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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기록해야 기억한다

유우성 그리고 변호인들... "내 돈 써가며 변호하는데 미안하더라"

대한민국 사법제도는 3심제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다투는 1·2심과 달리 법리 판단만 하는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소송당사자들에게 변론기회를 주지 않는다. 검찰이든 피고인이든 2심 결심이 그들에겐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4월 11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에게도, 변호인에게도, 피고인 유우성씨에게도 진짜 '최후변론'을 말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당사자도 그렇겠지만 지난해 1월부터 사건을 맡아온 변호인들의 감회가 남달라보였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 꽤 긴 변론이 이어졌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박히더라. 아깝기도 하고, 졸음을 참아가며 고생한 팔을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올린다. 법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묻는 말들이었다.




지난 3월 12일 유우성씨가 국정원 증거조작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고등검찰청으로 들어가는 모습. 왼쪽부터 양승봉 변호사, 김용민 변호사, 유우성씨, 천낙붕 변호사. ⓒ 유성호



[김용민 변호사] "이런 사건을 조작이라고 못하면, 언제 이 말을 쓸 수 있겠나"


마지막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1년 넘게 보내왔습니다. 피고인과 가족들이 다시 만나서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 사건 항소심에서 저희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위조된 증거가 법정에 제출됐습니다. 국가의 형벌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역사 이전에, 형벌이란 것은 개인 간의 사적인 복수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그 사적인 복수를 금지하고 국가가 형벌권 가져온 것은 국가 형벌권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명백한 증거, 그런 증거조사를 통해서 죄 있는 자를 처벌하라는 국민의 신뢰, 그것이 국가 형벌권입니다. 그리고 그 형벌권은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줌으로써 실현된다고 할 것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권한입니다. 권리가 아닙니다. 제3자,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그 힘을 행사해야 합니다. 권한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검찰 수사방식과 피고인을 괴롭히는 행위는 (형벌권을) 권한이 아니라 권리로 행사하고 있는 걸로 보여집니다. 


저는 이 사건을 변론하기 전까지는 조작이라는 표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변론하면서 ‘이런 사건에서 조작이란 말을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면 과연 언제 이 말을 쓸 수 있나, 어떤 사건을 조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란 의문이 들고 부끄러웠습니다. 이 사건은 증거조작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간접조작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사사법체계 역사에 남을 치욕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많습니다. 첫 번째는 법원입니다. 검사가 증거를 조작해 법정에 제출해서 법원 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첫 번째 피해자는 법원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의, 법원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2차 피해자는 여기 앉은 피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무후무한, 아니 후무하기를 바라며, 이러한 증거조작 행위에 대해서 검찰이 자체 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정에서 피해자인 법원 역시 검사의 증거조작행위에 제재를 가해야 합니다. 그 유일한 제재는 결국 검사들이 제출한 증거들의 능력, 신빙성에 모든 의심을 갖고 바라봐주시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시는 것입니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십시오.


[김진형 변호사] "사법민주화가 한 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들어"


피고인이 간첩이라고 진술했던 유가려는 1심 법정에서 자신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 구금됐고 가혹행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의 국보법 혐의는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2심 들어서는 검찰이 피고인의 간첩행위를 입증할만한 결정적 증거라고 한 출입경기록과 관련 증거가 모두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증거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수사관들이 기소된다는 소식을 최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과연 이 사건을 통해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피고석에 앉은 피고인인가에 관해 강한 의구심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국가기관이 부여받은 권한을 남용,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몬 범죄행위라고 봐야합니다. 우리 사법제도가 수십 년 동안 갈고닦아온 사법민주화가 한 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들었습니다. 


재판장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무고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주십시오. 



3월 15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변, 민주법연,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국민설명회'에 참석한 유우성씨(가운데)와 그의 변호를 맡고 있는 장경욱(오른쪽에서 두 번째), 양승봉(오른쪽 맨 끝) 변호사. ⓒ 권우성



[양승봉 변호사] "국보법 하나라도 1심 유죄였다면... 변호사 못 할 것 같더라"


재판장님, 많이 피곤하시겠지만 저희도 1년 3개월 동안 이 재판을 하면서 많은 소회가 있었습니다. 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2013년 8월 21일, 1심 선고일을 하루 앞두고 잠을 못 잤습니다. 만약 (피고인의) 국보법 혐의 9개 중 하나라도 유죄가 난다면 제 삶이 좀 달라지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 주관을 말씀드리자면, 이 공소사실 중 하나라도 유죄가 인정된다는 건 판사님이 정신없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사법구조가 그런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판사님은 굉장히 영민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법구조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밥을 빌어먹고 사는 저는 하나라도 유죄가 난다면 이 체제 안에서 제 정신으로 변호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이 안 왔습니다. 다행히 1심에서 무죄가 났습니다. 1심 판사님들도 긴 시간 동안 재판을 지켜봤기 때문에 검사님께서 여러 가지 말씀했지만, 그에 대해 1심에서 충분히 논의가 있었고, 반박됐습니다. 직접 재판을 보신 분이 냉정하게 판단했다고 봅니다. 


저는 1심, 2심 거쳐 40회 넘는 의견서 썼는데 13회, 14회 지나니까 유우성씨를 도저히 피고인이라고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첫 제목 빼고는 전부 다 유우성, 유우성, 이렇게 썼습니다. 피고인이라고 쓰지 않았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제 돈과 시간을 써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미안했습니다. 제 시간과 돈을 써서 일을 했는데도 미안했습니다. 그 미안함이, 왜 미안한지, 내가 내 시간과 돈 써가면서 일하는데 왜 미안한가. 굉장히 민망하지만 저는 그것이 애국심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한민국 국가기관이 한 너무나 가혹한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변호인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함을 느낍니다. 그게 저는 애국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기관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실망감이 너무나 컸습니다. 


유우성은 2006년 5월 엄마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2007년 6월부터 계속 국보법으로 감시받아왔습니다. 공소사실에는 2007년 7월 8월경 북 들어간 걸로 나옵니다. 근데 들어가기 전인 2007년 6월부터 (수사기관이) 들여다보기 시작한 국보법 피의자가 한 달 뒤에 중국 다녀왔습니다. 그런 피고인이 북에 다녀왔다고 기소를 했습니다. 계속 감시하고 지켜봤습니다. 북한에 다녀왔다는 증거가 네이트온 메신저, 이메일이 없다는 겁니다. 아마 그 당시 통화내역 이런 것 다 확보했을 겁니다. 그걸 제시하면 북한에 들어갔는지, 중국에 있었는지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우성에 대해서 2007년 6월 19일부터 2012년까지 약 10여명 진술서가 나옵니다. 내용이 다 똑같습니다. ‘유우성이 5일간이나 북에 체류할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수사기관이) 묻습니다. 생각을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간첩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에 여러 번 다녀온다, 왜 다녀왔다고 생각하냐’-‘보위부 만날 가능성 있다.’ 이게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계속 쌓인, 유우성에 대한 진술조서의 내용입니다. 


갑자기 2010년 목격자 2명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직접 본 게 아닙니다. ‘북한의 누나한테 전화를 해서 누나가 매형한테 물어보고, 그 매형이 또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니 유우성을 봤다더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자기가 봤다면서, (유우성과) 같이 있던 사람이 누군가였는지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은 ‘회령 꼬수’라고 해서 심한 곱슬머리란 신체적 특징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2007년 경 유우성을 봤다던 사람은 ‘유우성씨가 꼬수와 같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근데 꼬수는 2004년 탈북해서 지금까지 중국과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2007년에 (유우성과 북에) 같이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수사기관이) 그런 사람들의 진술을 믿을 수가 없어서 결국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009년 불기소됐습니다. 


이 사건은 그때 끝나야했습니다. 하지만 불씨가 살아났습니다. 2011년 2월 아버지의 동거녀가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제보를 두 가지 합니다. ‘화교 유가강이 연세대에 다니고 있고, 동생을 남한 에 데려오려고 한다’고. 간첩행위와 전혀 무관합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2011년 6월 유우성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됩니다. 국정원 대북파트 담당관과 친교를 맺은 게 2011년 경입니다. 그는 유우성과 친해진 뒤 ‘여동생 데리고 들어오면 잘 해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유우성이 여동생을 데리고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국정원 대북파트 담당관에게 ‘여동생을 데리고 왔다, 잘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딱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머리 수사관은 유가려에게 화교임을 인정하고 나서 밀입북을 조사합니다. 오빠의 밀입북을. 그때에도, 증인 신문 때도 객관적 자료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근데 2012년 11월부터 12월 사이에 오빠가 밀입북을 했다고 증명할 자료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사기록에 없습니다. 근데 대머리 수사관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객관적 자료가 하나라도 나와야 하는데 그런 자료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여동생이 오빠가 북에 15번 들어갔다 나왔다고 한 진술서만 있습니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쓴 진술서입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유가려가 진술 번복한 이유가) 아버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는데, 여기에는 아버지와 오빠가 함께 밀입북한 걸로 나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진술서가 있지만 (법정에) 제출되진 않았습니다. 객관적 증거가 없는데도, 열다섯 번이나 오빠가 북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과정 어땠을지는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재판장님, 1심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재판이 공개되고 이 과정을 모든 사람이 들여다봤다면 판사님에 대한 염려가 덜했을 것입니다. 판사님이 영민하고 똑똑한 분인데도 비공개로 (진행)하니까 결국 결정은 재판장 한 분이, 주심 한 분이 하는 거 아닌가 싶어 너무나 조마조마했습니다.


판사님께서 판단하시는 기준이 있겠지만, 재판 하나하나의 구체적 사실도 중요하겠지만 전체 흐름을, 이 사건이 과연이 어떻게 진행되고 만들어져 왔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검사들이 국정원 직원과 수사관이 가지고 온 중국 출입경기록을 철회했습니다. 유우성이 유죄라는 근거는 전부 국정원 조사자료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검사들도 의심할 기회 많았다. 판사님들도 한 번 의심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보이실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은 국보법 위반 사실이 없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해주시고, 피고인이 하루빨리 더 이상 이와 같은 억울한 일로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천낙붕 변호사] "6개월 불법구금하는 합동신문센터 존재, 아무도 안 믿어"


공안사건을 하도 많이 했지만 (재판이 밤) 12시를 넘는 건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하는데 (오늘 재판이) 그렇게 됐습니다. 사건이, 한 편의 드라마가 종결하는 것 같은 그런 시점에 이른 듯합니다. 


피고인과 변호인들도 지난해 1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마라톤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 고참 변호사이지만 다른 후배변호사들이 정말 열심히 해서 상당히 따라가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1년 4개월 지나서 보니 여섯 명 변호인이 주로 활동했는데, 6명의 지난 1년 재정 보니까 전부 다 적자입니다. 아까 양승봉 변호사가 ‘왜 이렇게 자기 돈 써가면서 하는데도 부끄럽고 미안한지 모르겠더라’며 자신의 마음을 표출했지만 어찌 보면 변호인들 전부 다 같은 생각입니다. 


2013년 1월 10일 피고인이 체포되고나서 천주교 신부님이 민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근데 피고인이 그때 어디에 구금됐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국정원은 피고인을 체포하면서 지인들에게 아무런 통지를 안 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피고가 어디 구금됐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피고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았고 알지 못하는 국선변호사가 선임됐고, 결국 구속됐습니다. 


여동생의 허위진술이 나왔다는 얘기를 전하자 피고인은 단번에 ‘가려가 헛소리한다고, 미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근데 유가려도 어디에 구금됐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변호인들이 추측에 상상을 더해 며칠간 수소문한 끝에 알아낸 곳이 합동신문센터였습니다. 주소도 우연한 일이 아니면 알기 어려웠고, 아무도 그곳이 어디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대한민국에 공개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처음 찾아간 날에는 (변호인) 접견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거절당했습니다. 그 앞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접견을 다시 요청했습니다. 국정원에서 마침내 ‘유가려가 원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내놔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증거보전절차에서 유가려가 변호인 접견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국정원은 이번엔 ‘합동신문센터 구금자는 접견권 없다’고 답변했습니. 변호인이 그 일로 준항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국정원은 이게 수사방해라고 말했습니다. 준항고 신청이 왜 수사 방해가 되는지, 국정원만 알고 있는 사실 같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변호인의 준항고 신청을 모두 인용했습니다. 변호인의 접견권 침해 준항고 신청이 국정원 수사방해라면 법원이 이를 인용한 것은 더욱 더 수사를 방해하는 모양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 여러 상황으로선, 국정원의 불법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책임이 법원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공안검사를 보겠습니다. 검사는 항소를 취소하지 않고 유죄 판단을 받겠다고 합니다. 검사의 최종의견을 다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원심의 유일한 증거, 거의 유일한 증거는 유가려의 진술이었습니다. 항소심의 유일한 증거는 위조증거였습니다. (검사의 최종의견은) 이제 남은 증거란 거의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런데 증거조작이 드러난 후) 공안1부 전체가 나서서 사건을 면밀히 검토했다, 피고는 간첩이 맞다 간첩 맞다고 언론 보도를 요청했습니다. 이후 공안1부는 국보법 편의제공 관련 증거들 중에서 탄핵증거를 다수 제출했습니다. 사기죄로 공소장 변경하고 그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먼저, 편의 제공은 간첩죄가 아니잖습니까. 그러면서 피고가 간첩죄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탄핵증거라는 건 범죄 사실은 물론이고 간접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진술의 신빙성만 탄핵할 수 있습니다. 검사는 입증책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싶습니다. 이제 피고 측이 무죄를 입증하고, 검사가 탄핵하는 그런 형국입니다. 형사소송법 기본에 충실해주기 바랍니다. 


검찰은 또 지난 기일에 사기죄로 공소장을 변경하겠다면서 기어코 공판기일 한 번 더 달라고 했습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다른 절차로라도 꼭 사기죄를 추가하겠다며 법원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공안부가 언제부터 사기죄를 직무관할로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도 공안부 전체가 나서서 말이죠. 그 금액도 재벌들의 수천억원대 사기가 아닙니다. 검사 주장에 의해서도 생계형 사기인 그런 사건입니다. 나아가 1심에서 기소하지 않은 사기죄를, 아무런 실익이 없는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것 자체가 오로지 피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겠다는 목적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합동신문센터가 사기범을 수사하는 곳이라면, 대한민국에 합동신문센터가 존재할 의미 자체가 없습니다. 사기죄는 개인 간 이익을 침해하는 범죄인데, 국정원이 많은 예산을 쓰며 고작 사기범을 수사하는 곳이라면 국민 입장에서 누가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나아가 대한민국 공안검사의 자존심을 걸고라도 항소를 취하해야 명예를 찾을 수 있는데 변호인들의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공소를 유지하는 이유가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아마도 이런 정도의 증거만 있으면, 언제라도 탈북자는 간첩으로 기소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변호인의 도움이 미치지 않는 다른 사건은 이런 정도의 기소로도 간첩죄가 유죄 판결을 받아온 것 같습니다. 본건은 변호인들이 중국출장만 4회 이상 갔습니다. 이런 정도의 도움이 없다면, 아직도 간첩이 만들어지고 있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 이 사건 판결은 간첩조작사건을 근절하는 역사적 판결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일한 증거로 유가려의 진술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원심은 유가려가 합동신문센터에서 한 진술의 임의성을 인정했습니다. 탈북자 처지에서 보면, 한국에 입국할 때 많은 경우 외톨이로, 주위 사람 도움을 받을 처지가 아닙니다. 더욱이 6개월씩이나 구금될 때는 변호인은 물론 친지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강압, 국정원의 경제적 지원 약속 같은 당근으로 탈북자 스스로가 약간의 허위자백이라고 한다면, 그에 걸맞은 보강 진술을 해 줄 다른 탈북자들은 얼마든지 섭외가 가능합니다. 그만큼 합동신문센터 진술의 임의성 판단은 아주 중요합니다. 법원에서 그동안 임의성을 인정해와서 합동신문센터의 간첩조작이 수시로 이뤄졌고 그게 국정원이 개입한 공안사건 의 현 주소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하면서 주변 법조인들에게 여러 번 물었습니다. ‘세계에서 사람을 6개월 동안 구금하며 자백 받는 나라 있다, 어딘 줄 아냐.’ 대개 북한 아니면 아프리카 어느 나라 아니냐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2013년도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합동신문센터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무죄의 결정적 증거인 (밀입북의심시기에 중국에서 찍은) 사진을 빼놓고 (법정에) 제출 안 하고, 촬영장소를 북한이라고 거짓으로 특정하고. 외국공문서를 조작해 간첩으로 만드는 이런 현실입니다. 


정말 이쯤이면 국정원은 몰라도 적어도 검사는, 검사라면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무엇이 더 할 게 남아서 아직도 항소를 유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변호인들이 증거조작을 아주 강하게 소명하면서 검사에게 같은 법조인으로서 진정성을 갖고 철저히 검증하도록 권유했는데 검사는 스스로 하지 않고 다시 국정원에게 맡겼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증거조작의 책임을) 국정원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작성한 문건의 책임을 사무실 직원에게 전가하거나 판사가 재판 책임을 사무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같은 법조인으로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일을 왜 검사만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건은 합동신문센터 허위자백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국보법은 그렇게 사건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날조죄 등은 지휘자의 책임까지 묻습니다. 간첩사건은 지휘 책임자인 검찰총장. 장관에게도 보고해야 합니다. (검찰이) 증거조작사건에서 국보법 날조죄보다 오히려 입증이 더 까다로운 모해증거로 가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간첩을 조작하면 검찰 총책임자까지 처벌하는 엄청난 규정이 유명무실해질 행태입니다. 


마지막 보루는 법원이어야 합니다. 합동신문센터의 임의성이 부정돼 국정원이 조작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임의성이 없다는 판단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증거보전절차는 합동신문센터에 거주하면서 법정에서 진술하는 조건에서 이뤄졌습니다. 강압상태의 연속이었습니다. 검찰 진술도 이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입니다. 결론적으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아서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억압받는 현실에서 나와 신체의 자유라도 보장받는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