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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정말 상상할 수 없으니까...

나쁜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 "강도도 돈 벌려고 한다" "잉여인간" "돈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 용납되느냐" 용역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늦깍이 대학생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전혀 틀린 말들은 아니다. 사람이 먹고 살려면 무슨 일이든 못할까. 그럼에도 차마 '그 일말고 다른 걸 했음 되잖아'란 말, 나는 못하겠다. 결국 남 일이다. 머리로는 아무리 'A가 맞고 B는 틀려. 나는 C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라고 해도 거짓부렁이다. 우리는 그 어떤 정답도 갖고 있지 않고, 그 어떤 사람도 이해할 수 없다. 


백수 시절, 주머니 사정은 얄팍했지만 무게만은 돌덩이 같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스트레스를 견디기 싫어서 몇날 며칠 알바몬에서 이런저런 소일거리를 찾아봤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계약직이 있구나, 란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과연 나는, 친구들은, 우리는 이 빌어먹을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살아갈 수 없는 건가.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사치인 사람들이 있다. 생계가 아니라 용돈벌이용 일을 찾는 나는 배부른 편이고, 4년제 대학을 나온 나는 한 발자국 앞선 편이었다. 늘 알고 있던 사실일수록, 새삼 깨닫는 순간 느끼는 충격이 크다. 더 무겁고, 아프다. 


친구뻘인 그가 어떤 생각으로 용역 일을 시작했고, 뭐하느라 대학교 졸업도 못 했을까?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감당해야 했을 삶이 얼마나 버거웠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상도라는 게 있고,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있지만 그걸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비판은 할 수 있다. 옳지 않은 일이라고, 당신 잘못이라고. 하지만 잘 모르겠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수전 손탁의 말이 그토록 오랫동안, 강렬하게 머릿 속을 지배해온 까닭은, 정말 내가 상상할 수 없어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