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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다시, 세월호

선배의 배려로 연말과 연초에 휴가를 붙여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물론 며칠째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꿈틀거리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해가 저물면 남편과 술 한 잔 기울일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데도 머리가 무거웠다.

'세월호를 어떡하지.'


이 질문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다. 아니 그냥 툭툭 떠올랐다. 세월호란 세 글자가 부지불식간에 나타나서 괴롭혔다.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결국 넌 '거리두기'라는 허울좋은 구실만 대다 이렇게 잊고 있는 것 아니냐고, 결국 또 다시 시간에게 패배하고 있지 않냐고.

▲ '부표'만 덩그러니,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이 곳... ⓒ 이희훈


다이어리에 '다시, 세월호'라 적고 몇 가지 메모를 해두기도 했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사이 2015년이 왔다. 이상하게도 올 1월 1일은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훑어내려갔다. 담벼락에는 김훈의 칼럼이 링크돼있었다. 오늘자 <중앙일보>에 실린 글이었다.

단문으로, 유난 떨지 않고 할 말만 무게있게 던지는 스타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칼럼은 달랐다. 그는 유난을 떨고 있었고,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주제가 세월호였기 때문이다.

김훈은 그동안 세월호와 관련해 계속 목소리를 냈고, 직접 팽목항을 찾아가기도 했다. 문인들이 단체로 진도행 버스에 올라탔던 일은 그의 제안이었다. 사회참여형보다는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질문들에 거리를 두는 작가였던 인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그는 지난 10월 팽목항에서 "우리가 눈 뜨지 않으면 죽은 자들이 눈 감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훈이 느낀 분노와 절박감, 통절함은 석 달 사이에 더 강렬해진 것일까. 오늘 칼럼에서 그는 더욱 단도직입한다. "우리는 세월호를 도려내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며 "세월호를 내버리고 가면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고.

이 글귀를 적어놔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순간, 뉴스에선 선원들의 항소심이 20일부터 시작한다는 한줄 자막이 나왔다. 죽은 자들은 아직 눈 감지 못했고, 모든 사안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단지 내가 피로감을 호소하며 질끔 눈 감아버렸을 뿐이었다.

결국 '다시, 세월호'다. 절대 시간에게 패배해선 안 되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만 없는 이 참사를 우리는 다시 얘기해야 한다. 자꾸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어야 한다. 세월호를 도려내고, 늘 그래왔듯 우리의 무능을 직시하지 못하고 넘어간다면 우리는 결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망각과 싸워야하며 가라앉은 그 배와 304명이란 숫자를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다시 세월호를 기록하자. 더 많은 기록으로 시간과 싸워보자. 일단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그것이다.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을 남기는 것. 사람 목숨이 똥값처럼 여기지 않도록, 우리가 다시 같은 자리에 빠져 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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