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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꿀 크리스마스의 끝자락을 붙잡고 연남동의 한 포차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딸랑 소리에 문이 열리더니 웬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늘상 보는 껌팔이 할머니인 줄 알았다. 평소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의외의 품목을 꺼내셨다. 꿀이었다. 껌이 아니면 모시송편이나 초콜릿정도겠지 싶었는데, 전혀 상상 못한 물건이었다. 할머니는 "제주미깡에서 모은 것"이라며 내게 "비바리한테 좋다, 비타민씨도 많고..."라고 말하셨다. 지난주 시부모님과 찾아뵌 일산 외할머님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차마 평소처럼 어색하게 "죄송합니다"하고 꾸벅 끝내기 어렵더라. 결국 나는 택시비로 받은 공돈을 털어 꿀을 샀다, 설탕물에 가까워보이는. 예상했던 결과였다. 집에 있는 꿀과 나란히 세워두니 두 통은 확연하게 달랐.. 더보기
통합진보당 최후의 31분 언젠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날이 올까? "있잖아. 엄마가 그때 거기 있었어. 재판장 말이 너무 빨라서, 속기라면 자신 있었는데 그날은 놓친 부분도 많았지 뭐니. 다행히 녹음을 해둬서 다시 한 번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어. 판결문이 공개되긴 하지만, 법정에서 직접 재판관 입으로 듣는 것은 약간 다르거든. 아무튼 그땐 그랬단다. 이젠 그냥 옛날 일이지만." '할머니가' 라고 말할 정도 늦진 않길... ============================ 9시 59분 헌재판관 전원 착석 이정희. 담담한 표성. 다소 야윈 듯. 김선수 변호사는 살짝 긴장한 것처럼 보임. 정점식 부장도 살짝 긴장한 듯. 황교안은 안 보임. 박한철 소장, 판결문 정리 중. 부스럭 부스럭. 10시 5분 "지금부터 2014헌다1호 .. 더보기
어떤 2년 기자로선 좋은 경험이었다. 시작부터 크게 한 건 터진 정부였다. 오피스텔 복도에서 밤을 지새우리란 상상도 못 한 채 역삼동으로 향한 게 2년 전이다. 2013년 4월엔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게 됐다. 난생 처음 닿은 경상남도 진주 땅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기후변화 관련 취재를 하던 날,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압수수색 받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별 생각 없이 국회에 갔다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봤고, 나중엔 그의 구속영장 발부와 1심 재판 상당부분을 목격했다. 푸시알림으로 뜬 '정당해산심판 청구'란 말에 '뭔 소리지?' 했던 지난해 11월 5일 하루는 참 정신없었다. 그 사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1심은 진행 중이었다. 이 재판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약 1.. 더보기
2014년 12월 16일 밤, 나는 조금 무기력하다 "국가의 핵심적인 결점은 대외적인 무력의 사용을 촉진하고 아무리 민주적인 제도 내에서라도 개인이 무력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무기력한 절망감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결심을 굳힌다면 우리는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깨닫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방금 책장을 덮은 러셀의 에서 옮겨뒀던 문장들을 쭉 살펴봤다. 이 두 개의 문장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무력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감정의 크기는 거대하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두 사람이 70미터 높이 굴뚝 위로 올라갔다. 지난 토요일 일이었으니 벌써 4일째다. 겨울치곤 포근했던 날씨도 저 천공 위에선 소.. 더보기
조영래 - 이 사람은 누구인가 더보기
같이 생활하면 변화는 움튼다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382.html 갈 곳 없는 아이들, 또다시 거리로 예람청소년회복센터에는 절도, 폭행 가담, 인터넷 사기 등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소녀 7명이 함께 살고 있다. 임 센터장은 법원이 지정한 아이들의 ‘신병인수위탁 보호위원’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24시간 아이들을 보살핀다. 노모와 둘이 살던 집은 7명의 소녀들로 북적인다. 최고참 민영(18·가명)이는 이곳에서 10개월을 지내는 동안 담배를 끊었고, 끊었던 학교는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배를 타는 아빠는 “없는 사람”이었지만, 요즘엔 종종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외로워서 밤이면 나가 놀았다”던 아이는 “여기 있으면 동생도 있고 친구도 있어 심심하지.. 더보기
박 대통령 vs <산케이신문> 재판 관전법 [해설]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 재판이 끝까지 갈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27일 오전 자신의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일단 재판이 시작됐다. 27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320호 법정에서는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허위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 정윤회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지난달 8일 기소된 이후 49일만이다. 법정은 국내 취재진과 일본 취재진, 각종 보수단체 관계자들까지 몰려 방청석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 준비기일임에도 검찰과 변호인단 양 측은 팽팽했다.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이 .. 더보기
[서초동일기] 20141113 오늘도 거리를 서성이는 아빠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에게는 '주강'이란 아들이 있다. 따로 인사한 적은 없지만 이 실장의 SNS에서 워낙 사진을 많이 봐서 내게는 참 익숙한 얼굴이다. 아이는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 통통한 볼살에, 커다란 눈망울에 가득한 호기심. 늘 심각한 모습으로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아빠와는 정말 달라보였다. 그런 주강이를 오랜만에 봤다. 어제 대법원에서 만난 아이는 사진으로만 기억하던 것보다 부쩍 커있었다. 이제 아빠와 나란히 걸을 줄도 알았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빠의 표정을 살필 정도로 의젓해보였다. 그래도 순간, 아이는 장난스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당연한 '철없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하늘이 너무 시리도록 푸르렀다. 6년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