고 역동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다양성'인 데에는 괜한 이유가 있지 않다. 문제는 경향성이 보도의 '이.. 더보기
가을, 제주 #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제주에서 맞이한 세 번째 추석. 지난해까지도 이곳에서 보내는 명절에는 어색함과 낯설음이 짙게 배어있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진 기분이다. 집집마다 차례 드리러 다니는 옛 풍습도, 어느 곳이 몇째집인지 하는 역사도 터득했고, 육지와 달리 꼬치에 꿴 적갈, 늙은 호박을 무친 나물과 카스테라나 빵을 올리는 차례상도 익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어른들끼리 사투리 써가며 나누는 대화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친가만 해도 예전보다 차례상차림이 많이 단순해졌다지만 여전히 음식 장만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이번 추석에도 큰어머니는 먹음직스러운 생선과 닭찜, 여러 야채와 돼지고기를 잘 다져 섞은 동그랑땡, 두부전과 녹두전, 약과 등을 준비하셨을 테지. 조상님께 올릴 상을 한가득 차리는 마음은.. 더보기
그땐 그랬지 약자들의 따스한 연대를 누구나가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없는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 같은 대사를 실생활에서도, 허구에서도 수시로 들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많은 문장의 주어로 곳곳에서 발화됐고,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같은 위대한 인문정신도 저잣거리에서 빈번히 설파됐다. 이제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피식 웃음이 나는, 풍속극에나 등장할 법한 사어(死語)들이지만, 말로라도 그러던 시절이 어쨌든 있기는 했다. 이제는 누구도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거나 선언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약자-됨’은 결단코 은폐되어야 할 존재의 치부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갑과 을. 나는 내 자식이 갑이 되길 바래.” 정성주 작가가 이태 전 쓴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 나오.. 더보기
무관심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다 # 평소처럼 교대역 2호선 개찰구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많은 인파들을 피해갔다. 평소처럼 쓰레기통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순간 멈칫했다. 분주하게 쓰레기를 정리하는 환경미화원 옆에는 웬 할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쓰레기더미를 헤집으며, 다른 한 손으로 ‘초코에몽’을 움켜쥐고 있었다. 낡은 빨대는 입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초코우유를 목마른 짐승마냥 쪽쪽 빨아대며 그는 또 다른 마실거리를 찾고 있었다. 노숙하는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은 수없이 봤지만 거기서 찾아낸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처음 봤다. 순간 흠칫했다. # 평소처럼 이수역 14번 출구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처럼 태평백화점 앞은 북적거렸다. 평소처럼 인파를 헤쳐가다 순간 멈칫했다. 15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