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어떤 2년

기자로선 좋은 경험이었다.

시작부터 크게 한 건 터진 정부였다. 오피스텔 복도에서 밤을 지새우리란 상상도 못 한 채 역삼동으로 향한 게 2년 전이다. 2013년 4월엔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게 됐다. 난생 처음 닿은 경상남도 진주 땅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기후변화 관련 취재를 하던 날, 통합진보당 사람들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압수수색 받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별 생각 없이 국회에 갔다가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봤고, 나중엔 그의 구속영장 발부와 1심 재판 상당부분을 목격했다. 푸시알림으로 뜬 '정당해산심판 청구'란 말에 '뭔 소리지?' 했던 지난해 11월 5일 하루는 참 정신없었다. 그 사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1심은 진행 중이었다. 이 재판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약 10년 만에 광주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가며 재판을 보던 동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1심 결과가 나왔고, 이 시간들 사이에 국정원 증거조작사건이 있었다. 최근엔 '국정개입'이니 '비선실세'니하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이야기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있다. 언젠가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참 숨돌릴 새 없이 터지고 또 터졌다. 이 대형사건들을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은 기자로선 나름 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국민으로선 나쁜 경험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참 쓰기 싫은데, 참 자주 써야 하는 말이 공안, 간첩, 국정원 등이었다. 참 믿고 싶은데, 참 자주 의심해야 하는 가치가 민주주의, 법, 국가 등이었다. 모두가 싸움에 내몰리는 분위기, 어떻게든 갈등에 불붙고 골은 깊어지는 현실이 우울하고 때론 숨막혔다. 이 상황은 오늘도 여전하다. 그리고 내일이면, 이 답답함은 더 커질 수도 있고 무언가 한줄기, 막연해보이는 것에 기대 조금은 풀릴 수도 있으리라. 아직 3년이나 남았지만.

- 휴가를 고이 접어 반환하는 저녁에...


'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탓과 덕  (0) 2015.03.14
다시, 세월호  (0) 2015.01.01
사소해서 미안한 사람들  (0) 2014.10.21
결국 내 몫이다  (0) 2014.10.11
꿈에서조차 두려웠던 일  (0) 2014.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