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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영길이는 어디에... 2006년 3월 다른 블로그를 운영할 때 썼던 글. 상규 선배 블로그에서 '그 많던 을수는 다 어디 갔을까'를 읽고, 먼지 가득 쌓인 이 글을 꺼내본다. 을수도, 영길이도, 모두 어디 갔을까... (그나저나 글이 참 어리다. 민망하게시리...;;;) 초등학교 6학년때 새롭게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O영길, 그 친구는 약간 모자라는 친구였다. 그렇지만 아주 많이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사칙연산은 수월히 해냈고, 만들기를 참 잘했던 친구였다.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께서 자원해서 자신이 짝으로 앉고 싶은 사람을 말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두번째로 영길이 짝이 됐었다. 그 전에 영길이랑 앉았던 내 친구는 워낙 착한지라 영길이 밥도 챙겨주고, 수업할 때 교과서나 학습도구도 꼼꼼히 챙겨줬다. 그때 영.. 더보기
어느 할머니에 관하여 # "할머니가 오고가실 수 있게 문을 닫지 마세요." 남자친구 집 근처 구멍가게 옆 낡은 녹색 철문에 박스테이프로 붙여진 종이 한 장이 있다. 머리가 허옇게 세고 허리는 구부정한, 바람만 불면 쓰러지실 것 같은 할머니는 그날도 지팡이에 의지해 한 발짝씩 힘겹게 떼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남자친구가 위태로운 그녀에게 씩씩하게 인사할 때마다 옆에 있던 나도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곤 했다. 몇 달 전부터 철문은 굳게 닫혀 있다. 풀은 바람보다 빨리 눕고, 빨리 일어나지만 너무 오랫동안 바람을 겪은 풀은 지치기 마련이다. 할머니도 그러신 걸까? # 몇 해 전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생각하면 꼭 '밥'이 함께 떠오른다. 밥 때라기엔 이르거나 한참 지난 후에 가도 할머니는 맨 먼저 "밥 먹었냐"고 물었다. 당신이 먹.. 더보기
한대수의 뻔한 말들, 하지만 "으하하" - life is hard~ 사는 건 기본적으로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렇게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거다. 우리 역사를 봐도 사는 게 쉬웠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 rock&roll, drugs, free sex가 있던 60년대. 쥐가 기어다니던 아파트 - 그 당시 영웅들은 idealist였다. 꿈많고 상상력 많은. 예를 들어 체 게바라, 아픈 사람들도 무료로 고쳐주는 나라 등 만드려다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했다. 존 레논, 종교도 국경도 없이 사랑으로 뭉쳐서 살 수 없느냐 했다. 스탠리 큐브릭, 잭 캐롤(?) 그런 사람이 영웅이었다. 현재 우리 영웅은 누굽니까? 몇 달 전 보니까 스티브 잡스. 그리고 오바마,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이런 사람들, geek, 사교성 적고 책만 읽고 천재적이나 패션 감각 .. 더보기
그래서, 그런데, 그리고 "오늘 저녁은 희망식당 2호점!" 퇴근길의 기쁨과 배고픔을 안고 상수역 4번출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해고노동자들을 돕는 희망식당 2호점이 처음 문을 연 날이었다. 메뉴는 고등어김치조림이랬다. 서강대교를 건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받던 동기는 "가봐야겠는데?" 한 마디를 했다. 곧이어 내게도 전화가 왔다. "좀전에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한 남자가 분신을 했다는데, 너는 병원으로 가봐." 얼큰한 고등어김치조림보다 맵고 붉은 현실이었다. 영등포구의 한 병원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ENG 카메라를 멘 방송사 촬영기자와 DSLR을 손에 꽉 쥔 신문사 사진기자들. 카메라에 붙어 있는 회사 스티커만 얼핏 봐도 주요 언론사 가운데 빠진 곳이 없었다. 피곤에 절은 파김.. 더보기
성공과 좌절, 승리와 패배 그리고 괴물과 인간 이 쓸쓸한 봄날, 조지 오웰의 를 다시 읽는다. 오웰 스스로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책'이라 했던 이 빼어난 르포르타주는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의 정치드라마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증언한 고발서의 의미를 갖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페인 인민의 열망 편에 서려고 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소련-스페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배제되고 억압당하고 끝내는 죽음을 당했는지를 증언하는 책이다.이 책보다 먼저 발표된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라는 에세이에서 소비에트를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연합의 정치적 논리는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너무 따질 것이 아니라 함께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 더보기
blahblah 계란 반숙에도 화가 나는 날이 있다. 고지서의 숫자들,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이유와 의도가 없는 당신의 행동에도 그런 날이 있다. 온몸의 근육이 긴장했고 굳어간다. 가방의 무게 때문에 더 긴장하고 굳어간다. 삶의 무게는 몸을 누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마다 얼굴이 퉁퉁 부어서 일어난다. 운 것도, 잠을 많이 잔 것도 아닌데. 물 자국이 달라붙은 거울에서 둔한 인상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은 참 불편하다.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는 막막함보다 무겁고 게으른 사람으로 비칠까 괜한 조바심을 낸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더보기
4월의 풍경 하나 # 12%가 남았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오후 내내 휴대폰만 만직거린 탓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죽어라 해도 시간이 안 가서 멀뚱멀뚱 있다보니, 사무실에서 나올 때 100% 꽉 차 있던 배터리 용량이 벌써 닳아 있었다. 출근 둘째 날의 후반부는 그렇게 끝났다. 오전에는 어제 작성하다만 기사를 마무리하느라 다 보냈고, 임원분과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집밥 같지만 미역국은 맛없던 백반을 먹었다. 몇 년 만에 도착한 신림역 근처는 유세 중인 후보와 선거운동원으로 붐볐다. 흙탕물을 튀기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갔고, 동기와 나는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선배들을 만났다. 딱 거기까지가 4월 10일 모험의 전부였다. '수습'이 필요한 시절이다.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는 날은 꽤 여러 번 상상했는데, 정.. 더보기
빠른 세상, 느린 뉴스 우리를 둘러싼 그 무수한 의미들은 이내 타임라인의 희미한 잔상이 되어 사라져버립니다. 외침은 있지만 공감은 없고, 진영은 있지만 토론과 대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온갖 소문들이 진실을 압도하지만, 누구도 그 소문이 불러올 어둠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혼돈의 속도에 취해 우린 마치 기계처럼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개혁과 정의를 리트윗하지만 실은 더 많은 월급과 더 좋은 차와 더 넓은 아파트를 원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테크놀로지와 속도의 유토피아가 어쩌면 디스토피아는 아닌지 고민할 시간입니다. 속도라는 먹이를 먹고 자라는 이 괴물 같은 시스템이 어쩌면 우리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형태의 감옥은 아닌지 따져볼 시간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