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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학교를 떠난 그대에게 휴학은 생각했어도, 자퇴는 상상하지 못했다. 졸업이 현실이 됐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학교'라는 무형의 울타리가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놀랐다.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데 익숙한 사람은, 쉽게 울타리를 뛰쳐나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 모두가 알몸으로 평등해지는 목욕탕에서조차 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S라인에 길고 가는 팔다리를 소유하고, 우유빛 뽀얀 피부를 가져서도 아니다. "대학생이에요?" "네" "어디 다녀요?" "....**대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때밀이 아줌마는 내게 "와 진짜 대단하다"며 "아니 어떻게 했길래 그런 좋은 학교를 갔대요?"라고 계속 물었다. 그때 알았다. 내 머릿속에서 상상했.. 더보기
정치성향 테스트 http://h21bbs.hani.co.kr/politicalcompass/pnc_result.php 음, 예상과 크게 다르진 않군 -ㅅ- 더보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얼마나 못났는지 알게 된다 "희완이 나를 여신이라고 부른 것처럼 나도 한편으로 그를 신처럼 거대한 존재로 여겨왔다. 함께 살면서 그는 점점 평범하고 나약하며 한없는 너그러움과 다정함을 필요로 하는 작고 어여쁜 한 인간으로 보인다. 내가 한 점 사랑을 건네면 장미 꽃처럼 활짝 향기롭게 피어나는 어여쁜 인간." -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며칠 전 그가 내게 했던 말도 비슷한 뜻이었던 것 같다. "니가 먼저 전화했을 때, 난 의외라고 생각했어... 어쨌든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난 모든 게 다 풀려버렸다고." 나는 고집이 세다. 겸손하고 예의바른 척하지만, 사실은 매우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편이다. 이타적인 체 함으로써 이기적임을 감추려 한다. 이런 가면들을 쓴 일상을 살아온 지 꽤 오래, 길게 보면 10년은 넘.. 더보기
'경향'을 생각하며 "대기업 보도 엄정히 하겠습니다." 오늘 경향신문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16일 고정필진인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쓴 글을 게재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편집장이어도 곤란했을 것 같다. 가령 임원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머슴'에 비유한다던가 이건희 전 회장을 '짝퉁 루이 16세 폐하'라고 빗댄 부분은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명박은 조질 수 있고 삼성은 조질 수 없냐"는 경향 막내 기자들의 글처럼, 이번 일은 정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진보적 정론지,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경향인만큼 사람들의 배신감도 상당했다.(지난번 김용철 변호사 광고탄압 기사가 인터넷판에서 빠진 일도 있었고) 결국 경향은 오늘 솔직하게 .. 더보기
굿나잇 앤 굿럭, 그리고 추노 "우리는 겁쟁이의 후손이 아니며 표현하고, 기록하고, 동참하길 겁내는 자의 후손이 아니며 억지 주장을 관철하려는 자의 후손도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영화 을 드디어(!! 개봉한 이후부터 보고 싶었으니..몇 년 만인지 -_-) 보고 있는 중. 문득 추노의 홈페이지에 써 있던 말이 떠오른다. "왜 우리는 지금 '도망 노비'를 말하는가.…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 지금 이 시대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한다." 굿나잇 앤 굿럭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며 미국 패권주의를 이끌었던 부시 행정부 시절(2005년) 만들어졌고 추노는, 88만원 세대와 비정규직 등 단어가 우리를 대변하고 희망과 꿈이 허락되지 않는.. 더보기
조금 늦은 후회 but # 작년 가을~겨울만에도 의기충천했다.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신발끈을 동여매고 뛸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책상 앞이다. 현재 내가 가장 답답한 건 이 대목이다. 늘, 아직도 '책상 앞'이라는 것. 소속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인터넷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생산해내고, 남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안다. 문제는 그걸 잘 알면서도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0일, 자투리 시간을 쪼개 허겁지겁 용산참사 현장에 다녀올 때만해도 '몸을 움직이자'는 다짐은 실현되어가는 듯 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시간을 흘려보낸 지 두달 째다. 결국 현재 내가 느끼는 무기력감+불안함+초조함 등등 복잡미묘하고 그닥 반갑지 않은 감정들의 종합세트는, 여.. 더보기
어려워 어려워 너무 빤한 '나로호의 스토리텔링' 우주기술이 우리 언론에서 주요한 보도 대상이 된 것은 아마도 지난해 4월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 오르는 사건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우주비행에 관한 언론 보도는 외신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같은 민족의 구성원이 대한민국을 대표해 우주공간에 날아오른다니 얼마나 감격적인 소식이었을까. 이소연씨의 우주비행은 러시아의 우주선 덕분에 이뤄진 것이고, 이런 우주인 탑승은 거액의 탑승료를 지불하면 어렵지 않다는 현실보다도 무중력 공간에서 떠다니는 신기하고도 감격적인 장면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당시 기사들을 기억으로 돌이켜보면, 한국 첫 우주인에 관한 스토리텔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이 우주 공간으로 진출했다는 민족적 환희.. 더보기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을. "저도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이 좋아요. 물론 비판이 신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비판할 점이 있다면, 소망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꼬집으려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통쾌하기도 하고 그리고 충격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소망이 감지되지 않으면 무력감이 느껴져요. 비판하는 것 만으로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소망이 없는 비판은 존재 이유가 없는 듯 하고요. 바라는 상태가 없는데 무슨 괴리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으면, 마치 비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 사람 조차도 소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비판하는 능력도 안 뛰어난 저는 더욱 무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비판하는 분이, 반드시 '대안을 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