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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매여버린 삶들 ​ "서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울에서 온전히 나오지 못하고 삶만 매여 있다. 아이러니한 건 서울에 겨우 방 한 칸을 마련한다고 해도 행복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직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야근이 너무 잦아서 애인은 회사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았다. 통근으로 길에 버리는 시간이 줄었으니, 삶에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돈 주고 빌린 집이란 게 아주 작은 상자 같아서, 그 곳은 ‘집’처럼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빨간 버스로. 노른자를 벗어나 넓게 펼쳐진 흰자의 세계로 그는 이주했다." - , '실신청년 싣고... 달린다, 빨간버스' 중에서 더보기
새살은 돋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다친 것은 5-7살 무렵이었다. 동네 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었고, 넘어지면서 날카로운 계단턱에 부딪쳤다. 피를 제법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어떻게 집에, 병원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넘어지던 순간 계단의 느낌은, 그 질감과 모양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큰 흉터도 얻었다. 왼쪽 눈가가 찢어져 몇 바늘을 꿰매야했고, 꽤 오랫동안 한쪽 눈가가 울퉁불퉁한 사진을 남겨야 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누군가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상처는 아물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친 턱 밑 흉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남들이 잘 보지 못할 뿐이다. 내 자신은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확인한다.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를 때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새살이 돋았.. 더보기
"지치죠... 그래도 행복해지려고 싸운다" 갈수록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이 '언행일치'다. 말을 내뱉기는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결국 비겁해진다. 침묵을 택한다.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이지만, 드문드문 우리는 다른 사람도 본다. 권영국 변호사는 그 '다른 이' 중 하나다. 몇 년 전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당직 취재를 갔다. 정말이지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기사를 쓰려면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펴기도 힘들었다. 그때 참가자들 맨 앞줄에서 권영국 변호사를 봤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그는, 1시간여짜리 행진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날의 집회가 남다른 것은 아니었다. 권 변호사는 온갖 집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경찰에 항의하다가 멱살 잡혀 끌려가고, 몇 번이.. 더보기
법원은 자꾸 믿어달라고만 하는데... "사건에는 그 시대 텍스트가 투영되어 있다. 한명숙 사건에도 이 시대 검찰수사, 정치인 금품수수, 사법부 판단 같은 텍스트가 담겨 있다.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을 지에 초점을 둔다면 그도 돈이 없는 정치인인 이상 어떤 돈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어떤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유죄이냐는 별개 문제다. 유죄는 법정에서 위법 사실이 적법한 절차로 확인되고 법리적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사안인 때문이다. 한 전 총리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되고도 뒤가 개운치 않은 것은 그런 데에, 특히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는 탓이다. 한가지 이번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검찰의 타깃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한번 수사의 도마에 오르면 헤어나기 힘들고, 시간을 끌어도 통하지 않는 검찰의 힘을 이번 사건은 .. 더보기
수사기록 아닌 재판기록 던져버린 대법원 검찰 진술 더 믿고 '한명숙 유죄' 확정... 흔들리는 공판중심주의 "검사의 수사기록은 던져버려야 합니다." 2006년 9월 19일 대전고등법원과 대전지방법원을 찾은 이용훈 대법원장은 말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던 관행을 버리고 법정에서 모든 증거를 면밀히 살핀 다음 사건의 실체를 판단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말이었다. 이후 공판중심주의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20일 이상훈·김소영·김용덕·박보영·이인복 대법관은 사법부 스스로 공판중심주의를 져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명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한 양승태·권순일·김신·김창석·민일영·고영한·박상옥·조희대 대법관에게 동의할.. 더보기
"그런 기사는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아요" http://diversity.co.kr/8173/ "미디어오늘 기자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어떻게 보면 노동 기사가 가장 쉬울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집회 현장 가서 그 사람들 이야기, 그러니까 부당 해고당했다는 억울한 이야기 들어주고 기사를 쓰는 건 어떻게 보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 행동이에요. 그리고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아요. 그런 기사는 기업에서 아파하지도 않거든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니까. 물론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죠. 우리가 가서 그들을 찾아 주고, 그 사람들 목소리를 들어 주고,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고,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긴 한데… 그런 걸로 세상이 바뀔 수 있었으면 진작 바뀌었겠죠. 그런 걸 넘어서야 해요. 노동자들은 말을 잘 해줘요. 그렇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거든요. 기.. 더보기
"전쟁이 인간을 그렇게 피폐하게 해요" '좋은 인터뷰이'는 좋은 인터뷰의 대전제이지만, 그에게서 얼마나 '좋은 이야기'를 끌어내는가는 전적으로 인터뷰어의 능력이다.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 중인 '이진순의 열림'을 볼 때마다 많이 드는 생각이다.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인터뷰도 그렇고, 김민기씨 인터뷰도 그렇고. 이진순씨는 좋은 인터뷰이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비법이 있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다 ㅎㅎ 탈북자 강룡씨 인터뷰 같은 걸 보면 인물 선정에도 남다른 감각이 있는 듯. 아무튼 한 번 만나서 인터뷰 비법 좀 들어보고 싶은 분이다. 아래 발췌한 내용은 지난주(8월 15일)에 실린 김영미 분쟁전문 저널리스트의 인터뷰다. 페북에서 보니 언론인의 자세랄까 정신 관련 내용을 담은 부분이 많이 공유되고 있던데 사실 나는 세상에 찌든 속물이 되어버렸는.. 더보기
이것은 현실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창비 라는 책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사람 ▲ 일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묘사했다는 이유 등으로 논란을 낳았던 서적이다. 올해 초 이 책을 둘러싼 소송을 다룬 기사를 썼다. 워낙 뜨거웠던 사안인지라 그 기사는 포털 메인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성적인 욕설이 난무하는. 레베카 솔닛의 를 읽는 도중 그 일이 떠올랐다. ‘세상의 절반’은 쉽게 공격자가 된다. 그들이 모두 폭력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쉽게 변한다. 박유하 교수의 책은 그 자체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남자였어도 그 정도의 능욕을 당했을까?`라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