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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보고 듣고 읽고 쓰다

악마를 보았는가


8점

‘짐승만도 못한 놈’ ‘인면수심의 범죄’…살인이나 강도 상해, 성폭력 등 잔인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죄를 저지른 이들은 ‘괴물’이라고,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괴물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또 그들은 진짜 ‘괴물’일까?

세계적인 범죄심리학자 토마스 뮐러는 <인간이라는 야수>에서 ‘과연 그들은 악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십명을 죽인 후 자른 머리들을 집 앞 뜰에 묻은 사람, 살아 있는 이의 머리를 열어 뇌에 염산을 부은 사람 등을 소개하며 그들이 어떻게 ‘야수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알아내려는 과정도 소개한다. 

뮐러는 우선 “복잡다단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누르스름한 눈을 가지거나 카인의 징표를 이마에 새기진 않았다”며 범죄자를 판단하는 데 있어 ‘극단성’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비정상적인 것이 때로는 아주 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며 독자 중 누군가 20여 년 전 뮌헨의 10월 맥주축제에서 만났을 수도 있는 한 남자를 소개한다. 한스(가명)이란 이름의 그는 칠장이였다. 집에, 주차장 문에, 교실에 페인트를 칠했다. 거의 온 생애에 걸쳐 부지런히, 꾸준히, 고양이 같은 속도로 일했던 그는 여러 해에 걸쳐 7명을 살해했다. 그 중 3명은 발견 당시 그 누구도 신원을 확인할 수 없도록 시신을 훼손했다. 우리도 최근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오원춘 역시 어느 차이나타운에서 마주쳤다면, 그저 스쳐지나갔을 확률이 높다.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파괴하려는 본성을 지닌 사람은 존재할까?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알아볼 수 있을까? 뮐러는 고개를 젓는다. ‘악을 인식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극단적인 범죄들을 처리하고 판단하는 데 늘 오류에 빠뜨린다고 그는 말한다. ‘믿음이 아닌 현장에, 행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수십 년 동안 범죄자들을 만나고 현장을 분석했던 범죄심리학자의 결론이다. 

“행위는 욕망에 좌우된다”며 뮐러는 책에 ‘비교’를 강조한다. 그는 “한 사람의 행동을 측정하고 판단하는 데 유일하게 적합한 수단은 비교”라며 “어떤 결정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특정 행동을 분류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판단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가 ‘범죄자 프로필 작성’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지금껏 현장수사는 어떤 특성을 기술하는 일에 매달려 있었다고 뮐러는 지적한다. 그는 오히려 범죄현장에서 나타나는 ‘범죄자의 개별결정’들을 처리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보는 편이다. 현장에서 나타난 범인의 행위들, 그의 결정들이 그가 어떤 인물이며 왜 그런 선택을 보여주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범죄자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뮐러는 다며 ‘우리의 인성이 매일매일 모든 땀구멍에서 새어 나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하며 “여러 범죄들을 비교 분석, 개별적인 행동방식들을 이해해 구체적인 수사의 단초를 얻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A라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자. 그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칙적으로 A는 세 가지 결정을 내렸다. 우선 누구를 희생자로 삼을지 결정한다. 그는 매춘부를 죽일 수도,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죽일 수도, 정치인을 암살할 수도 있다. 이 결정은 그의 욕망에 대한 첫 번째 암시다. 

수원 20대여성 살인사건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경찰과 용의자 ⓒ뉴시스

그 다음으로 A가 사람을 죽인 방식은, 찌르거나 베는 도구 및 무기를 다루는 능력의 일부를 보여준다. 또 희생자와의 관계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는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 특정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 분노, 공격성은 그의 욕망과 결합해 서로 다른 방식의 살인행위를 불러온다. 희생자의 머리를 몇몇 물건으로 여러 차례 내리치는 것과 목을 조르는 것을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A는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뮐러는 여기에서 “소위 프로파일러들과 범인 프로필 작성자들이 ‘절망적일만큼 과소평가하는 심리학적 처리방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비슷한 유형의 범죄라도 시체가 서로 완벽히 동일한 상황에서 발견되는 일은 없다. 뮐러는 “그러므로 우리는 소소한 개별 결정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옷이 벗겨지고 몸이 덮인 시신끼리, 옷이 입힌 채 땅에 묻힌 시신끼리, 옷이 벗겨지고 아무 것도 덮여있지 않은 시신끼리 비교하고 또 이 그룹들을 비교하는 일 등을 시도하라고 예를 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 결정들의 배후에 다시 캐물어야 하고, 다시 한 번 같은 행동을 먼저 했던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 행동과 행동을 끝없이 비교,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뮐러는 “중요한 건 누군가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라고 답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위장한다. ‘언어’로 그의 거짓말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거짓말을 확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그의 ‘행동’을 파악하는 데 있다.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험의 세계 안에서 사는 사람들(존 스타인벡)”이 있고, 그들의 특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단서는 ‘행동’에 있다고 뮐러는 끝없이 강조한다. 아침 산책 중인 여성을 습격했던 한 재소자는 청소년기부터 폭력적인 내용의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감옥에 갇힌 후 그의 판타지는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결국 그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3일 만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판타지’ 속에 감춰진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을 얼마나 통제하느냐에 따라 그의 행동은 달라졌다. ‘욕망’과 ‘행동’, 이 두 가지 요소를 뮐러가 중시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다. 

뮐러는 책에서 범죄현장 분석 방법을 ‘배의 밧줄 풀기’에 비유한다. 맨 먼저 가장 큰 매듭을 풀어낸 다음 얽히고설킨 작은 매듭과 고리를 풀어내듯, 전체 행위를 풀어낸 후 머리를 맞대고 그 범죄를 특징짓는 작은 개별 단서들을 얻어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개별 결정자체는 범인의 동기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할 수 없는 조립부품에 불과하다. 다른 사건들과 비교하는 일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또 그래야만 새로운 범죄를 막을 수 있다. 누군가의 어두운 욕망이 움직이는 순간을, 그 욕망이 겨냥한 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적은 너의 집 그늘 아래 있다(수단 속담).” “만일 충분히 오랫동안 악의 심연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 악이 너를 들여다보지 않을지 주의해야 한다(니체).” 스타인벡의 말과 함께 책 전체에서 뮐러가 반복 인용하는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다. 뮐러가 묘사하는 범죄자들의 모습, 그들의 욕망 또한 시작은 평범했다. 결국 우리가 상상하는 ‘악’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이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야수”란 제목 역시 ‘인간은 야수다’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은 야수가 될 수 있다’는 뮐러의 경고가 아닐까.