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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진실을 말하면 고문당한다고요, 선배님' 김병진, 중에서 - 나는 그야말로 진절머리 나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한 해에 몇 번 만나지도 않는 친척의 나이를 물어서 글쎄 몇 살인가 하고 머리를 갸우뚱거리면 욕설을 퍼붓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연도를 물어서 손꼽아 세어보면 이덕룡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자기 일인데 그런 것도 모르냐고 비웃음 섞인 말로 위협했다. 수사관과 내 처지가 뒤바뀐다면 그 사람들도 나처럼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다 큰 어른 중에 국민학교 입학연도를 언제나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수사관들은 나를 위협하고 압박하려고 질문을 퍼부었다. - "이 나라의 재판은 형식적이야. 우리가 간첩이라고 하면 간첩이지(고병천 준위). - 멋대로 해석하고 내린 결론에 따라 폭력이 계속 됐다. 수사관들은 어떤 이유로든 .. 더보기
그러므로 우리는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은 영원하다. - 나는 밖으로 나가 부드러운 석양을 받으며 공원이 있는 동쪽으로 산책이나 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거칠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내 목덜미를 잡아채는 바람에 밧줄로 묶이기라도 한 듯 꼼짝 없이 의자에 붙들려 앉아 있었다. 지금도 도시의 하늘을 장식하는 이 방의 노란 창문들은 땅거미가 내려앉는 거리를 지나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비밀을 나누어주고 있으리라.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올려다보고 궁금해하는 자였다. 나는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인간사에 매혹당하는 한편으로 진절머리를 내면서. - 그가 사려 깊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사려 깊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긴 미소였다. 그것은 변치 않을 확신이 담긴, 일생에 네다.. 더보기
한강, <소년이 온다> 중에서 1장 어린 새 17쪽)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를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24쪽) 볕이 나른하던 5교시에 식물의 호흡에 대해 배웠던 게 다른 세상의 일 같다. 나무들은 하루에 딱 한차례 숨 쉰다고 했다. 해가 뜨면 길게 길게 햇빛을 들이마셨다가, 해가 지면 길게 길게 이산화탄소를 내쉰다고 했다. 그토록 참을성 있게 긴 숨을 들이쉬는 나무들의 입과 코로, 저렇게 세찬 비가 퍼붓고 있다. 그 다른 세상이 계속 됐다면 지난주에 너.. 더보기
"창작자는 신념과 지지를 주저해야 한다" 영화를 만들 때 우리는 언제나 고민한다. 피해자, 혹은 누군가의 상처나 불우한 과거를 알게 될 때마다 동정심, 마음이 흔들림을 넘어서 ‘우리 편’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함정에 빠진 순간 영화는 거짓이 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그렇게 우리 편과 너희 편으로 구분되지 않으며 부당한 것 안에는 수많은 옳은 것이 철근처럼 부당함을 감싸고 있고, 정의롭다고 보이는 것에는 아집과 게으름, 무성찰의 야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이탈로 칼비노의 위대한 소설 가 주는 교훈처럼, 계속해서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세상이 변하는 가운데에서 나 역시 변화하면서 말이다. 창작자는 그 형식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신념과 지지를 주저해야 한다. 지지와 동조는 관객의 몫일 뿐이다. 그리고 .. 더보기
전쟁의 시작 더보기
물을 주며 물을 주며-1932년 늦여름에 헤르만 헤세 다시 한 번, 여름이 가버리기 전에우리, 정원을 가꿉시다.꽃들에게 물을 줍시다. 벌써 생기를 잃고 있어요.곧 시들 거예요, 어쩌면 내일 아침일지도 모르죠. 다시 한 번, 다시 세상이광폭해지고 전쟁으로 비명을 지르기 전에,우리.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노래를 불러줍시다. 더보기
"소통과 공감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알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870/14801870.html?ref=mobile&cloc=joongang|mnews|pcversion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전관예우 논란을 걸러내지 못한 걸까. 나는 법조인 비서실장(김기춘)-법조인 민정수석(홍경식) 라인이 전관예우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을 개연성에 주목한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의 말에서도 법조인들의 의식이 드러난다. “(안 후보자는) 30년 공직 생활을 깨끗하게 마쳤잖아요. 최종 근무지에서 1년간 사건 수임을 금지하는 변호사법도 지켰고요. 자꾸 수임료를 문제 삼는데 맛있는 식당에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무슨 탈세라도 했다면 모르지만….” 법을 어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사고다. 법조계에서 흔히.. 더보기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가 요즘 화제다. 아직 보진 못했는데 관련 글 두 편에서 비슷한 얘기가 눈에 들어왔다. - 상상컨대, 10년 뒤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다면 무얼 할 것인가? 혹은 20년 뒤? 지금처럼 신문 1~40면을 만들고 특집을 제작하고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그 수익 기반은 매우 초라할 것이고, 위상은 지금보다 더 떨어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10년 뒤, 나는 45세일 텐데, 명예퇴직을 강요당한대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우연히 접한 어느 기자 선배의 페북). - 그 리포트를 쓴 아담 B. 엘릭(Adam B. Ellick)은 내 제자 중에 한 명이다. 나는 그에게 뭔가 흥미로운 일을 하려면 뉴욕타임스를 떠나라고 조언했다. 뉴욕타임스의 장점은 딱 하나, 브랜드다. 브랜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