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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기록해야 기억한다

'원세훈 1심 판결' 그날의 기록

그날부터 벌써 12일이 지났는데도, 이 사건은 여전히 뜨겁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얘기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에 앞서 기록 차원에서 9월 11일 선고 공판 당일 법정에서 열심히 자판을 두들겼던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판결문 원문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오류도 없진 않겠지만 최대한 가감없이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이 사건을 그냥 묻어버린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후회를 하며 시간을 거꾸로 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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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1심 선고를 들은 뒤 법원을 빠져나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 유성호



1시쯤 이미 줄이 엘리베이터 앞 쪽까지. 30석 규모의 법정이 꽉 차서 자리가 없음. 자리가 없어서 기자들은 통로 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키보드 치는 상황. 


1시 46분 원세훈 살짝 웃으면서 입장. 짙은 회색 양복에 하늘색 넥타이. 안경 쓰지 않았음. 이동명 변호사와 둘이 먼저 와서 앉음.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부인도 왔다는데 안 보임. 


방청객들이 “원세훈이라는 죄인은 다르죠” “죄인한테 왜 인사를 해”라며 시끌벅적. 경비들이 “법정에서 조용히 하시라”며 제지. 공보판사도 법정 정리하려고 법정에 들어옴. 


1시 51분, 법정 안쪽 출입문으로 민병주·이종명 도착. 원세훈에게 목례. 민병주, 방청석에 있는 지인들과 인사 후 피고인석으로 이동. 이동명-원세훈-이종명-민병주 순으로 앉음. 


1시 54분 법정이 꽉 차서 변호인들이 입장하기도 어려울 정도. 김승식 변호사 등 나머지 변호인들도 도착. 


피고인 세 사람 모두 긴장한 모습. 원세훈은 자꾸 시선을 먼 데 두면서 생각에 잠긴 모습. 이종명은 눈 비비다가 이제 두 눈 감고 있음. 민병주는 법정을 둘러봄. 


1시 56분 법정 안쪽 통로로 박형철 부팀장 등 담담 검사들 도착.


1시 57분 재판부 도착. 


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 : 지금부터 서울중앙지법 제21형사부 2014년 9월 11일 판결선고절차를 진행하겠다. 피고인 원세훈, 이종명, 민병주에 대한 국정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먼저 지난 1년 간 이 사건 공소 유지와 피고인들의 변호를 위해 큰 수고 해주고 공판 진행에 협조해준 검사와 변호사께 깊은 감사드린다. 


이 사건은 피고인 원세훈에 대해 2013년 6월 14일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공소가 제기되며 시작됐다. 처음 피고인도 국정원장인 원세훈 한 명뿐이고, 공소사실도 국정원 직원들이 일부 인터넷사이트에서 1700회 찬반클릭, 2000여건 글 작성 게시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0월 7일 검찰이 국정원 3차장인 피고인 이종명과 심리전단장 피고인 민병주에 대해서도 추가로 공소가 제기됐고, 10월 18일 국정원직원들이 트위터에서도 약 5만여 건의 부적절한 트윗을 했다는 내용이 반영된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이 있었다. 


그 후 3차 공소장 변경까지 이어지면서 트위터 공소사실이 100만 건 이상으로 대폭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법리 다툼이 치열해지고 검토할 증거가 많아지면서 심리가 처음 예상보다 길게 이어졌다. 긴 심리과정에서 검사의 공소권 남용 여부 및 수사 절차의 위법에 의한 증거능력 인정여부 등 절차 다툼부터 이 사건 사이버 활동 흔적이 과연 국정원 직원 행위로 피고인들 공모 내지 지시에 의한 것이냐는 사실 인정 다툼, 나아가 그 행위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냐는 법리적 다툼 등 형사소송의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다툼이 제기됐고 쟁점마다 양쪽의 견해가 극명하게 대립했다. 결국 저희 재판부가 1년 넘게 8회 준비기일과 37회의 공판기일을 거치면서 검사가 제출한 총 54책 분량에 수만 쪽의 증거서류와 주요 관련자 32명에 대한 증거조사를 했다. 쟁점마다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이 있었으며 많은 디지털 자료 검토를 거친 다음 피고인 신문 등 거쳐 오늘 선고에 이르렀다. 


저희 재판부는 이 사건을 맡아 처음 심리를 시작할 때 말씀 드린 것처럼 법원이 주도적으로 소송을 지휘해 사건을 이끌어가기보다는 검찰과 변호인 양쪽이 공개된 법정에서 가능한 모든 공격과 방어, 즉 입증과 탄핵으로 실체적 진실을 다투고 재판부는 그 절차를 공정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 마지막 절차인 판결의 선고에 있어서 저희 재판부는 오로지 증거능력 있다고 인정되는 증거에 한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공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말씀 드린다. 


2시 2분 

2012년 12월 11일 '그날', 역삼동 오피스텔 앞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 권우성



먼저 판단 대상인 공소사실이 무엇인지 보겠다. 세 차례의 공소장 변경을 거쳐 최종적으로 정리된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국정원 본연의 임무는 국가안보 기능에 한정, 국내정치는 물론 선거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원장인 피고인 원세훈은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수행을 보좌·지원하는 것이고 이러한 성공적인 국정수행이 바로 국가안보’라는 잘못된 인식과 기조로 국정원 잘못 운행하면서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국정수행에 비협조적인 야당과 시민단체는 모두 종북세력 내지 그 영향권에 있는 세력이고, 이러한 세력에 선제적으로 적극 대응하는 한편 대통령의 실적을 널리 홍보하라고 반복 지시했다. 그 결과 이러한 지시가 이종명과 민병주를 통해 순차로 심리전단 전 직원에게 하달되면서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에 의한 정치관여, 선거개입 범행이 실행됐다. 피고인들이 공모하여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행위를, 동시에 공직선거법상 금지된 공무원의 지위 이용한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공소가 제기된 구체적인 활동내역은 심리전단 직원들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2012년 8월~12월까지 1214회에 걸쳐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 지지, 비방글 찬반클릭해 정치에 관여했고,  2009년 2월~2012년 12월까지 정치관여글을 모두 2125회 게시, 2011년 1월~12월까지 78만 6698회 걸쳐 트윗 또는 리트윗했고 그 중에서 찬반클릭 1057회, 인터넷 게시글 114회,  트윗 44만 6844회는 18대 대선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증거능력 등 절차문제, 사실인정 문제, 법리 적용 문제 등 모든 범위에서 검사의 주장 반박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판결문에는 모든 쟁점에 대한 판단을 상세히 적었지만 본문만 193쪽에 이르는 걸 자세히 고지할 수 없어 핵심만 말씀 드리겠다. 


제일 먼저 트위터 공소 제기는 부적절하므로 그 판단에 나아갈 필요도 없이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는 주장부터 보겠다. 변호인들은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했고, 행위자 특정 안 되는 등 공소사실 특정되지 않는다는 두 갈래의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검사가 지속적으로 특정, 3차에 걸쳐 공소장을 변경한 경위를 보면, 검사에게 피고인 방어권행사 방해할 목적 있다거나 공소권 남용했다고 안 보인다. 또 2년간 이뤄진 78만여 건 트윗에 대해서 각각의 일시, 계정를 모두 적시한 이상 공소사실이 충분히 특정됐다. 범죄 성부도 해당 트위터 계정이 심리전단 사용, 관리 계정인지 입증되는 게 중요하므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는 지장 없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증거능력에 관한 판단이다. 판결문에선 증거능력에 관한 쟁점을 12가지로 정리. 70쪽에 걸쳐 자세히 철시했다. 그런데 대부분 쟁점에 대해 31차, 32차, 36차 공판에서 증거 채부 결정을 하면서 이미 요지를 고지했다. 여기서는 이 부분 설명을 생략하겠다. 


사실관계 판단의 공통적인 선결문제, 검사가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특정한 각각 계정이 심리전단 직원 관리·사용한 걸로 인정되는지 여부를 먼저 보겠다. 


트위터 제외한 사이트와 커뮤니티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계정 117개다. 기록에 의하면 이는 전부 심리전단이 사용한 계정임이 충분히 입증된다. 다음으로 트위터 계정 보겠다. 검사는 각 계정 가입자 정보 확인, 실증적으로 입증한 게 아니라 빅데이터업체에서 제출한 방대한 자료에서 검사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것을 추출했다. 공판과정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계정 추출 기준에서 논리적 모순, 또는 오류의 가능성이 확인된다면, 재판부는 결국 그 기준에 따라 추출한 계정 전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전제 아래 검토해보겠다. 


검사가 공소제기한 전체 1157개 계정은 김아무개의 이메일에서 수집한 시큐리티 파일 내용을  기초로 했다. 그런데 증거능력 채부결정 때 이미 고지한 바와 같이 이 파일은 증거능력 없으므로, 이를 기초로 한 검사의 주장은 더 나아갈 필요 없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검사는 재판부 판단 이후에 시큐리티 파일 이외의 다른 증거, 즉 국정원 직원 진술이나 이메일 계정에서 압수한 자료 중 채택된 증거들에 의하여 새로 116개 기초계정 설정, 트윗덱·트윗피드 계정을 다시 추출했다. 이 가운데 기초 116개와 트윗덱 59개는 심리전단의 업무상 계정임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트윗피드 계정은 추출논리에서 국정원 직원이 사용하지 않은 것도 배재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 판결문에선 우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이유를 상세히 적었으나 기술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돼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종합하면 검사가 공소제기한 1157개 계정 중에서 재추출한 116개 기초계정과 트윗덱 계정 59개 등 총 175개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 나머지 982개는 검사 입증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 김지현



앞서 인정한 인터넷 및 트위터 계정 작성한 글 등을 대상으로 삼아 피고인들의 혐의가 입증됐는지 판단하겠다. 


국정원법 위반혐의부터 보겠다. 변호인들은 북한 및 종북세력의 대통령 비방과 국책사업 허위사실 유포한 일은 정당한 업무라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국정원법 3조 1항은 국내정보의 경우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등 보안정보에 한해서만 수집, 작성, 배포할 수 있다고 명확히 규정한다. 국정원 연혁을 봐도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거치며 권한 남용·인권침해 시비 끊이지 않아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 게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국정원법이 정한 그 업무 범위는 한정적,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고, 국가 안전보장 측면에서 어느 정도 필요성 인정되어도 그 한정된 범위를 일탈하면 적법한 직무 수행으로 볼 수 없다. 북 사이버활동에 대응할 필요 있다면 북의 허위사실 유포 등을 알리거나 국내 종북세력 확인할 경우 국정원법이 부여한 수사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업무 수행해야지 국정원직원 신분 감춘 채 일반인으로 가장, 북 주장과 무관하게 인터넷상에 국책사업을 지지하는 글 올리고 반대 정치인 또는 정당 비방 글을 작성·게시한 것은 행위의 동기나 목적을 떠나 그 자체로 국민의 건전한 여론 조성과정에 국가기관 몰래 개입. 국정원의 정당한 직무 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 


변호인들은 또 이 사건 사이버 활동이 국정원법 9조 위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한미FTA, 4대강사업,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국책사업 관련 게시글, NLL, 천안함 등 북 관련 게시글, 김대중, 노무현 등 이미 사망한 인물이나 정치적 중립성 있는 교육감 관련 게시글, 단순 사실관계만 적시한 게시글 등을 거론한다. 이 사건 사이버활동이 국정원법 직무 범위 벗어나도 그 행위가 처벌법규 구성요건 벗어나면 처벌할 수 없음은 죄형법정주의원칙상 당연하다. 그러므로 법률 문헌으로 돌아가 다시 검토하겠다. 


국정원법 규정은 특정 정당 지지 또는 반대를 금지하는 한편 이를 위반하면 처벌한다. 피고인과 심리전단 직원들이 어떠한 의도에서 이 사건 사이버활동 전개했더라도, 그 구체적 실행행위내역이 특정 정당 지지 또는 반대임을 인식했다면 국정원법 위반죄가 성립한다. 이 사건 주된 동기가 북한의 흑색선전에 대응하는 것이었어도 구체적 활동의 내용이 특정 정당·정치인 지지 또는 반대로 나타난 이상 이를 국정원법이 금지한 정치관여에 해당한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겠다. 첫째, 한미FTA 등 국정홍보 취지 글.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정부 수반으로 공무원이긴 하지만 정치관여 금지규정이 적용 안 돼 정당 활동은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대통령은 정부 수반인 공무원 지위와 정치적 헌법기관 내지 정치인 지위를 동시에 갖는다. 4대강사업이나 한미FTA 등 국책사업은 17대 대선부터 후보자 입장들이 극명히 나뉘었던 사업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에도 정부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때까지도 당적을 유지하며 여당과 정치적 관계를 유지했다. 정치적 중립 의무 있는 국정원이 직무범위 벗어서 정부 입장을 대변·홍보하는 글을 작성한 것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 행위, 즉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 지지에 해당한다. 


둘째, NLL과 북 미사일 발사, 천안함 등 안보이슈 관련 게시글. 북한 및 종북세력의 근거 없는 주장과 허위사실 유포를 지적하는 것은 국정원직원법 위반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증거로 인정된 글을 보면,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국정성과를 비판하는 국내정치인·정당에 대해서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직접적 반대·비방형태로 전개되어 있음이 명백하다. 예를 들어 NLL 관련 글을 보면 NLL의 적법성이나 수호 당위성 알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문재인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한다. 북 미사일 관련해서도 북한의 무력시위 비판에 그치지 않고 햇볕 정책 비난하며 이를 계승한 정당과 정치인 비난한다. 그렇다면 안보이슈라고 해도 이걸 정치관여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게 이 법원의 판단이다. 


셋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교육감 관련 게시글을 봐도 그 내용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의견표명수준에 그치지 않고 이들의 개인 비리 의혹 제기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결국 사망한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계승한 정당 또는 정치인 반대 의견을 유포한 것이다. 교육감도 선거로 선출되는 직위로, 현실적으로 교육감 정책은 보수성향이냐 진보성향이냐에 따라 여당 또는 야당 정책기조와 같이 한다. 그런데 관련 게시글 대부분에 진보성향 교육감 또는 같은 성향 정당·정치인 비판과 비난이 함께 포함된 사정을 더하여 보면 교육감에 대한 지지·반대 행위도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로 판단된다. 


넷째, 가치중립적 사실을 적시한 글. 증거들을 검토해보면 피고인과 변호인이 지적한 ‘가치중립적 사실관계를 적시한 글’이란 것은 국가정책 또는 국정성과의 긍정적 사실, 여권 정치인의 긍정적 행보에 대한 사실관계와 야권 정치인의 개인비리 행보에 대한 사실관계 등을 다뤘다. 이것을 순수한, 가치중립적 사실 관계만 적시한 글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국정원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국정을 홍보, 그에 반하는 정당 또는 정치인에 반대하는 이 사건 사이버 활동을 해온 것에 비춰보면 겉으로는 단순히 사실관계를 적시한 글도 그 주된 취지는 국정원법이 금지한 특정 정당·정치인 지지 또는 반대다. 따라서 국정원 직원들의 사이버활동이 법에 금지한 정치관여행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변호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변호인들은 또 국정원법 9조 2항은 직위를 이용한 행위를 금지하는데, 이 사건 국정원 직원들은 신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반인과 동일하게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했으므로 그 자체로 직위를 이용한 행위라 볼 수 없으니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조문에 ‘직위를 이용하여’라는 개념은 개인 아닌 국정원 직원 직위와 결부돼 정치관여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증거에 의하면 심리전단 직원들은 원장, 3차장, 단장 지시에 따라 활동했다. 개인 자격으로 하지 않았고 그 자체가 고유업무였고, 매일 시달 받은 이슈 및 논지에 따라 업무용 노트북으로 일했다. 겉으로 신분이 안 드러냈다고 이 사건 사이버활동이 국정원 직원으로서의 직위를 이용한 행위가 아니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가 열린 2013년 8월 19일, 이 사건 당사자인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적힌 자료를 보고 있다. ⓒ 남소연



지시 내지 공모관계 인정되는지 보겠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공모공동정범의 각 요건마다 구체적으로 사실관계 및 법리를 다퉜다. 각 쟁점에 대한 재판부 판단을 말씀 드리기 앞서 증거능력에 따라 인정한 사실관계를 말씀드리겠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1965년 창설 후 1997년부터 사이버심리전 활동 시작, 2005년 3월경 사이버전담팀 설치했고, 피고인 원세훈 취임 후인 2009년 3월 독립부서로 편제됐다. 이 사건 당시 사이버팀에는 4개의 팀이 있었는데, 3팀은 국내포털, 5팀은 트위터에서 북한 및 종북세력의 선전에 대응활동을 했다. 사이버팀은 매일 아침 담당자가 지휘부 회의에서 거론된 현안과 모니터링 결과 토대로 그날 활동대상이 되는 주요 주제와 관련해 ‘주요 이슈 및 대응논지’라는 문건 작성, 민병주에게 보고한 뒤 팀장, 파트장, 파트원에게 순차로 전달했다. 파트원들은 이걸 참고, 개인별로 활동논지를 준비한 뒤 국정원 외부로 나가 업무용 노트북 등을 이용해 자신의 업무에 맞게 사이버활동을 했다. 원세훈은 매월 1회 전부서장회의 개최, 모두 및 마무리발언은 모두 녹취해 보관했고 별도로 내부전산망에 게시했다. 한편 심리전단에서는 단장인 민병주 주재로 매주 팀장이 참석하는 간부회의에서 원세훈과 이종명의 지시사항 전달했다. 현안이 발생하면 원세훈이 직접 또는 이종명을 통해 특정 이슈 대응 지시했고, 민병주는 즉각 업무에 반영해 그 결과를 지휘계통에 따라 보고했다. 심리전단에서 작성한 ‘원장님 지시사항 실태’ 보면 1년 동안 원세훈의 모닝브리핑 지시사항 관해 심리전단이 부서별 특성 맞춰 세부 업무내역으로 구체화한 후 그 이행실태를 보고한 것이 상세히 나온다. 


원세훈의 전부서장회의 발언을 보겠다. 일반 국정홍보 관련해서 ‘국정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 많은데, 보다 정공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정책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부정책기조에 반하는 정치인 비판으로서 ‘국민이 여야 만드는 이유가 뭐에요… 많은 국민 원하는 쪽으로 우리가 일하는 게 맞는 거야’ 내지는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하면 강에 처박아야지’라고 발언한 게 확인됐다. 또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 관련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경우 이미 지난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임에도 현 정부를 비난하는 억지를 부려…’라는 발언을 했다. 경제성과 홍보 관련하여 ‘현 정부 출범 4년에 세계경제 위기 조기 극복, 무역 1조불 달성 등 큰 성과 이뤘으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 못 받아…’ 이라고, 무상복지 반대와 관련해 ‘좌파 교육감 주장하는 무상복지는… 이런 포퓰리즘적 허구성을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발언한 게 확인됐다. 판결문에서는 원세훈 의 정치관여 지시, 보고체계 등에 관해 재판부의 사실 인정을 상세히 적었으나 여기선 이정도만 언급하겠다.


이러한 사실관계 기초로 공모공동정범이 성립 안 한다는 변호인 주장을 판단하러 가겠다. 피고인 원세훈에 대한 판단은 나머지 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변호인은 원장님 지시말씀이 원론적인 것이고 참고사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발언은 제목 자체로 ‘지시 강조 말씀’으로 게시됐다. 또 내용이 이슈 및 논지에 그대로 반영됐다. 실제로 직원들이 작성한 글을 보면 원세훈이 지시한 쟁점이 빠짐없이 거론됐고, 지속적으로 이행실태가 보고됐다. 실제로 국정원은 원장님 지시사항 위반한 직원 징계했는데 그것을 두고 다투는 소송에서 적법한 지시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스스로 원세훈 발언을 업무상 지시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원장님 말씀은 그 자체로 업무상 지시에 해당한다. 


두 번째 (변호인)주장은 업무상 지시여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지지 또는 반대 취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세훈은 왜곡된 사실관계 바로잡으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국정을 홍보하고, 나아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특정 정치인 또는 정당에 대한 반대를 명백히 하도록 했다. 이는 정치활동 관여에 대한 지시다. 세 번째 주장은 원세훈이 심리전단 직원 공소사실과 외부조력자 행위는 인식 못했다는 것이다. 공모공동정범은 의사 결합 이뤄져도 공모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공모가 이뤄진 이상 실행에 직접 관여 안 한 사람도 형사책임을 진다. 공모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도 원세훈이 심리전단 직원의 구체적인 활동 방법까지 모두 알지 못했을 것 같긴 하지만, 취임 당시 심리전단이 인터넷상 토론글, 댓글 작성하는 방법으로 사이버심리전한다는 보고를 받았고, 심리전 결과를 보고 받은 것도 인정된다.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몰랐어도 그 사정만으로 죄책을 면한다고 할 수 없다. 또 외부조력자 존재 몰랐어도 (심리전단에서) 그에게 국정원 자금으로 보수를 지급하고, 그가 심리전단 직원들과 계정 주고받으며 동일한 활동을 한 사정에 비춰보면 결국 외부조력자는 국정원 직원 지시 감독 하에 동일한 사이버활동했다. 이는 구체적 범행 실행방법 중 하나라 공모관계 인정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기능적 행위지배가 없었다는 주장을 보겠다. 원세훈이 지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고, 심리전단 직원들이 특정 정당과 정치인 지지 또는 반대하는 글을 유포한 것이 인정된다. 국정원은 상명하복이 중요하고 수장의 조직장악력이 매우 커서 최우선적 고려사항이 될 수밖에 없음을 고려할 때 원세훈이 직접 실행행위를 분담 안 했어도 본질적으로 기여, 기능적 행위지배를 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변호인 주장처럼 심리전단 직원 개인의 의견이나 일탈 행위가 공소사실에 일부 포함됐어도, 범행 수행 중에 부수적인 다른 범죄가 파생되리라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범행에 나아갔을 때 그 전부에 대해서 기능적 행위지배가 존재한다는 법리에 비춰볼 때, 원세훈도 (다른 범죄가) 예상 가능했지만, 예방하는 조치를 안 했다. 이 사건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기능적 행위 지배가 인정된다. 이종명은 3차장으로 심리전단 관리 감독했고 원세훈이 개최한 회의에서 시달 받은 지시사항 등을 민병주에게 전달, 이 사건 사이버활동에 반영되도록 하고 민병주에게서 활동 내역 등을 보고받아 원세훈에게 보고한 게 인정된다. 민병주는 심리전단장으로 이슈 및 논지를 작성, 하달함으로써 이 사건 사이버활동의 구체적 실행행위 지시했고, 그 지시를 감독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한 걸 인정할 수 있다. 이 역시 이 사건 범행에 대한 단순한 방조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에 대한 기능적 행위 지배 통해 범죄 실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민병주, 이종명이 원세훈의 지시를 이행한 것이었어도 그 자체가 위법한데 그대로 전달했다. 원장의 지시사항 이행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 없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검사의 유죄 입증이 이뤄졌다고 판단된다. 


구체적인 범행내역을 보면, 인터넷 사이트 찬반클릭 및 게시글은 공소제기 전부가, 즉 2012년 8월 21일부터 12월 17일까지 1214회에 걸친 찬반클릭과 2009년 2월 14일부터 2012년 12월 13일 2125회에 걸친 게시글 작성은 유죄가 인정된다. 또 트위터 1157개 계정의 트윗글 78만여 건 중 국정원 직원 사용 계정임이 입증됐다고 판단한 175개 계정, 11만여 건은 유죄로 인정되고, 나머지 982개 계정, 67만 3771건 트윗글은 무죄로 판단한다. 다만 포괄일죄 중 일부를 무죄로 인정하는 것이라 주문에서 별도로 무죄 선고를 하지 않겠다.


진선미 의원은 지난해 3월 18일 원세훈 국정원장이 정치개입과 여론조작을 지시했다며 국정원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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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반 부분을 보겠다. 변호인들은 공직선거법은 단기공소시효 6개월을 규정하므로 2013년 10월 18일에 공소장 변경으로 공소제기된 트위터는 공소시효가 완성됐으니 면소판결을 해야 하고, 공소시효가 만료 안 됐어도 공소권 남용이라 공소가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인터넷상 선거운동과 트위터상 선거운동은 모두 구 공선법 85조 1항 위반이라는 것에서 죄명과 피해이익이 동일하다. 구체적인 범행 태양도 동일하다. 피고인 원세훈도 3팀과 5팀에 별도로 지시한 게 아니라서 그 범위의 당해성도 인정되므로 인터넷팀과 트위터팀의 의사 교환 없었어도 전체적으로 포괄일죄다. 또 검사가 인터넷팀 공소제기하면서 트위터팀 공소시효가 정지됐기 때문에 공소시효 완성 주장은 이유 없다. 또 이 사건처럼 일부 범죄사실에 대해 먼저 공소 제기한 경우,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가 어느 정도 훼손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검사의 추가 수사와 그에 의한 공소장 변경은 공소권 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사실이 인정되는지에 관한 판단을 말씀 드리겠다. 검사는 피고인들이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된다고 정한, 85조 1항 위반했다고 공소를 제기했다.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개념은 특정 후보자 당선 내지 득표나 낙선 위해 필요한 모든 행위, 그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능동적·계획적 행위로 정의된다. 따라서 어떤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보려면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이 인정돼야 한다. 


공직선거법 9조 1항은 공무원은 선거 또는 선거 결과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고, 86조 1항에서 공무원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나열, 별도의 금지규정 두고, 처벌규정도 별도로 뒀다. 이러한 체계에 비춰보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과 공무원이 선거 결과 또는 선거에 영향 미치는 행위는 엄격히 구분된다. 나아가 각 규정 내용이나 처벌 범위에 비춰보면 ‘선거에 영향 미치는 행위’는 선거운동보다 넓은 개념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판단함에도 피고인들 행위가 선거에 영향 미치는 행위이라는 것만으로 유죄로 판단할 수 없고 그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 행위에 해당함이 인정돼야 한다. 또한 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논리로 든 것 중 하나는 국정원이 국정을 홍보하는 건 정치관여이며, 각종 선거 시기에는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이 모두 선거 쟁점으로 모이는데 결국 특정 후보자 관련 선거 쟁점에 대해 유/불리한 여론 조성되므로 그것이 공무원에 의한 선거운동으로 귀결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어떤 단체가 선거 전부터 지지·반대한 것이 선거 쟁점이 되어도 그게 전부 공직선거법의 규제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것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정책이 선거 쟁점이 됐는지 여부에 따라 일률적으로 볼 게 아니라 목적의사와 능동적·계획적 행위인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법리는 특정정책에 대한 단체의 지지 또는 비방활동이 결과적으로 그 정책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입후보자에게 유/불리 영향을 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평상시에 계속 반복된 국정원 사이버활동이 선거시기라고 당연히 선거운동 된다거나 그 내용이 선거쟁점이라서 일률적으로 선거운동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피고인들의 행위가 선거운동 개념에 해당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능동적·계획적 행위에 해당하는지부터 보겠다. 먼저 피고인 원세훈에게 선거운동의 목적성 또는 범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판단요소인 원세훈의 선거운동 지시여부를 보겠다. 원장님 지시·강조말씀이 결국 가장 중요하게 검사가 제시한 증거다. 이 부분에서 검사가 구체적으로 선거운동으로 적시한 건 12가지인데, 거기서 18대 대선 선거운동을 직접적으로 지시한 것은 찾을 수 없다. 2012년 11월 23일자 발언에도 특정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선거에 개입하라는 지시는 포함돼 있지 않다. 오히려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원장님 지시·강조말씀에 의하면,  2012년 8월 원세훈이 ‘대선 정국을 맞아 ~ 관리해야 함’ ‘직원들은 작은 행동 하나하나~ 철저히 교육, 감독해야 함’ 이라고 발언한 게 나타난다. 2012년 9월에는 ‘선거철임에도 예전과 달리 원 흠집 내기 보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데, 이러한 성과 계속 이어지도록 ~’이라고, 2012년 10월에는 ‘전 직원들이 선거과정에서 물의 야기하지 않도록 긴장감 유지~’라고 발언했다. 2012년 11월에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선거 종료 시까지 불필요하게 연루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주기 바람’이라고 말했다. 원세훈이 반복적으로 선거에 개입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게 인정될 뿐이다.


검사는 심리전단에서 매일 작성, 하달한 ‘이슈 및 논지’를 조직적 활동 자료로 제시했다. 그런데 가장 핵심적 자료인 ‘425지논파일’ 봐도 한미FTA, 4대강 사업,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행보, 원전, 무상복지 등에 관한 주제와 논지가 게재됐을 뿐, 18대 대선 관련 사항이나 특정 대선후보자 지지 또는 반대를 찾을 수 없다. 이는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이슈 및 논지는 작성된 적 없음을 반증한다.


당선 및 낙선 목적성을 보겠다. 공소사실 범행일시 2012년 1월 3일부터 2012년 12월 19일까지다. 2012년 1월은 대선까지 11개월 이상 남았고, 당시는 후보자가 누군지조차 전혀 확정 안 됐던 시기였다. 새누리당은 2012년 8월, 민주당은 2012년 9월에야 대선 후보 확정했고, 안철수와 이정희도 9월말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직선거법 85조 1항은 ‘당선’이란 기준을 사용해 선거운동 개념을 정의한다. 결국 특정한, 또는 적어도 특정될 수 있는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 행위임을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비방해도 낙선 또는 당선시킬 후보자가 특정돼야 한다. 그런데 후보의 윤곽도 안 드러난 1월부터의 행위를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국정원 트위터팀 체포를 두고 극명히 엇갈렸던 윤석열(왼쪽) 전 수사팀장과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 ⓒ 유성호



행위의 계획성과 능동성을 보겠다. 심리전단 직원들의 수사기관과 이 법정 진술을 보면, 사이버팀은 2012년 1월 이전부터 매일 이슈 및 논지를 시달 받아 사이버활동을 전개했고, 이것은 대선 시기에도 동일하다. 앞서 검토한 것처럼 계속적인 업무가 선거시기가 됐다고 하여 당연히 선거운동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기존 사이버활동을 선거운동으로 전환할 것으로 의도, 실행에 옮겼다면 적어도 어떤 특정시점에 선거운동의 목적성, 계획성, 능동성이 드러나야 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를 살펴봐도 이러한 정황을 찾을 수 없다. 


또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점차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트위터 활동내역을 보면 트윗과 리트윗 수가 2012년 10월은 전월에 비해 감소했고, 대선 직전인 11월에는 더욱 감소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이 점 역시 심리전단 활동을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사정이다. 검사는 또 원세훈이 국정원장 부임 후 사이버팀을 증편했고, 특히 2012년 초에 트위터 전담 안보5팀을 신설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추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원세훈 재직 전에 당시 원장이 ‘심리전단 증원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인정되므로 선거와 무관하게 필요에 따라 심리전단이 증편됐다는 피고인들 주장이 더 합리적이다.


재판부 결론을 말씀드리겠다. 정치관여 사이버활동은 그 자체로 국정원법 위반이며 특히 선거 시기에 있어서는 국민들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한 행위다. 특히 우리나라는 관권선거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된 뼈아픈 경험 있어 국정원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행위의 결과에까지 형사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또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격히 구분한다. 피고인들 행위가 선거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도 그것이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는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면, 형사법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들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 부분 공소사살의 상당부분은 국정원 직원들의 행위임이 입증되지 않았고, 나아가 피고인들이 선거운동 지시, 그에 따라 심리전단 직원들이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 목적으로 계획적이고 능동적인 선거운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어 범죄 증명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 선고해야 하지만, 상상적 경합 관계인 국정원법 위반이 유죄인 이상, 주문에서 별도 무죄 선고하지 않는다.


피고인 원세훈은 국정원 수장으로서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고 정치관여행위를 방지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데도 직원들에게 국책사업과 국정 성과 홍보를 지시했고, 국정운영 방침에 반대하는 정당 또는 정치인 반대하도록 지시, 조직적인 정치관여활동이 이뤄지게 함으로써 자신의 책무를 저버려 그 비난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권자인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합리적 토론 통한 여론 형성은 대의민주주의 핵심 요소다. 국가기관이 특정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자유로운 여론 형성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절대 허용될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그 죄책이 무겁다. 그러나 한편 북한은 남북관계 변화에도 여전히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해왔고,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 국정운영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 국정성과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국론 분열과 정부 전복을 책동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 사건 범행이 위법하게 이뤄졌지만, 피고인 등의 주된 목적은 북한의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와 흑색선전 대응에 있어 범행동기에 있어 참작할 바 있다. 나아가 이 사건 범행은 원세훈이 국정원 직무 범위에 대한 판단을 그르쳐 그 같은 사이버 활동도 정당한 직무라고 오인한 데에서 기인했을 뿐, 그가 적극적으로 위법성을 인식하고 범행을 지시한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심리전단 활동도 원세훈 취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 온 것이 기록상 확인된다. 원세훈이 어떤 목적을 갖고 계획한 게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속된 심리전단의 잘못된 업무수행 방식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답습한 것이다. 또 이 사건 범행이 원세훈 지시로 야기됐지만, 원세훈이 그 구체적 실행 방법이나 그 글 내용까지 모두 인지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주요한 양형요소로 고려했다.


이종명, 민병주 피고인들도 심리전단을 관리·감독한 사람으로 국정원법상 금지된 정치관여행위를 사전에 차단, 방지해야 하는데 원세훈의 위법한 지시 전달했으니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상명하복이 강한 조직 특성상 이의를 제기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중간에서 원세훈의 지시를 구체화해 전달, 활동결과를 보고하는 것 이외에는 범행을 주도하거나 핵심적인 역할 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 점을 주요 양형사유로 고려했다.


피고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시기 바란다. 주문. 피고인 원세훈을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3년, 이종명·민병주를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에 처한다. 다만 피고인의 형 집행을 4년간, 이종명과 민병주는 2년간 유예한다. 


3시 정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