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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기록해야 기억한다

"세월호는 가장 위험했던 배... 모두의 책임이다"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질했고,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게 모두가 등돌린 사람들을, 말 그대로 '변호인'이라는 이유로 대변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정치적 견해가 첨예한 사안이면 달랐을 텐데, 인간의 도리를 따져묻기도 한 법정에서 그들을 봐서 더 신기했다. 좀더 자주 보고,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시간과 거리 탓을 해본다. 


사실 이해가지 않는 대목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전하고 싶었다. 나 역시 손가락질과 비난, 저주를 두려워했기에 그닥 적극적이거나 충실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나름 고집을 부려봤다. 물론 그 기사는 출고 시점이 늦어진 관계로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왕이면 피고인들의 최후진술과 변호인들의 최후변론까지 따로 기사화하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접었다. 


그래도, 형사재판에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변호인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변호 대상이 아무리 비난받는 사람이더라도. 특히 세월호는... 몇몇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만약 또 다시 그런다면, 우리는 또 다시 기회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정말 무언가 바꿔볼 기회를. 이미 많은 부분이 날아가긴 했지만...


아무튼 오늘 재판에선, 변호인들의 그동안 속으로 앓았을 이야기들, 하고 싶었던 말들이 조금이나마 상세히 나왔다. 그들의 말 한 마디가 사실 곱씹어볼 대목이 많은데 선원들의 변호인이란 이유로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오늘 법정에서 최대한 열심히 받아치려 했던 그들의 최후 변론을 블로그에나마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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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는 가운데 긴급 출동한 해경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 이준석 선장의 변호인 


피고인 이준석의 변호인이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7개월에 접어들었고, 재판 시작한 지도 6개월이 되어 이제 1심 공판을 마무리하려지만 아직도 수많은 번민으로 고통스럽고,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 세월호 사고가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며, 무슨 변화를 이뤄내야 하는지를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재판에 참여하며 있어야 할 자리에서 올바른 자세 견지했는지 끊임없이 성찰했다. 


세월호 사고는 많은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여기 있는 피고인 포함, 국민 모두에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큰 재앙이었다. 국민 모두가 큰 슬픔을 함께 했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기에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피고인에게 어떤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하는지, 또 그걸로 희생자와 유가족, 국민 모두의 응어리가 풀릴 수 있는지 답답하다. 피고인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지금도 수면제 등에 의존한 채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본인의 업보를 어떻게 씻어야 할지, 행여 그 업보가 죄없는 자손들에게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가시밭길을 걷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피고인 책임이 얼마만큼인지 세심히 살펴봐달라.


또 이준석 선장과 박아무개 3등 항해사를 변호하며 안쓰러움도 많았다. 많은 인명이 희생돼 선처를 부탁드리는 일이 어려운 것들 알지만 잘못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유족에게 사죄하고 있음을 양형에서 고려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 강아무개 1등 항해사, 전아무개 조기장, 김아무개 조기수의 변호인


먼저 약 30회에 이르는 재판과정을 통해 이번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고 밤낮 수고해준 검사님들께 경의를 표한다. 또 무죄추정원칙에 입각,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피고인들의 권리 보장에 힘써주시고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해주신 재판장님과 배석판사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사법연수원에서 형사재판 변호인은 진실을 말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배웠고,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썼다. 전 국민의 비난을 받고 가족조차 등 돌린 피고인들과 지난 6개월간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내용을 최대한 가감없이 변호하려고 노력했다.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사실 그대로 말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라 믿는다. 간략히 두 가지만 언급하겠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수입, 증개축하면서 발생한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화물 운송이익 극대화하는 데에 전력을 다했고 물류팀은 회사 실세 중의 실세로 다른 팀이 그 권한을 넘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팀과 다른 팀은 철저한 갑을관계였다. 배의 수리가 필요해도 항해에 지장이 없으면 무시되는 관계였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에게 화물 과적과 고박 제대로 못했다는 책임을 묻는 건 지나치게 가혹하다. 


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발생한 인명사고 때 피고인들이 구호조치를 이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의적인 게 아니라 피고인들의 무능에서 비롯됐다. 누구도 승객들이,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것이라 생각 못 했다. 피고인들의 무능함이 죄라면 피고인들 모두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전 국민의 분노를 샀던 이번 사건에 관하여 재판부께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이번 사고로 인해 많은 피해자 가족들이 고통받고,  그 가정은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피고인 변호인으로서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유족분들과 비교할 바 아니지만 피고인들의 가정 역시 와해됐고, 재산은 국가에 의해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피고인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부모로서, 사회 일원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법적 책임을 지우더라도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선처 베푸시길 간절히 바란다. 이상이다.


# 김아무개 2등 항해사, 신아무개 견습 1등 항해사의 변호인


세월호는 언젠가 침몰할 것이 예견됐던,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여객선이었다. 불법 증개축, 화물 과적, 고박 부실 등으로 누가 봐도 위험한 배였다. 또 제대로 대피할 장소가 없었고 선원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다. 청해진해운이 선원들 훈련에 2000원 썼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한폭탄같던 세월호는 4월 16일 30도로 기우는 엄청난 사고로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이런 배를 운항할 수 있도록 묵인하거나 허가한 사람들, 선사와 구조의 1차적 책임자인 선장 및 선원들, 또 2차적 책임자들로 현장에 신속히 도착,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해경 등 모두에게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구형에서 보듯 현실은 1차 구조 책임자인 피고인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고 있다. 피고인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 못 했으니 응분의 처벌 받아야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모든 책임을 떠안을 수 없다는 게 피고인들의 입장이다. 


또 하나의 사건에서 누구는 조타실에서 살인 및 살인 미수, 누구는 3층에서 살인 및 살인 미수 등으로 처벌하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스럽다. 김아무개 항해사는 선장 지시로 사무부와 무전으로 교신했고,  진도VTS 등과도 교신했다. 123정에 오른 뒤에는 바다에 빠져 의식 잃은 두 명에게 인공호흡을 실시, 인명을 구하기도 했다. 또 사고 직후부터 탈출하기 전까지 약 1시간 30분의 시간 동안 누구보다 많이, 열심히 구조활동에 임했다. 


물론 피고인 혼자 많은 일을 하려다보니 부족한 일이 있던 게 사실이고 피고인도 이를 인정,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김 한해사는 여객선 내 6번째 서열로 권한과 책임이 작고 1년 8개월짜리 승선 경력 가진 초보다. 46년간 살며 한 차례 형사처벌도 받은 바 없이 성실히 살았고, 응급처치강사로 6년간 봉사활동해온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신아무개 견습 1등 항해사는 전날 채용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승선, 비상시 임무가 정해지지도 않았고 세월호 구조나 장비도 몰라. 정식 선원 아니란 생각도 가졌다. 또 당시 MRI 촬영 결과 무릎 인대에 염좌가 있다고 해서 평지 걷는 것도 불편했다. 당시 신 항해사 부상의 심각성을 알 수 있는 점이다. 그는 사고 당시 선장 및 선원 구조활동의 보조정도밖에 할 수 없었고 자신보다 세월호를 잘 알고, 승선 경험이 훨씬 많은 선장 등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과연 누가 신 항해사와 같은 상황에서 그 이상의 승객 구조활동 할 수 있을지,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신 항해사는 승선경력이 3년밖에 안 되고 36년간 성실히 살아왔다. 마지막으로 사건 당시 어떤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악의적 인식갖고 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 대처했음에도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부분은 참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종합하시어 피고인들에게 최대한 적절한 처분을 해주시길 바란다. 


# 박아무개 3등 항해사의 변호인


피고인 공소사실은 크게 사고 원인, 운항상 과실 여부와 사고 이후 구호조치 취하지 못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박 항해하는 사고 당시 당직항해사로 항해 지휘를 하고 있었고 때마침 변침을 지시하고 있었다. 재판에서 운항과실을 다투는 이유는 배가 급격히 기울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보통 이렇게 빠른 시간에 배가 침몰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렵다. 세월호도 상당시간 기운 상태로 있었던 걸 보면 당직항해사나 조타수조차 무엇이 잘못됐는지 판단할 수 없었을 만큼 매우 빠르게 기울었다. 


검찰은 대각도 조타로 초기 횡경사 발생했다는데 과연 대각도 타각은 몇도를 말하는 건지. 조타수가 몇도를 썼는지는 전문가도 명확히 말 못해. 또 왜 그 타각이 세월호에서만큼은 사용하면 안 되는지, 그게 정당한지, 더 나아가 3등 항해사에게 책임을 묻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검찰은 전문가 자문 구하고, 증언을 들었다. 근데 모두 대각도 조타를 전제했을 때 뿐이었다. 시뮬레이션 실험에서도 마찰계수 등을 조정하면 전혀 다른 결과 나올 수 있음 알 수 있다. 또 조타수가 사고 직후 타를 쓴 적이 없는데도 조타기가 중립으로 놓여있었다는 것을 증명 못 했다. 또 조타수 말대로라면 타효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인데 그럼 선체 결함 등이 있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피고인은 변침지점에서 변침을 했고 과연 이것이 사고원인인지 나아가 그것을 과실로 평가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에 대해선 피고인에게 억울한 점이 없도록 현명하게 판단해달라. 


구호조치의 경우, 피고인은 사고 직후 조타실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매우 명백하다. 한쪽 구석에서 계속 울고 있었고, 구조된 이후에도 계속 세월호를 보며 울부짖었다. 피고인이 결코 잘했다는 게 아니다. 승선경력이나 당시 지휘체계 붕괴된 점 등에 비춰보면 과연 사고 당시 피고인이 적절하게 조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이 사건 사고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리란 점과 모든 책임자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해달라. 


피고인은 하루하루 유족에 대한 책임으로 반성하고 있다. 올해 25살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피고인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고려해달라. 


# 조아무개 조타수, 박아무개 조타수의 변호인


조아무개 조타수에 대해 변론하겠다. 그는 당시 업무상 과실 저지르지 않았다. 검찰 보고서와 전문가 자문단의 법정 증언들에 의해도 사고 당시 대각도 조타가 있다고 추단할 수도, 사고 원인이라고 가늠할 수도 없다. 오히려 증개축, 과적, 고박불량 등이 이번 사고를 발생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 어떤 증거에 의해서도 조타기가 중립상태에 있던 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이 재판의 목적성 중 하나가 사고 원인의 정확한 규명인데 관련 증거가 객관적이거나 정확하지 못한 건 아쉽다. 하지만 조 조타수에게 특가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는 성립될 수 없다.


유기치사상과 수난구호법 위반 보겠다. 선원들간의 엄격한 상명하복관계는 단순 관례가 아니라 선원법과 운항관리규정 등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이 사건 발생 직후 선장, 항해사는 구조와 관련된 어떤 지시도 조타수에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 조타수에게 특가법 위반 고의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 설령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도 조 조타수에게 기대 가능성 있다고 보기어렵다. 책임이 조각되므로 선처해달라. 


박아무개 조타수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퇴선 때까지 승객 구호조치를 했다. 그는 조타실 왔을 때 밸라스트 펌프를 작동시켜 배를 바로 세우려고 했고, VHF 교신으로 승객 구조 도모했다. 또 비록 실패했지만 구명벌을 터뜨리려고 했고, 퇴선 이후 객실창을 깨뜨리는 것과 구조된 승객들이 헬기에 타는 것을 도왔다. 구호조치를 하지 않을 의사 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설령 유기치사상이나 수난구호법 위반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해도, 조타수인 피고인에게 기대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책임이 조각돼야 한다. 또 책임 인정되더라도 박 조타수가 유족들에게 죄송해하고 있는 만큼 선처해달라. 


오아무개 조타수 역시 사고 발생 직후부터 승객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개시했다. 그는 사고 발생 직후 우현 출입문으로 나가 구명벌을 터뜨리려 했고, 박 조타수가 좌현 출입문으로 나갈 때 수도꼭지에 호스 묶어줬다. 또 조타실에서 나간 뒤 승객을 구조할 때 객실창을 깬 것은 오 조타수였다. 그는 승객 구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승객들을 객실창에서 꺼낼 때나 구명보트에 탄 승객들을 123정에 끌어올릴 때 최선을 다하였음은 123정 영상을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오 조타수가 객실창을 망치로 안 깼다면 과연 구조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승객 등을 유기할 고의가 있었다거나 구호조치를 안 할 의사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이런 사정이 존재해도 위반죄들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조타수인 피고인에게 기대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책임이 조각돼야 한다. 설령 유죄가 인정되어도 당시에도 승객 구조활동을 했고, 선원들 중 가장 최선을 다한 사정이 확실하다. 최대한 선처해달라. 


청와대 부근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 설치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의 농성천막에 수학여행 도중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이 내걸려 있다. 학생들 사진이 바람에 펄럭이며 흐릿해졌다 또렷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 권우성



# 박아무개 기관장의 변호인


피고인은 세월호 기관장으로서 응분의 책임을 질 준비가 돼 있고, 미흡한 (구조)활동을 반성한다. 다만 공소사실의 사실관계 대부분은 인정하나, 피고인에게 살인의 고의 또는 유기의 고의 없다는 게 주요 변소 요지다. 나머지는 변론 요지서 내용을 원용하겠다. 


정상관계 참작 부분 말씀드리겠다. 공소사실에 나타난 범행을 고의로 했다고 판단해도, 일련의 행위를 살피면, 고의보다 무능력에 따른 행위인 점이 크고, 조타실에서 3층으로 내려오고, 이후 해경 단정에 탑승한 것은 자의보다 타의나 상황에 의한 것임을 살펴달라. 


박 기관장은 제주에서 태어나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가정이 차비를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는 돈을 벌 생각으로 부산 해양고교 진학했지만 어머니가 고2 때 담석증으로 돌아가셔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못한 효도를 다하려고 했으나 일찍 돌아가셨다. 


박 기관장은 고교 졸업 후 선원 생활을 시작했고, 27세에 현재 아내와 결혼했다. 외항선만 타다보니 아내에게 잘해준 것도 없이 한국에는 일년에 한 달 정도 있는 생활이 계속 됐다. 그럼에도 아들 셋을 낳아준 아내에게 감사했지만 가장의 한 순간 잘못으로 가정은 비탄에 빠져졌다. 


박 기관장은 건강도 좋지 못한데 20대부터 척추협착증 앓아 투병 중이며,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현재 폐렴 투병 중이다. 장시간 건강을 못 지킨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손아무개 1등 항해사 역시 기관장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직한 사람이다. 주변에서도 그를 잘 알고 안타까워하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박 기관장도 매일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자신을 질책하고 있다. 그 역시 한 명의 평범한 선원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무슨 결과를 낳는지 알았다면 먼저 퇴선하지 않았을 텐데, 그걸 잘 모르는 무능한 기관장이었다. 하지만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대한 처벌을 내려달라. 


# 손아무개 1등 기관사의 변호인


제가 변호인으로서 6개월간 이 재판에 참여하면서 하나의 질문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제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느 증인처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승객을 구했을까, 아니면 공황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못했을까, 제 안위만 생각한 채 수수방관했을까. 그러나 제 양심에 손을 얹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지난 10월 21일 공판에 재생된 단원고 2-8 동영상 보면서 저도 눈물을 흘렸다. 1년 전 혹은 2년 전, 저렇게 행복했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인데,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은... 별이 되어 이 땅에 없고, 사진 속의 어른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또는 가장 노여운 얼굴로 이 법정에서 뵙게 된 비극적 현실 앞에서 유족들의 외침이 아픔에서 나온, 고통의 절규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특히 동영상 말미에 나오는 ‘지금은 안전한가요’라는 물음은, 앞서 제가 품고 있던,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란 물음보다 더 깊게 제 마음을 파고들었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세월호 사건은 잊혀선 안 된다. 천 개의 바람이 되고, 별이 된 아이들이 영원히 기억돼야 한다.


유난히 봄꽃이 일찍 핀 4월 중순경, 이 사건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의뢰를 받았다. 당시 다른 사선 변호인들은 수임을 모두 거절했고, 저도 그러려 했다. 그러나 피고인의 자해만은 막아달라는, 손 기관사 부인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후 손 기관사를 접견했는데, 그 자리에서 무죄를 주장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 그러나 손 기관사는 오히려 저를 설득했다. ‘변호사님, 경위야 어떻든 저는 당시 벌벌 떨기만 하고 어떤 것도 못했다. 저희들의 잘못으로 300명에 이르는 승객들이 목숨을 잃게 됐는데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다. 저는 자백하고 제 죗값을 받겠다. 저는 어차피 죽음을 결심했던 몸이다.’ 피고인의 그 말에 저는 더 이상 무죄주장을 권유할 수 없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고귀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손 기관사에게 무거운 형을 선고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염치없는 요청이다. 하지만 그가 승객 구조의무 다하지 못한 사고 당시 정황, 또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수사단계 이래 자신이 아는 모든 사실을 한 점 거짓없이 진술했고, 공판준비기일부터 모든 혐의 시인한데다 그의 건강상태, 자살로라도 속죄하려했던 점 등을 헤아려 피고인이 책임을 통감하고 유족들에게 사죄하는 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당한 처벌을 내려달라. 


# 이아무개 3등 기관사, 이아무개 조타수, 박아무개 조타수의 변호인


세 사람 같이 변론하겠다. 피고인들은 본 사건으로 희생된 피해자, 유족, 그 가족들에게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 혐의에 대해 많이 뉘우치고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


공판 심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들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세월호 선원으로서 승객 구호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세월호가 갑자기 전도, 급속히 침몰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공황상태에 빠졌고, 세월호가 30도에서 54도까지 기우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운신도 어려웠으며 승객 직접 구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세월호가 급속히 침몰하면서 3층 갑판까지 바닷물 계속 올라와 그대로 계속 세월호에 남는다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자신들 생명에 대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 상당한 이유 있었다. 형법22조 긴급피난에 해당한다.


또 수난구호법 위반의 경우, 해당 조항 주체는 다른 선박에 조난사고 원인 제공한 선박의 선장 및 승무원이다. 수난구호법 입법취지와 개정사유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수난구호법에 대해선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다. 무죄를 선고해달라. 혹 견해가 달라 유죄를 선고하시더라도 이 기관사는 만 25세로, 불과 2년 전 대학교 졸업했고, 기관사로서 승선 경력이 불과 5개월이다. 또 이 조타수는 만56세로 아직 혼인도 못한 채 20년 넘게 조기수 생활을 했다. 박 조타수 또한 59세의 고령자로 27년 이상 조기수로 근무했고, 10년간 가족들과 떨어져 배에서만 생활한 점을 감안, 최대의 관용을 베풀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