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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몇 가지/조금만 더

[메모] 법과 싸우는 노동자들

ⓒ아름다운재단


*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연봉 4천 직장인 2822년치 월급, 이 정도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①] 사측 청구액수와 손해배상액 분석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7901


"평생 벌어도 못 만질 돈... 한마디로 살인적인 판결"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②] 2010년 현대차 울산공장 파업이 남긴 상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0801


'귀족노조'라지만, 실상은 이렇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③] 파업중에도 100억대 소송....일정한 법칙 있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2800


서른다섯에 목숨까지 끊었건만, 회사는 기어이...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④] 쌍용차·한진중공업 파업관련 소송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4609


"이효리 덕분에 설명 필요없는 이야기 됐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⑤-1] 은수미 민주당 의원 인터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8639


"대선 결과 달랐다면 손배소 없었을 것...반성한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⑤-2] 은수미 민주당 의원 일문일답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8694


기업 홍보 담당의 고백 "왜 거액의 파업손배소 내냐면..."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⑥] 법원의 '정당한 파업' 기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9778


뛰어든 벤츠 들이받은 티코 운전자 파산, 이게 맞나?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⑦] 도진기 판사, 코트넷에 '손배' 관련 기고 눈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1473


한 판사의 '소신 판결', MBC 기자들 살리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⑧] 파업의 정당성 인정한 판결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74009


더이상 '이효리 효과'에만 기댈 순 없다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⑨] 노조 향한 '손배 폭탄', 막을 방법 없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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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22


"우리의 판결은 공평한가"


/도진기 인천지법 부장판사


티코가 달리는 길에 벤츠가 돌연 뛰어들었다. 티코는 피하지 못하고 벤츠를 들이받았고, 티코도 박살이 났다. 수리비는 벤츠가 1억원, 티코가 100만원 나왔다. 벤츠의 과실이 훨씬 컸지만 티코가 벤츠에게 몇천만 원을 물어주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공평하다고 사람들은 느낄까?


비슷한 상황이 기업과 노조 간에도 벌어질 수 있다. ‘기업의 불법행위 vs 노조의 불법 파업’의 경우, 생산라인의 정지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여 그대로 배상액으로 떠안긴다면 유사한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은 불법이 드러나도 유유히 지갑을 열면 그만이겠지만(벤츠 차주가 지갑을 여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노조는 파산이다(티코 차주는 차 파는 것도 모자라 전세금을 빼고 있다). 노조 측이 일방적으로 불법 파업에 돌입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형평성 이슈는 떠오를 수 있다. 불법성의 여부보다는 배상액의 크기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법행위에 손해배상을 명하는 건 당연하다. 노조의 쟁의행위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만약 면책을 인정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생산라인의 정지를 넘어 파괴까지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특권을 쥐고 무정부적 소요도 가능해질 수 있다(다만, 정당한 파업으로 인한 손해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에 따라 면책된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노동자와 그 가족 24명이 숨졌다. 도진기 판사는 “과연 그들이 죽음에 이를 만큼 잘못했을까”라고 묻는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액수다. 영화 <고질라>의 카피처럼, ‘Size does matter’(크기가 중요하다). 큰 기업일수록 생산할 수 있었던 물량 손실뿐 아니라 임료, 보험료, 감가상각비 같은 고정비만 해도 엄청나 수십억~수백억원에 이르기도 한다. 이걸 노조와 노조원들에게 액면금대로 배상을 명한다면 사실상 ‘끝장’을 의미한다.


과연 그들이 ‘그만큼’ 잘못했을까? 불법 파업, 잘못이다. 그래서 형사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죽기까지 해야 하는지? 종류는 다르지만 기업도 잘못을 한다. 그렇다고 곧장 활동 중단의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어도 기업은 손해배상 때문에 문을 닫지는 않는다. 


불법 파업이 그보다 큰 잘못 같지는 않다. 대기업 노조가 ‘죽음에 이르는 배상’을 지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잘못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이 크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파업으로도 기업에는 막대한 손해(생산 손실, 고정비)가 발생하고, 액면대로의 배상은 노조의 영구적 활동정지를 초래한다. 배상액이 잘못의 크기에 비례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경우는 과도하다. 노조원들과 가족은 생계를 잃는 반면, 그 돈 받는다고 기업의 수익이 대폭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생산 손실이나 고정비는 마치 지구의 자전과 같다. 줄곧 움직이고 발생하지만 사람들은 감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배상에는 직관적으로 수긍하기도 어렵다. ‘네가 일을 안 했으니 월급 못 주겠다’ 혹은 ‘파업하면서 물건 부쉈으니 물어내라’ 여기까진 쉽게 이해가 되는데, ‘네가 일했더라면 내가 벌었을 돈을 못 벌었으니 그 돈 내놔라’는 건 통상의 손해와는 좀 다르다. 과장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꿈에 본 손해’의 배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웬만하면 민사상 책임으로 돌리고 형사상 책임은 최후에 보충적으로 지도록 하는 것이 법률의 상식이다. 그런데 노조원들은 형사책임보다 민사배상에 더 몸서리치는 것 같다. 형사처분을 감수하고 나섰던 사람도 생계의 위기 앞에서는 발이 얼어붙는다.


“판사, 책임의 적절한 선 그을 재량 있다” 


티코와 벤츠의 레이싱으로 돌아가 보자. 벤츠 사이드미러 하나만 박아도 차를 팔아야 한다면, 티코는 어디 무서워서 달릴 수나 있을까?


몇몇 사람들은 법원을 본다. ‘그런 결론이 불가피한가?’라는 의문을 표하면서. 하지만 판사는 사또 재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결과를 도출하는 프로그램과 같은 존재이다. ‘불법행위-손해의 발생-손해액 산정-배상 명령.’ 이 도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현실적으로 손해를 본 기업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어려워 보인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민사 책임도 완화되어야 하는가에는 찬반양론이 있을 것이다.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든가, 기업 측의 사정, 예상키 힘든 인과로 파급되는 부작용 등등, 다른 관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실질적 형평성’이라는 관점에 국한해서 본다면 의문이 생긴다.


법 해석 기관으로서 한계가 있지만, 만약 노조의 민사책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시각을 취한다면 방법 여하에 따라서는 법리 안에서 형평에 맞는 해결을 도모할 길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신의 성실의 원칙상 이루어지는 책임제한 법리를 좀 더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판사에게는 사정을 고려해서 책임의 적절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재량이 있다(대법원 2010다93790 등). 기업과 노조의 자력 차이, 액면대로의 배상을 명하는 것이 기업의 수익에서는 큰 비중이 못 되지만 노조와 노조원에는 존립과 생계를 위협할 수 있는 거액이라는 사정, 외부의 힘에 의한 통상의 손해와는 다른 사건의 성격 등을 감안해서 노조 측의 책임을 현실적인 액수까지 떨어지도록 낮게 책정하는 것이다. 


손배 청구액에 따라서는 10%, 아니 5%, 혹은 1%도 가능할 것이다. 1억원을 구한다면 10%가 적을 수 있겠지만, 100억원을 구한다면 10%는 과도한 금액이 될 수 있다(최근 법원의 판결을 보면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파업은 50%(90억원), 2010년 한진중공업 파업은 80%(59억원), 2009년 쌍용차 파업은 60%(33억원)의 노조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배상 금액도 수십억원에 달한다. <오마이뉴스> 3월25일 손배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⑦ 기사 참조). 이 해석에는 피해자 측의 손해에 앞서 가해자 측의 자력을 고려한다는, 일반 불법행위 법리에서는 곤란한 발상이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기업과 노동조합의 분쟁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을 듯하다.


다음으로 생산시설의 파괴나 상해 행위에 대하여는 이 같은 광폭 책임제한을 도입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가동할 수 있었던 생산 손실이나 고정비 손해에 국한해야 한다. 관행에서 벗어나지만 민사 법리의 틀 안에서 형평을 도모할 여지가 있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