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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 김종배 지음/쌤앤파커스
대학 첫해의 봄은 ‘리포트의 시간’이었다. 생명과학이라는 전공 특성상 매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실험을 한 차례씩 했고, 각각 예비·결과리포트를 한 편씩 제출해야 했다. 예비리포트는 간단하다. 실험의 목적과 방법을 적절히 설명하면 된다.
문제는 결과리포트. 이론은 현실과 다르다. 여러 조건들을 통제했을 때 일반화할 수 있는 면을 깔끔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는 항상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을 얼마나 명징하게 파악해내느냐가 ‘좋은 결과 리포트’인지를 가늠하는 요소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관심사는 ‘좋은 리포트 쓰기’보다 ‘리포트 끝내기’였다. 동기들의 오차 분석은 엇비슷했다. 대개 물리실험은 공기의 저항, 화학과 생물실험은 약품이나 시료 처리의 미숙함이었다. 관점이나 논리가 별반 다르지 않으니 학점은 얼마나 리포트를 깔끔하게, 꼼꼼하게 쓰느냐에 달려 있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를 읽는 내내 ‘관점’과 ‘논리’라는 두 단어가 끊임없이 머릿속을 때렸다. 나는 얼마나 구체적이고 정확한 표현과 사실들로 ‘뉴스’란 건물의 뼈대를 세우고 있는가, 제대로 된 시멘트와 벽돌들로 건물을 쌓고 있는가 하는 물음들이 계속 괴롭혔다. 실험보고서를 쓰는 일은 차라리 쉬웠다. ‘학점’이란 결과는 내 선에서 끝나니까.
뉴스는 다르다.
얼마 전 파업 중인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김재철 사장 개인 비리 취재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을 빗대 “기자들이 소 잡는 칼로 당근을 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 잡는 칼로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사람도 기자 아닐까. 쓰레기 만두 파동 때처럼 말이다. 김종배씨가 ‘합리적 의심과 정치적 의심을 바탕으로 뉴스를 읽어야 한다’며 예시한 기사 속의 오류들이 마냥 ‘몇몇 못난 선배들의 실패’로 느껴지지 않았다. ‘리포트 끝내기’에 급급했던 대학 새내기 마음처럼 ‘마감 맞추기’에 헉헉대다보면 언젠가 분명히 겪을 ‘나의 실패’란 생각에 겁이 났다.
쓰레기 만두 파동 당시 만두업체를 비판하던 사람들 ⓒ 노컷뉴스 “겸손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입사원서를 쓰며 수없이 우려먹던 말이다. 이 겸손함은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이 아니라 뉴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논리와 관점을 계속 돌아보고 점검하는 겸손함’도 필수라는 생각을 새삼 했다. 거짓말을 하는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다. 사실들을 적절히 ‘관계’ 맺으면서도 ‘차이’를 발견, 소탕 아닌 ‘소통’으로 나아가는 뉴스를 쓰는 사람이고 싶다. 기사 쓰기가 더 두려워졌다. ‘제대로 쓰기’에 더 욕심이 생겼다. |
http://sost.tistory.com2012-06-06T14:36:29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