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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단일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엎치락 뒤치락을 거듭하며 야권 단일화 협상이 진행 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안캠과 문캠은 단일화 룰을 두고 으르렁거리고 있고, 내일이면 TV토론이 열린다. 


누가 되든 이번 대선에선 단일후보를 지지할 생각이다. 애당초 뚜렷한 정치성향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엄청나게 진보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니. 물론 지금껏 진보신당이나 녹색당 등 이른바 '진보정당'들의 정책을 선호해온 편이었다. 마음 한 켠에는 '노동자 대표'로 추대된 김소연 후보가 차지하는 공간도 있다. 그럼에도 '나의 상식'은 '최소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택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의 당선은 곧 대한민국의 퇴보 이상, 혹은 이하도 아니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하지만 지금껏 그의 원칙은 '아버지가 만든 나라 지키기'였고,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 나라는 낮고 작은 사람들의 희생이 너무나도 당연햇고, 힘으로 누르고 뺏는 일이 너무나도 쉬운 나라였다.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며 말과 행동, 생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나라였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법도, 그 어떤 피해도 상관없는 나라였다. 인권, 다양성, 땀 흘린 삶의 가치 등은 작고 작은 것으로 취급당했고 쉽게 잊히는 나라였다.


오늘 새벽, 쌍용차 노동자들이 고공 30m 철탑에 올라갔다. 15만 4천 볼트라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하늘 끝에 목숨을 걸었다. 그에 앞서 동두천시청 옥상철탑에 공공운수 노조 간부 2명이 올라간 지 7일째고, 불법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라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철탑에 매달린 시간도 한 달이 넘었다. 어제는 41일 동안 곡기를 끊었던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이 병원에 실려갔고, 제주 강정마을 지킴이들은 진흙밭에 내동댕이쳐졌다. 펜을, 마이크와 카메라를 빼앗긴 채 머리띠를 두르고 '언론자유'를 외친 언론인의 수도 헤아리기 어렵다. 거리에 나서지 않으면, 밥을 굶거나 허공에 매달리지 않으면 삶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대한문 분향소를 찾아가고, 울산 현대차 공장, 재능교육 농성장을 방문한 두 후보가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주리라 믿는다. 최소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아버리진 않으리라 기대한다. 불안한 점이야 한 두가지가 아니고, 누군가의 실패도 기억하고, 그들이 전지전능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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