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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CEO여도 애낳고 키우긴 힘들어요

“오늘,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어요. 저 곧 태어날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6일(현지 시각) 마리사 메이어는 자신의 트위터에 직접 글을 올려 야후 신임 CEO 임명과 출산 예정 소식을 알렸다.




16일(현지시각) 야후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마리사 메이어는 7시간 뒤 자신의 트위터에서 올 10월 출산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종합경제지 <포춘>이 뽑은 500대 기업 가운데 여성 CEO는 모두 20명이다. 이 중에서도 임신한 사람은 마리사 메이어가 최초다. 그는 <포춘> 인터뷰에서 지난 6월 야후 이사진들을 만나 임신 사실을 공개했지만 “그 누구도 ‘CEO의 임신’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몇 주간 출산휴가를 보낸 뒤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메이어의 결정은 미국 워킹맘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미국에서조차 임신과 육아가 여전히 여성의 사회활동을 저해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타임>은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아이를 키우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여성으로 기록되겠지만, 실패하면 일을 제대로 못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며 “이때 그의 임신을 두고 말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엘렌 갤린스키 패밀리 앤드 워크 연구소 소장은 “사람들이 그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평가하지 않길 바란다”며 “메이어의 성공 또는 실패가 다른 임신여성을 고위직에 임명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에 육아 관련 칼럼을 연재하는 제니스 다아시는 ‘출산휴가 몇 주만 쓰겠다’는 메이어의 말을 바탕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제 갓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며 엄마가 육아휴직이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하는 게 무슨 이득일까? 또 메이어는 맞벌이 부부들을 지지하는 데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은가?”


아이가 6명이나 되는 안젤리나 졸리도 혼자는 못 키우겠지.. ⓒ 베니티페어


지난 5월 세이브 더 칠드런이 발표한 ‘엄마가 되기 가장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보고서에 따르면, 모성 건강·교육·경제·아동 건강·영양 면에 있어 최고의 나라는 노르웨이였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슬란드와 스웨덴 순이었다. 


미국은 조사대상국 165곳 가운데 25위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 순위가 6단계 오르긴 했지만, 선진국 43개 나라 중에선 하위권에 속하는 점수다. 주된 이유는 유급 육아 휴직을 쓸 권리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아빠 아니고 엄마의 유급 육아휴직이다. 


미국 기업 대부분은 법적 요건을 최소한으로 충족하는 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다. 기간은 12~50주, 월급은 없다. 인적자원관리협회의 연간 조사결과, 전체 기업의 24%만 유급 육아휴직을 제공하고 있다. 그나마 관대한 곳이라면 7주간의 유급 육아휴직이 가능하다. 선진국, 아니 세계 제1의 국가라 불리는 미국이다. 하지만 일과 출산, 육아를 함께 부담하며 살아가기엔 세계 최강은커녕 중간만 해도 다행인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메이어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쓰러져가는 야후를 과연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뿐 아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든 현실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는지, 또 이 나라의 육아 환경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하는 기대감도 있어서다. 


특히 임신부로 고위직에 올랐다는 점에서, 메이어 본인과 주변 의지에 상관없이 그는 중요한 선례로 남을 듯하다. 나 역시 메이어의 성공 또는 실패가 어떤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불공정하다. 하지만 결국 그의 성과는 '임신 중인 여성에게 높은 자리를 맡겨도 될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승진시켜도 될까?' 등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잣대가 될 것이다. 한 조각의 흥분과 기대, 그만큼의 우려를 안고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상황도 자연스레 연결짓게 된다. 더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장난감 도서관을 찾은 엄마와 아이 ⓒ 연합뉴스



'임신하면 안 되나요?' 


올 2월 7일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의 주제였다. 저출산 문제로 사회가 골머리를 앓으면서 각종 대책이 쏟아진다. 모성보호를 강화하는 법과 제도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임신하면 직장을 그만 둬야 한다'는 건 여전히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실이다. 고위직에 오르려면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 더 작고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의 메이어?' 글쎄, 뜬 구름 잡는 소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