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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전수안 대법관의 퇴임사 있을 때 못다한 일을, 떠날 때 말로써 갚을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떠날 때는 말없이' 가 제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도 소수의견이라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수 의견에 따라 마지못해, 그래서 짧게, 그러나 제 마음을 담아 퇴임인사를 드립니다. 법관은 누구나 판결로 기억됩니다. 저도 그러기를 소망합니다. 몇몇 판결에서의 독수리 5형제로서가 아니라 저 자신의 수많은 판결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34년간 잘한 것 못한 것 모두 제 책임입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평가와 비판은 제 몫이지만 상처받은 분께는 용서를 구합니다. 역부족, 중과부적(衆寡不敵·적은 수효로 많은 수효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뜻)이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최근의 어느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직접 살인 형을 집행.. 더보기
우리는 미디어 엘리트입니까 우리는 사실을 신봉하고 풍자와 추측, 과장, 비논리의 천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원하는 이야기들만 내놓을 준비를 하는 레스토랑 종업원이 아닙니다. 사실만 늘어놓는 컴퓨터도 아닙니다. 뉴스는 오직 인간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유의미하기 때문이죠. 앞으로 저는 제 견해를 감추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또 여러분에게 저와 다른 생각들을 전달하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겁니다.We’ll be the champion of facts and the mortal enemy of innuendo, speculation, hyperbole and nonsense. We’re not waiters in a restaurant, serving you the stories you asked for, just the way .. 더보기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중에서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국가에서도 정부 비판 언론은 존재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비판 언론은 정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 비판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동시에 정부 비판 세력이 극단적인 그룹이나 비주류로 인식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중략)... 사실 정부 비판 언론이 정부에 위협이 되는 때는 그들이 합리적 중도노선을 지향하는 시점이다. ...(중략)...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더욱 '합리적인' 진보 성향의 신문, 좀더 균형감각 있고 잘한 게 있을 때는 때때로 정부를 칭찬할 줄도 아는 신문이 더 많은 독자에게 어필하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중략)... 한국이라는 환경에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진보 언론은 반감을 가진.. 더보기
그땐 그랬지 약자들의 따스한 연대를 누구나가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없는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 같은 대사를 실생활에서도, 허구에서도 수시로 들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많은 문장의 주어로 곳곳에서 발화됐고,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같은 위대한 인문정신도 저잣거리에서 빈번히 설파됐다. 이제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피식 웃음이 나는, 풍속극에나 등장할 법한 사어(死語)들이지만, 말로라도 그러던 시절이 어쨌든 있기는 했다. 이제는 누구도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거나 선언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약자-됨’은 결단코 은폐되어야 할 존재의 치부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갑과 을. 나는 내 자식이 갑이 되길 바래.” 정성주 작가가 이태 전 쓴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 나오.. 더보기
서울에 매여버린 삶들 ​ "서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울에서 온전히 나오지 못하고 삶만 매여 있다. 아이러니한 건 서울에 겨우 방 한 칸을 마련한다고 해도 행복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직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야근이 너무 잦아서 애인은 회사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았다. 통근으로 길에 버리는 시간이 줄었으니, 삶에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돈 주고 빌린 집이란 게 아주 작은 상자 같아서, 그 곳은 ‘집’처럼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빨간 버스로. 노른자를 벗어나 넓게 펼쳐진 흰자의 세계로 그는 이주했다." - , '실신청년 싣고... 달린다, 빨간버스' 중에서 더보기
이것은 현실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창비 라는 책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사람 ▲ 일본군의 `동지`이자 전쟁의 `협력자`로 묘사했다는 이유 등으로 논란을 낳았던 서적이다. 올해 초 이 책을 둘러싼 소송을 다룬 기사를 썼다. 워낙 뜨거웠던 사안인지라 그 기사는 포털 메인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성적인 욕설이 난무하는. 레베카 솔닛의 를 읽는 도중 그 일이 떠올랐다. ‘세상의 절반’은 쉽게 공격자가 된다. 그들이 모두 폭력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쉽게 변한다. 박유하 교수의 책은 그 자체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남자였어도 그 정도의 능욕을 당했을까?`라는.. 더보기
<소수의견>을 보고나서... 을 보고나서... 1. 총평 : 제법 잘 만든 상업영화다. 러닝타임이 126분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냥 지루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는 돌발변수가 많아서 산만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하지만 근래 본 법정드라마류 가운데는 손에 꼽고 싶다. 국민참여재판 담당 검사의 과한 리액션말고는 법정 공방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좋았다. 다만 워낙 사건 자체가 형사소송법의 여러 절차와 복잡하게 얽혀있다보니 "법률용어 더럽게 어렵다"는 공수경 기자(김옥빈)의 대사를 관객들이 공감할 것 같다. 나도 그 장면에선 빵 터졌지만. 2. 아쉬운 점 : 두 개의 재판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보니 다소 힘이 분산된 느낌은 아쉬웠다. 아무래도 박재호(이경영)가 '부작위 입법'.. 더보기
전쟁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1968년 2월 12일 얼마 전 영화 을 우연히 봤다. 로빈 윌리엄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난해 여름, 많은 언론은 앞 다퉈 그의 대표작을 소개했다. 은 그 활자들 사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작품이었다. 별 관심은 가질 않았다. 그저 그런 옛날 영화 중 하나로만 다가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나는 ‘1968년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 영화는 마치 과 닿아있는 작은 단서 하나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제법 늦은 밤 시작한 121분짜리 영화였지만 끝까지 시청했다. 중간 중간 자리를 뜨거나 눈을 비비지 않기란 불가능했지만. 또 “굿바이 베트남”이란 말을 남긴 채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로빈 윌리엄스를 보며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멜로디 사이에 흐르는 베트남의 풍경들, "당신들은 먼 길을 와서 내 동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