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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과거를 계속 말해야 하는 이유

외 기자들은 정치꾼 이야기를 계속 기사화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하는 친구들은 표만 있다고 생각되면 거짓말로 이야기 하여 자기 주장을 기사화 하여 자기를 언론에서 살아 있기를 바라는 친구들 아닌가? 인자 과거사말고 미래를 이야기 하는 기사를 쓰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겪은 유신'이란 주제로 이철 전 의원 인터뷰를 했다. 그 직후 받은 독자의 쪽지다. 이 전 의원을 두고 여러 면에서 평가가 엇갈린다는 점은 알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특히 KTX 여승무원 해고 문제만큼은 나 역시 그에게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이 쪽지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인터뷰의 초점 자체가 '이철은 어떤 사람인가'보다 '유신이란 무엇인가'였다.


더 실망스럽고 화났던 점은 '이제 과거사말고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잘못된 과거를 잊는 자는 그 과거를 반복한다'는 철학자의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대체 과거를 말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게 무엇일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이 모든 거창한 말들을 다 떠나서, 과연 유신은, 남영동은, 광주는 '과거'인가.


▲ 9월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고 김용원씨 부인 유승옥씨,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가 울부짖고 있다. ⓒ 권우성


60대 중반 노인이 난생 처음 보는 젊은이 앞에서 '울컥'할만큼, 40년 전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할만큼 몸과 마음에 또렷하게 남은 일들이 과연 과거일까. 아직 그 시절이 할퀴고 간 상처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여전한데, 추악한 권력이 덮어버린 비밀과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어떻게 '과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근혜 후보를 결코 지지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는 인혁당이, 부일장학회가, 장준하가 단 한 번도 '현재'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과거로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대립과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적당히 봉합하려 했을 뿐이다. '유감을 표명한다'는 이도저도 아닌 말로, '국민 대통합'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같은 표어로 미래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9월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 남소연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는 결국 과거다. 한 사람의 권력자가 모든 것을 누렸던, 그를 추앙하는 세력들이 함께 누렸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말 그가 '미래'를 지향한다면 왜 7인회니, 정수장학회니 하는 과거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제가 사과하지 않았습니까'라는 행동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기억하지 않는 과거란 깃털 같은 무게조차 갖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사 청산 등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의 사과가 '대선을 위한 행보일 뿐'이라는 비판을 멈추지 않는 까닭은, 박 후보의 말과 행동이 단지 '사과'가 아니라 '망각'을 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제 <한겨레21>에서 본 '기억을 위한 사과'라는 표현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