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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4대강,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란 노래를 부르며 자랐지만, 정작 시냇물에서 뛰놀기는커녕 제대로 본 적 없이 자랐다. 언젠가 아빠에게 "어렸을 땐 동네에서 물고기 잡고, 멱도 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기 어렵기도 했다. '평평(平)하고 물(澤)이 많다'는 뜻을 가진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랬다. 기억 속의 냇가는 친구들과 '똥물'이라고 부르던 시커멓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하천이 전부였다. 


내게는 철저히 상상으로만, 혹은 동화 속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시냇물'이기에, 언젠가 태어날 아이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물고기몰이를 하고 돌을 들춰 민물게를 잡을 개울물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짙은 염소 소독약품 냄새에 찝찝해하며 수영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면 더욱 멋질 것이라 여겼다. 4대강 사업을 믿지도, 찬성하지도 않았으면서 아이들이 물가에서 뛰노는 홍보영상과 '수영 가능한 좋은 물'로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달콤한 말에 아주 살짝 혹한 이유였다.


▲ 2012년 8월 7일 오후 대구 달성군 현풍면 낙동강 달성보 하류지역에서 광범위한 녹조현상이 발생한 가운데 중부내륙낙동대교 아래에서 죽은 물고기가 녹조사이를 떠다니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역시 '미혹(微或)'이었다. 지난해 여름, 낙동강을 가득 메운 짙은 녹조가,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죽어간 금강의 물고기떼가 일찌감치 말해주고 있었다. 감사원의 2차 감사결과는 확인사살했을 뿐이다. 며칠 전엔 환경단체가 환경부의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은 수질관리 목표치도 달성 못 했고, 오히려 4대강 수질은 사업 전보다 나빠졌다"고 발표했다. 4대강 20개 지점 가운데 15곳의 COD가 높아졌고, 낙동강은 대부분 공업용수로나 쓸 수 있는 4등급으로 판명났다. 위에서 아래로, 순리대로 흐를 때 모든 것을 살리던 물은, 보에 막혀 갈 곳을 잃고 멈춰버린 후, 모든 것을 죽게 만드는 물로 변하는 중이다.


22조원이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은 결과, 고인 채 썩어가는 물, 생명을 앗아가는 물로 변해버린 4대강의 모습은 '처참하다'란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엔 문제 없다'고 항변하던 사람들은 이제 와 발뺌하고 있다. 심명필 전 4대강사업본부장은 최근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대강 사업 보의 목적은 수질 개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29일 "<4대강사업 마스터플랜> 모델링에서 얻은 예측치를 수질관리 목표값으로 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핵심은 한 마디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


▲ 4대강 사업 찬동인사 12인. 사진 윗줄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유영숙 환경부 장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나성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유인촌 전 문화관광부 장관, 심재철 새누리당 국회의원 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럼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임기 말에도 신규 댐 건설을 강행하며 끝내 손에서 '삽'을 놓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 전도사'로 불리던 정종환·이만의 두 전직장관과 권도엽 현 국토부 장관에게? "4대강 사업 비판론자들은 논문도 안 써본 사람들이고, 저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썼기에 헛소리 안 한다"며 "4대강 사업 후 우리나라는 살기좋아진다"고 예찬한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 교수에게? 일일이 거론하기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으로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다던 사람들이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참고 : 4대강 사업 찬동인사 인명사전). 


그 사이 물은 조용히 썩어가고 있다. 설령 저들에게 죗값을 물은 뒤 푸른 수의를 입힌다 해도, 물은 계속 썩어갈 것이다. 언젠가 내 아이가 벗과 함께 물장구칠 수 있는 시냇가를 꿈꾸는 일은 헛된 상상이라고 비웃는 양, 소리없이 그러나 처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가장 거대한 죽음을 우리는 지금 눈 앞에 두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2월 대선후보 TV토론에서 "4대강 사업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알고 있다"며 "위원회를 구성해서라도 (잘못된 점을) 검토해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