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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당신의 연애를 응원합니다


영화 '6년째 연애 중'에서


6년째 연애 중이다. 여느 커플보다 평탄하게, 그럼에도 가끔씩 투닥거리며 우리는 연애를 하고 있다. 누군가를 더 많이 알게되면 분명 싸움의 요령이 생긴다. 싸우거나 혹은 싸움을 피하는 방법말이다. 초반에는 서툴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한 번 크게 부딪치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는 눈물을 닦아줬고, 손을 내밀었다(물론 반대의 상황도 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커플들도 있다. 질기게 이어졌던 사람과 사람이 참으로 순식간에 끊어지기도 한다. 그 커플에는 연인만 있지 않다. 23일 종로 한복판에서 8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흥국생명 해고노동자들과 또 다른 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는 마치 커플 같구나. 해고는 일방적인 이별 통보구나. 버림받은 한 사람은 그럼 뭘 할 수 있는 걸까. 이들도 한때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을 거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달라고, 나 같은 사람 없을 거라고. 악에 받쳐 어떻게든 복수할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다. 볏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바늘로 콕콕 찌르는 유치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8월 23일 종로 흥국생명 본사 앞에서 열린 '정리해고 사업장 1박2일 집중투쟁' 집회에서


지독한 고통, 미련, 후회가 뒤섞인 시간을 보낸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거리에 섰을 테다. 다시 연애를 시작하겠다고, 일방적이지도, 불합리하거나 부끄럽지도 않은 그런 연애를 당당하게 계속 해나가겠다고 외쳤을 테다. '웃픈 인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을 늘 볼 수 있는 풍경처럼 바라보는 내가 참 미안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하늘거리는 블라우스에 예쁜 꽃무늬 프린트가 박힌 치마를 입고 커피를 들고가는 아가씨였을, 크고 굵어진 아이의 머리만큼 자라나는 서먹함을 어떻게 줄일까 고민하는 아빠였을, 허겁지겁 퇴근해서 저녁밥상을 차리는 엄마였을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다. '투쟁'이라는 시퍼런 구호를 외치며 팔뚝질을 하고, 거리에 있었다. 잠깐 박자를 놓쳐 손발이 엉켜가며 민중가요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이 모든 '웃픈' 몸짓 뒤에는, 다시 사랑하자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손을 잡아달라는 진심이 배어 있었다. 그들이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