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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조지 오웰, '교수형' 중에서

...소장은 지팡이를 뻗어 시신의 맨살을 찔러보았다. 시신이 슬쩍 흔들렸다. "'제대로' 됐다." 소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수대 밖으로 나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시무룩한 기색이 어느새 걷혀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8시 8분. 오늘 아침에 할 건 다했다. 휴우."

간수들은 총에서 칼을 빼내고는 행진을 했다. 개는 차분해져서 자신이 잘못한 걸 의식했는지 그들 뒤를 슬그머니 따라갔다. 우리는 교수대가 있는 뜰을 벗어나 사형수 감방들 앞을 지나 형무소 중앙 마당으로 갔다. 재소자들은 곤봉 찬 간수들의 명령하에 벌써 아침 끼니를 타고 있었다. 양철 그릇을 하나씩 들고 줄줄이 앉아 있는 그들 사이로, 들통을 든 간수 둘이 지나가며 밥을 퍼주고 있었다. 제법 가정적이고 명랑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방금 교수형이 집행된 것치고는. 우리는 업무를 마친 것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노래라도 부르거나, 느닷없이 마구 달리거나, 낄낄거리기라도 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우리는 갑자기 모두가 흥겹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중으로 된 형무소 정문을 지나 길에 들어섰다. "다리를 붙들고 끌어내야 했다니!" 버마인 치안판사가 갑자기 외치더니 큰 소리로 키득거렸다. 우리 모두 다시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 순간엔 프란시스가 말한 일화가 너무 재밌다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원주민과 유럽인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어울려 제법 의좋게 한잔했다. 죽은 자는 100야드쯤 떨어져 있었다.


- 조지 오웰, '교수형' 중에서

언젠가 영화 <집행자>를 봤다. 조재형과 윤계상이 교도관으로 나오는 영화는 제목 그대로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2년 만에 다시 사형을 집행하게 된 날, 모두들 고개를 휘두르며 '난 못 하겠다'고 말했던 그 때 노교도관 하나는 오랜 친구를 찾아간다. 아니 한 때 동료였던 이다. 동료는 그에게 차갑게 말한다. "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끔찍해. 그러니 제발,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 주게. 오지마."

전쟁은 차라리 낫다. 전쟁에서의 살인은 적어도 '나의 생존'이라는 이기적 명분이 있으니까. 그러나 사형수를 처형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공익'이란 말을 내세우며 그 살인의 책임과 흔적을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기는 일이다. 하여 누군가는 평생을 싸늘히 식어가는 사람의 눈빛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괴물이 된다. 조지 오웰과 함께 웃던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