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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저마다 가진 벽이 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그 벽은 높낮이가 그때그때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결코 허물어지진 않는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높이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해받고 싶어한다.

'나'를 지키며 관계 맺는 방식은 늘 이랬다. 한때는 그 벽을 허물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체념하고 인정하는 길을 택했다. 다만 그 높이를 조금이라도 더 유연성 있게 조절하는 힘을 갖고 싶었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이자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벽'은 나를 지키는 길, 내 자존심이라고 믿고 있다. 그게 남들 눈에 '방어적'이라든가 '고집'으로 보인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건 사실이니까. 수긍하되 부정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 그걸 '방어적'이고 '고집이 세다'거나 '자존심을 너무 세운다'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그 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후자의 경우 나는 늘 상처받아 왔다. 나는 내가 그렇다는 걸 모르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넌 그래"라는 식으로 누군가에게 재단받는 느낌은 불쾌하다. 아프다.

그리고 다시 수(守)세를 취하게 된다. 내가 지금껏 '나'를 지켜온 방식이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라고 외치는 건 그래서다.

영화 <의형제>에서 이한규(송강호)도 송지원(강동원)에게 그렇게 외친다.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한규는 철저히 '속물'임을 드러낸다. 어렵게 잡은 베트남인 신부가 다시 도망갈까봐 수갑을 채우고, 가정폭력 때문에 달아났던 여성도 '돈이 되니까' 집으로 돌려 보내려고 한다. 그때마다 지원은 말한다. "인간적으로 좀 합시다." 매번 '어쩔 수 없이(지원을 계속 붙잡아 둬야 하니까)'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르던 한규도 결국 폭발하고 만다.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라고 외치며 주먹을 날린다.

주먹다짐 뒤에 둘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한규와 지원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국정원 직원'과 '남파 공작원'이 아닌 '가진 것 없는 홀아비'와 '가족을 두고 온 기러기 아빠'라는 서로의 맨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한규는 지원을 살리려고 계속 뛰어다니고, 지원은 "전 아무도 배신하지않았습니다"라고 절규한다.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고 착각하며 의심하고 긴장하던 두 남자는 그렇게 상대방을 알게 된다.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과연 얼마만큼? 우리는 누군가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벽'은 얼마나 낮아질 수 있을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과연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라고 외치지 않는 순간이 올까. 아무리 막역한 친구거나 사랑하는 가족이라 해도 '이해받지 못하는' 때는 있다. 그 순간 움츠려드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럼 나를 이해시켜봐, 설득해봐"라며 다그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둬야 할까.

얼마 전 술자리도 그랬다. '이해받지 못하는' 때가 있었고, 나는 상대방을 납득시켜야 했다. 당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사실 그럴 때마다 나는 '설명'의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말하면 할수록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내 말들을 '변명'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결국 나는 상처받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결국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건 '경계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당신이 과연 날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일까'라며 의심하던 지원의 눈빛. 어떤 관계든 이해의 폭이 있고, 허무어질 수 없는 벽의 높이가 있다는 나의 고집도 여전히 남는다.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덧.

-강동원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연기를 잘했다. 기대된다.
-송강호는 누구나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밉지 않은 아저씨' 역할이 딱이다.
-그 많던 서울의 골목길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덧2.

의형제는 '가족주의 영화'다? -정화 언니의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