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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

만들어진 길과 만들어가는 길

“길이라는 것이 어찌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장성백 ㅠㅠㅠㅠㅠ


수험생 신분을 망각하고, 월화 밤 10시면 저절로 텔레비전 앞에 앉게 만들었던 드라마 <다모>의 명대사 중 하나다. 등장인물들의 애절한 사연도 사연이었지만, 대사 하나 하나가 잊기 힘든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 문구를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다. <한겨레21> 덕분에.


지난 6월 <한겨레21> 1064호의 표지는 ‘좋은 기자 프로젝트’였다. ‘저널리즘 없는 저널리스트’들을 쏟아내는 한국의 기자 육성 시스템을 비판하고 해법을 찾아보려는 기획이었다. 이 기획이 지적한 ‘기자 탄생 경로’며 문제의 원인은 아랑카페, 언시 대비 학원과 스터디, 인턴십, 그리고 도제식 수습교육이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져있다는 뜻이다. <한겨레21>은 그래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자를 양성하기 위해선 저널리즘스쿨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자 양성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흐름은 이미 전세계적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 유럽 국가에선 전통적으로 “저널리스트는 모두에게 열린 직업”이고, “저널리즘은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인식이 강했다. 그랬던 두 나라도 변하고 있다. ...(중략)... 한국의 정규 저널리즘 교육 수준은 낮다. 2014년 기준 언론 관련 학사 과정을 갖춘 대학이 110여 곳, 미디어 관련 전문 대학원이 24곳 있지만, 대부분 광고·홍보·커뮤니케이션 등을 겸하고 있어 저널리즘 교육에만 집중하는 과정은 희귀하다. 여러 교과 가운데 하나로 개설된 저널리즘 전공 과정 역시 이론과 실무에 걸쳐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지적은 언론학계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인턴제 운용, 저널리즘 스쿨과 협력’이라는, <한겨레21>만의 ‘좋은 기자 프로젝트’도 시작한다고 알렸다. ‘좋은 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1년 내내 인턴 기자를 뽑고, 이 일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등의 추천제와 연결하겠다는 얘기였다. ‘좋은 취지’이긴 했다. 하지만 원인 분석과 해법의 초점은 철저히 ‘예비 언론인’에게 맞춰진 담론이었다. 자연스레 언론인 지망생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안수찬 편집장의 해명 글 등이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 한겨레의 '사스마와리'에 반대합니다.

☞ 안수찬 편집장의 글 '나무'

☞ 바늘구멍 언론사 입시, 최고 스펙 갖춰도 떨어지는 이유는

☞ 책임을 나눠지겠다는데 갑질이라고?


저널리즘스쿨 역시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됐다. 2년이라는 기간만으로 충분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자를 양성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은 기본이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2기 졸업생인 나도 일면 수긍할 수 있는 비판이자 문제의식이었다. 그런데 학교로 튄 불똥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인턴 선발 대상과 절차를 둘러싼 안팎의 문제 제기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학교가 어떤 식으로든 논란의 대상이 되리라 생각했던 나로선 안타깝고, 또 갑갑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언론인 양성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사실이다. <한겨레21>의 문제의식에, ‘추천제 도입은 내 신념’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절반의 동의’만 할 뿐이다. ‘저널리즘 없는 저널리스트’는 과연 ‘수험생처럼 언론사입사를 준비하는 예비언론인’들의 탓인가. 그들은 왜 수험생처럼 틀에 박힌 공부(상식, 논술, 작문)을 할까? 왜 ‘사스마와리’를 돌며 선배들의 잘못된, 낡은 기사 쓰기 습관을 그대로 배울까? ‘구악’마저 닮아갈까? 예비언론인들에게 자질 부족을 이야기할 수야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임계점은 결국 ‘입사’다. 입사 후 어떤 숙련과정을 거치고, 무엇을 보고 들으며 고민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폼 난다’는 이유만으로 기자나 PD를 지망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을 테지만, 그 하나만으로 ‘언론고시’라는 좁은 관문을 택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특히 기자는, 도처에 처우가 열악한 언론사들이 널려있고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직업이다. 약간의 공명심, 약간의 정의감(거창하지만)이 없다면 그다지 관심 가지 않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고민과 주변을 돌아보는 눈이지, 뛰어난 문장과 취재력이 아니다. 오히려 후자는 만들어질 수 있다. 


저널리즘스쿨 교육을 받는다면 좀 다를까? 비록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쌓았지만, 내 답은 ‘No’다. 철저히 운에 맡겨져 있다. 방향성에 동의할 수 있고, 조직문화가 유연한 편에 속하는 언론사에 입사한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직간접적으로 접한 ‘기자질’하는 동문들의 사정은 달랐다. 누구든 ‘기레기’를 꿈꾸며 펜을 든 사람은 없지만, 내몰리고 있다. 이론과 현실은 늘 포개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좌절하고 상처받는다. 저마다 안간힘을 쓰지만 관행은 힘이 세고, 현실의 벽은 높다. ‘기레기의 시대’는 채용이 아닌, 교육의 문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 보도를 비판하며 '검은 티셔츠 행동 캠페인'이 개최한 기자회견 ⓒ 최윤석


젊은 기자들은 괴롭다. 이미 ‘만들어진 길’은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모험심이 부족하다고, 용기가 없다고 탓할 수만 있을까? ‘여느 직장이 그렇듯, 현실은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은 가장 쉬운 변명 같지만 결국 현실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한겨레21>이 던진 화두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방향은 다시 ‘만들어진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은 ‘공채 시험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이유로, 좋은 선례가 드물고, 좋은 기자와 나쁜 기자를 구분하는 엄정하고 합리적인 언론사 최고 간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밟고 또 밟을 길로 돌아갔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발을 내딛어야 할 텐데, 역시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